2013년 4월 30일 화요일

벌거벗은 그리스도인들

“모세가 보니 백성이 벌거벗었더라. (아론이 그들로 하여금 벌거벗게 하여 그들의 원수들 가운데서 수치거리가 되게 하였더라)” (출애굽기 32:25). 여기서 ‘벌거벗었더라’로 사용된 히브리 용어 ‘para’는 “풀다, 드러내다, 모든 규제를 떨쳐버리다”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또한 “새로운 시작”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습니다. “일이 생각보다 잘 안 돼가고 있어. 우리는 이 전투에 지쳤고 하나님을 기다리는 것도 이젠 짜증스러워. 이제 우리는 그저 즐길 거야. 이전의 것들은 떠나라! 우리는 새로운 자유를 원하고 새 출발 하기를 원해—지금 당장!”

성경에서 ‘벌거벗음’이란 전쟁터에서 방패를 갖고 있지 않음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자신의 방패를 갖고 있지 않은 모든 자는 벌거벗은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말 그대로 벌거벗었습니다—옷을 벗어버리고는 금송아지 앞에서 춤췄습니다. 더군다나 그들은 그들의 무기도 내려놓았습니다.

그들의 적 아말렉 족속이 주변 산등성이에서 이 기막힌 장면을 내려다보고 있는 것이 상상이 됩니까? 아말렉 족속은 이스라엘 면전에서 한때는 떨었던 자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 백성 앞에서 그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지요. 그러나 이제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이 그들의 무기와 의복을 벗어버리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아말렉 족속은 그들을 조롱하며 비웃었습니다: “저것 좀 봐—저들은 우리와 다를 바 없어! 그들의 하나님은 아무런 힘도 없어. 저들이 그분을 신뢰하고 있지 않아. 보라고! 그들의 거룩한 규율을 다 내던져버리고 있어. 그들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정욕을 추구하고 파티를 하며 즐기길 원해. 저것이 거룩인가? 참으로 위선적이군!”

한 번의 벌거벗음으로 인해 이스라엘은 경건치 못한 자들 앞에서 그들의 하나님을 하찮게 만들었습니다. 그들은 마치 주님이 냉정하고 잔인하며 무관심하고 무력한 분인 양 만들었습니다. 그들은 그분의 명예와 존귀, 그리고 그분의 전능하심을 더럽혔습니다. 이제 더이상 그들은 세상의 본보기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믿음의 옷을 벗어버리고 하나님을 향한 신뢰를 저버릴 때 우리가 하고 있는 일입니다.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으로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서는, 모든 의심과 두려움, 그리고 불신에 노출되어 온 세상 앞에서 벌거벗고 서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2013년 4월 29일 월요일

놀라운 믿음 by Gary Wilkerson

하나님께서 당신 인생에 무언가 엄청난 일들을 곧 행하실 것 같다는 생각이 드십니까? 그분이 당신 마음속에 이렇게 말씀하셨을 수도 있습니다. “내가 너를 위해 특별한 것을 마련해 놓았단다. 네가 이전에는 전혀 알지 못했던 영역에 들어가서 곧 나와 동행하게 될 것이다.” 당신은 이미 하나님으로부터 크게 축복받았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성령께서는 그분의 오랜 약속이 곧 무르익을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시고, 그것은 당신을 놀라게 할 것입니다. 만일 이것이 당신의 현재 삶을 묘사하고 있는 거라면, 제가 성경 말씀의 권위를 빌어 당신께 말씀 드립니다: 이제 당신 내면이 점검되도록 준비하십시오.

다음 단계는 소위 제가 말하는 “놀라운 믿음”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놀라운 믿음이란, 지금 모든 것이 아무리 잘 되어간다 하더라도 최고는 아직 오지 않았다고 믿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렇게 말할 수 있는 믿음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왕국을 위해 아무리 크게 꿈꾸며 많은 일을 행한다 해도, 언제나 그분의 비전은 훨씬 더 광대하시다.” 제가 잠시 목사로 섬겼던 한 교회에서 주님께서 하셨던 일은 제 모든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단 한 주간도 누군가 그들의 삶을 예수님께 드리지 않고 지나간 적이 없었습니다. 우리가 가난한 자들에게 음식을 나누어 줄 때마다 그들 중 많은 사람이 물었습니다. “왜 이런 일을 합니까?” 그때마다 우리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그러면 그들이 주님께 그들의 삶을 드렸습니다.

우리 교회 주일 예배 참석자 수는 삼 년 만에 세 부부에서 거의1,500명으로 늘었습니다. 새 신자들이 빠른 시일 내에 하나님을 더 알아가며 충실한 제자들로 성숙해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기대를 초월하실 뿐 아니라, 그분의 기대가 어떤 것인지를 실제로 보여주십니다. 그리고 그것을 보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그 지역만 해도 약 이십오만 명의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지난해에 주님께서 새 교회를 두 개나 더 세우도록 저희를 움직이셨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놀라운 부분은 이것입니다: 그보다 더 큰 일들이 일어날 것이라는 믿음입니다. 저는 하나님께서—단지 구원 문제뿐만 아니라 빈곤자들을 돕기 위한 구제와 도시를 변화시키기 위한 영향력으로, 더 강력하게 그분 자신을 드러내실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참으로 놀랍지 않습니까? 물론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제 어려운 부분이 남았습니다. 바로 이 시점에서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자녀가 자신들의 마음을 점검하기를 요구하십니다.

우리 의는 마치 더러운 넝마와도 같아서, 그분의 은혜가 꼭 필요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하나님께서는, 우리 삶에서 가장 큰일을 막 하시려는 때에, 이러한 질문을 우리 자신에게 하기를 요구하십니다: “내 마음속에 무언가 주님을 불편하게 만드는 것이 있을까? 그 분이 내게 요구하신 것 중 내가 잘못한 것이 있나?” 저는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일을 방해하는 그 어떤 걸림돌도 제 삶에서 원치 않습니다!

2013년 4월 26일 금요일

멈추고 들으세요

저는 주님께서, 그분의 자녀가 그분의 임재 안으로 들어와서는 단 한 번도 그분의 말씀을 듣기 위해 멈추지 않는다는 것에 지치지 않으실까 생각해 봅니다. 한 방향의 대화만큼 공허하고 성취감 없는 일도 없을 겁니다. 대화에 한마디도 개입하지 않으면서 몇 시간을 상대가 말하는 것만 들으려고 해보십시오. 외로움의 감정만이 당신에게 남아있을 것입니다. “자기 마음을 다 털어버린 사람"은 기분이 가벼워져서 떠나지만, 경청만 했던 그 측은한 자는 충족감 없이 남아있게 됩니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우리 주님을 기도의 골방에 홀로 외롭고 쓸쓸하게 남겨둘까요? 우리는 서둘러 그분의 임재 안으로 들어가서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예수님, 당신을 찬양합니다! 사랑해요, 주님! 여기 제게 필요한 목록과 치유 요청 카드가 있습니다. 아멘.” 그분이 자신의 마음을 열고 우리와 대화하기를 준비하시고 애타게 기다리셨으나, "아! 이런, 아무도 없네!" 하셨던 적이 얼마나 많았을까요?

우리가 한 시간을 기도한다면 우리는 한 시간 동안 말합니다. 우리가 몇 시간을 기도한다면 몇 시간 동안 대화합니다. 우리가 밤새 기도한다면, 밤새 말하며 수억의 목소리가 대화하며 찬양합니다. 제 모든 설교의 삶은 사람들로 하여금 기도하도록 설득하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저는 그것에 대해 문제가 있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진짜 문제는 그분이 우리에게 한마디도 하실 수 없도록, 구세주를 홀로 외롭고 쓸쓸한 채로 우리 기도의 골방에 남겨두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우리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기도의 방을 나왔습니다. 우리는 그분께 우리의 소망과 꿈, 그리고 갈망들을 말씀 드렸습니다. 우리는 만족스러운 마음으로 그 거룩한 기도의 장소를 나왔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서로 대화 나누기를 간절히 기대하며 여전히 거기 계셨습니다. 저는 우리 주님이 “그래, 알았다. 찬양해줘서 고맙구나. 그것을 받으마. 나와 있기 위해 시간을 내줘서 참 기쁘다. 내가 네 요청을 들었고 아버지께서 너의 마음에 소원을 들어주실 것이다. 그러나 잠깐만 기다려라! 금방 그렇게 나가지 말아다오. 내가 너와 나누고 싶은 것들이 있단다. 내 마음은 네 짐을 내려주기를 간절히 원한다. 내가 네 눈물을 병에 담았고, 네 고통스러운 마음도 가라앉혔지. 자, 이제 내 얘기 좀 하자꾸나! 내 마음속에 있는 것을 네게 말하게 해 주렴”.

우리 주 예수님은 우리와 대화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분은 우리 세대에서 무엇이 그분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지 말씀하시기를 갈망합니다. 그분은 영광스러운 진리들을 계시하면서, 그분을 신뢰하는 모든 자녀를 향한 너무도 아름다운 계획에 대해 각 자녀에게 말씀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분은 우리를 인도해 주시기를, 그리고 우리 자녀를 양육하는데 돕기를 원하십니다. 그뿐만 아니라, 문제의 해결책, 잃어버린 영혼들을 구원하기 위한 새로운 사역과 구제, 우리 일자리에 대한 세부적 말씀, 우리의 경력, 가정, 배우자, 천국과 지옥에 대한 진리들, 그리고 다가올 재난에 대해 말씀하시기를 원하십니다. 무엇보다도 그분은 자신의 자녀를 얼마나 사랑하며 돌보시는지를 우리에게 말씀하고 싶어하십니다.
"보라, 내가 문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함께 만찬을 먹고, 그는 나와 함께 먹으리라" (요한계시록 3:20).

2013년 4월 25일 목요일

두 마음을 품은 자

두 마음을 품은 자, 즉 하나님과 사탄의 능력이 동등하다고 믿는 자는, 그의 모든 행사가 불안정합니다. 그러한 자들이 바로 “시험의 때에 떨어져 나가는 자들이요” (누가복음 8:13)의 말씀을 설명해 줍니다. 그들은 두려움 속에 빠져서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을 보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가르치셨습니다. “너희가 시험에 들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라. 참으로 영은 원하지만, 육신이 연약하도다” (마태복음 26:41). 당신 안에 거하시는 하나님의 영은 그분의 능력 안에서 당신이 그분을 신뢰하는 것을 가르치기를 열망하시지만, 당신의 육신은 두려움에 굴복하곤 합니다. 저는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는 동안 제자들을 잠들게 했던 것은 피곤함이 아니라 두려움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배신당해서 악한 자들의 손에 넘겨질 것이고, 베드로는 반역자로 변절할 것이며, 그들 모두가 낙심하여 다 흩어져버릴 것이라는 말씀을 금방 들었습니다. 그 순간 그들은 그 분이 행하신 모든 기적, 병자들을 고치시고 죽은 자를 살려내신 그분의 전능하심과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군중을 먹이셨던 그분의 권능을 전부 잊어버렸습니다. 그들은 주님으로부터 떨어져 나가게 될 거라는 사실이 두려웠습니다. 그들은 비관자의 잠을 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시험에 들지 않도록 기도하라고 권고하실 때는 사실 이렇게 말씀하고 계신 겁니다. “너희는 교훈을 얻기 위해 시험의 현장에 돌아가는 일을 반복하는 대신, 지금 하나님의 능력을 신뢰하는 것을 배우도록 기도해라!”

성경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주께서 하나님을 따르는 자들은 시험들에서 건질 줄 아시고" (베드로후서 2:9). 어떻게요? “너희 안에 계신 분이 세상에 있는 자보다 더 크시다” (요한일서 4:4)라고 노래하는 우리가 될 때까지 우리를 불 아래서 연단하심으로 입니다. 오직 믿음으로 우리가 승리했음을 깨달을 때까지 말입니다.
당신이 유혹에 굴복할 이유는 없지만 때로는 실패할 수도 있을 겁니다! 심지어 하나님의 가장 경건한 자들조차 간혹 그럴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실패하는 우리를 위해 특별한 대처를 마련해 놓으셨습니다. “만일 누가 죄를 지으면 우리에게 아버지와 함께 있는 변호인이 있으니, 곧 의인이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요한일서 2:1).

우리 주님은 우리가 유혹에 굴복하는 것보다도, 그것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를 배우지 않는 것에 대해 훨씬 더 슬퍼하십니다. 그분의 구원 능력이 신뢰받지 않았다는 사실로 인해 그분은 더 아파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무엇을 잘못하는 것보다도,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것을 하지 않는 것 때문에 더 아파하십니다. 승리하는 그리스도인은 그의 삶에서 이렇게 고백하는 자입니다.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하나님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2013년 4월 24일 수요일

두 가지 불변의 진리

그리스도를 위해 살면 살수록 무엇이든 다 쉽게 해결할 수 있다는 방법론을 받아들이기가 더 어려워집니다. 그러나 저 자신의 어려움을 통해, 두 가지 불변의 진리 안에서 저는 많은 위로와 도움을 발견했습니다.

첫 번째 불변의 진리는 ‘하나님은 나를 진실로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자녀를, 그들이 실패를 했던 안 했던, 혼내는 데는 관심이 없으시고, 단지 우리의 연약함으로부터 우리를 건져 내시기만을 원하는 사랑의 아버지십니다.

최근에 저는 목장 주위의 숲 속을 걷다가 그 사랑을 불현듯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한 번도 자유롭고 건강하게 날아다니는 새들에 대해 멈추어 생각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바로 앞 땅바닥에 다리를 다친 새끼 새가 파닥거리고 있었습니다. 날려고 무진 애를 쓰지만 힘없이 흙 속에서 뒤집힐 뿐이었습니다. 저는 그 새를 들어주려고 몸을 구부렸습니다. 그때 익숙한 성경 구절이 번개처럼 떠올랐습니다. “너희 아버지 없이는 그 중의 (참새)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마태 복음 10:29).

저는 한때 그 구절을 “참새 한 마리도 아버지가 그것에 대해 아시는 일 없이는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이해했었습니다. 그런데 마태복음은 “한 마리도 아버지 없이는 떨어지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떨어질 때에도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아버지는 우리 죄 가운데로 오시는 게 아니라, 우리가 떨어져 있는 상황으로 오십니다. 그분은 우리가 떨어져 내리고 있는 순간에서도 우리를 버리지 않으십니다. 이제 아시겠지만, 우리가 바로 그 참새입니다.

때로 우리는 바닥까지 추락했을 때에서야 그분의 놀라운 사랑을 깨닫습니다. 만일 당신이 부상 당하고 불구가 되었을 때에도 하나님께서 당신을 사랑하신다는 확신이 있다면, 당신은 놀라운 승리를 쟁취하신 겁니다. 우리 힘은 그분의 영원한 사랑에 의해 생성됩니다. 그 놀라운 사랑 안에 그저 안식하십시오. 두려워하지 마세요. 곧 구원이 올 것입니다.

두 번째 불변의 진리는, ‘내 믿음이 그분을 가장 기쁘게 한다!’ 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게 하지 못하나니” (히브리서 11:6). 하나님은 우리의 신뢰를 의로 여기십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을 그에게 의로 여기셨느니라” (로마서 4:3).

그분께서 일을 해결해주시는 것이 때로는 왜 그리 오래 걸리는지 이해할 수 없지만, 그분께서 약속을 지켜주실 것을 저는 압니다.

2013년 4월 23일 화요일

십자가의 축복을 받는다는 것

하나님은 실패자들—자기들이 무엇하나 제대로 할 줄 아는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자들을 사용하시기를 기뻐하십니다. 최근에 한 여자분이 제게 이런 편지를 보냈습니다. “제 결혼은 실패하고 있습니다. 저는 자식들을 잘못 키우고 있는 것 같고, 그 누구에게도 아무 가치가 없는 사람 같습니다. 저는 아주 좋은 아내도, 엄마도, 그리스도인도 아닙니다. 저는 세상에서 가장 실패한 자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녀가 바로 주님께서 찾고 계시는 부류의 사람들 중 한 분입니다—자신에게 무언가 좋은 일이 일어나면 그것이 분명 하나님 덕분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그런 사람 말입니다. 그들의 잘난 능력으로 사람들을 감동하게 하는 모든 그리스도인은 결코 하나님을 감동하게 하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이라고 불리는 거짓말쟁이고 단순하며 연약해 빠진 자를 내려다보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 벌레 야곱아, 두려워 말라 … 내가 너를 도우리라… 보라 내가 너로 이가 날카로운 새 타작기구로 삼으리니… 네가 주 안에서 즐거워할 것이라” (이사야 41:14-16).

사람들은 종종 하나님을 이용해서 부, 명예, 영광, 존귀 등을 얻으려 합니다. 재능, 인격, 그리고 명석함이 하나님 왕국을 확장하는데 사용되곤 했지만, 하나님은 그런 것에 감동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의 능력은 우리의 연약함, 즉 그분의 계명을 우리 자신의 힘만 가지고는 결코 순종할 수 없는 우리의 무능함 가운데서 완전해집니다.

하나님은 거룩하고 구별된 삶으로 우리를 부르십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죄의 속박으로부터 자유로워 질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그분의 말씀이 때로는 우리에게 불가능한 도전을 가져다 주기도 합니다: “마귀를 대적하라. 성령 안에서 살아라. 그것들한테서 나와라. 너의 원수를 사랑하라. 너의 모든 두려움을 버려라. 육신의 욕망을 내려놓아라. 죄가 너를 다스리지 못하게 하라.”

이러한 도전들을 이루기 위해 당신이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는 것을 솔직히 시인한다면, 당신은 자신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를 깨닫습니다. 당신의 심령은 “주님, 우리가 어떻게 그토록 크고 거룩한 일들을 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부르짖기 시작합니다. 그때가 바로 주님이 일하시기 시작할 때입니다! 그분은 매우 위로가 되는 메시지를 가지고 오십니다: “네 무기를 내려놓거라. 이제는 그렇게 자신만만하고 강한체하는 것을 멈추어라. 내가 너의 무기이자 힘이다. 네가 결코 하지 못하는 일을 내가 하마. 내가 너에게 나의 의, 거룩함, 안식, 능력을 주겠다. 너는 믿음으로 십자가의 축복을 받는 것 말고는 다른 어떤 방법으로도 너 자신을 구원하거나 나를 기쁘게 할 수 없단다. 나로 하여금 네가 거룩 안에서 성장하는 것을 담당케 하여라.”

2013년 4월 22일 월요일

다윗의 손에는 칼이 없었더라 by Gary Wilkerson

“다윗이 이 같이 물매와 돌로 블레셋 사람을 이기고 쳐 죽였으나 자기 손에는 칼이 없었더라... 블레셋 사람들이 자기 용사의 죽음을 보고 도망하는 지라. 이스라엘과 유다 사람들이 일어나 소리지르며 블레셋 사람을 쫓아 가이와 에그론 성문까지 이르렀고 블레셋 사람의 상한 자들은 길에 엎드러 졌더라” (사무엘상 17:50-52)

다윗이 골리앗을 죽였을 때, 대세는 너무도 극적으로 바뀌었고 이스라엘 백성은 당황한 블레셋 사람들을 도망가게 만들었습니다. 이 구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이 짧은 한 문장 가운데 있습니다. “다윗의 손에는 칼이 없었더라.” 하나님은 다윗의 신뢰를 통해 그분 자신의 신실함을 증명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모든 이스라엘 군사들에게 믿음을 갖게 해 주었습니다. 모든 조롱과 수치는 사라졌고 이스라엘 백성의 자신감, 즉 그들의 하나님이 그들을 위해 싸워 주신다는 확신이 회복되었습니다.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권능이 역사 되는 것을 지켜 봄으로서 나타나는 가장 극적인 효과는, 우리의 사기가 전투로 돌입할 수 있도록 새로워진다는 것입니다. 전쟁은 그리스도의 것입니다. 그분은 우리를 부르셔서 “와서 승리에 능한 내 손을 보아라. 내가 너를 참소하는 자의 목을 베었노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제 그분을 따를 수 있는 권능이 주워진 우리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님, 당신은 저를 버리지 않으셨어요. 당신은 이 모든 수치, 즉, 온갖 좌절뿐 아니라 조롱까지도 허락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신 이유는 긍휼하심 가운데 저로 하여금 당신을 믿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지요."

그러나 우리 대부분은 “주님께서 언제 나를 위해 일하기 시작하실까?” 하며 의아해합니다. 그에 대한 대답은 바로 이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미 시작하셨습니다!” 당신의 승리는 십자가에서 2000년 전에 확보되었습니다. 그분의 십자가 상의 승리는 우리 삶 가운데서 모든 거인을 도망치게 하는 승리와 동일한 것입니다. 당신의 결혼생활이 어려움 가운데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당신과 당신 배우자에게 대항해 맞서는 어둠의 세력을 멸하셨습니다. 당신의 재정에 문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주님이 당신의 미래와 소망을 예비해 놓으셨습니다. 당신의 자녀가 기대했던 만큼의 경건한 삶을 살고 있지 않을 수 있겠지요. 그러나 예수님께서 그들의 구원을 확보해 놓으셨습니다. 우리가 여러 가지 문제로 투쟁 중에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이미 우리의 승리를 확증하셨습니다.

지금 당신은 원수가 패배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까? 당신에게 들려오는 모든 참소의 목소리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당신은 그들 모두에게 이렇게 대답할 수 있답니다. “마귀야, 너는 이제 끝났다. 예수님의 승리가 너를 도망가게 하였다. 나의 승리는 이미 봉인되었고 확정되었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실 때마다, 나의 영웅은 그 승리를 입증해줄 것이며, 세상은 그분의 모든 영광 가운데에서 그분을 바라보게 될 것이다. 모든 사람이, 전투는 칼과 창에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2013년 4월 19일 금요일

승리는 이것이니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곧 우리의 믿음이라” (요한 일서 5:4)

당신은 실패하셨습니까? 당신이 번번이 시달리는 죄가 있습니까? 은밀한 죄를 정복하지 못하는 무력한 겁쟁이라고 당신은 느끼십니까? 그러나 당신 안에 연약함이 있는 동시에 하나님을 향한 불타는 갈망도 있습니까? 그분을 사모하며 가까이 다가가길 원하십니까? 그 갈망과 목마름이 당신에게 승리를 가져오게 하는 열쇠입니다. 바로 그것 때문에, 하나님을 실망하게 함으로 죄의식을 가진 모든 자와 당신이 다른 것입니다. 그것이 당신을 구별합니다. 당신은 그 갈망을 계속 유지해야만 합니다. 의를 쫓아 계속 목말라 하십시오. 당신의 연약함을 절대로 정당화하지도, 결코 그것에 굴복하지도 마십시오. 또 그것을 당신 삶의 일부로도 절대 받아들이지 마십시오.

믿음이 당신의 승리입니다. 아브라함에게도 연약함이 있었습니다. 거짓말을 해서 자기 아내를 거의 간통녀로 만들 뻔 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으므로 의롭게 여기심을 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죄를 인정하기를 거부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당신은 실패했습니다. 아마도 어제, 혹은 오늘도 그랬을 수 있겠지요! 그러나 예수님께서 죄의 권세로부터 당신을 궁극적으로 자유롭게 할 권능을 갖고 계심을 믿습니까? 당신은 예수님 십자가의 의미가 죄의 속박이 부서졌음을 뜻한다는 사실을 믿습니까? 예수님이 당신을 사탄의 속임수로부터 구원하실 것을 약속 하셨다는 사실을 받아들입니까?

정확히 승리가 어디에 있다고 믿는지 말씀 드리겠습니다. 당신의 심령이 예수 안에 있는 모든 승리의 약속을 받아들이게 하십시오. 그 다음은 당신의 믿음이 당신의 심령에 이렇게 말하게 하세요. “나는 내가 원하던 사람은 아직 아닐 수 있지만, 하나님께서 내 안에서 일하고 계신다. 그리고 그분은 나를 붙들고 있는 죄의 속박을 푸는 능력을 갖고 계신다. 그것이 조금씩 일어날 수 있지만 믿음이 승리할 날이 올 것이다. 나는 항상 노예로 있지 않을 것이다. 나는 마귀의 꼭두각시가 아니며 그의 희생물이 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예수님의 능력을 갈망하는 하나님의 연약한 자녀다. 나는 불로 연단된 정금처럼 나오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나를 위해 계신다! 나를 넘어짐으로부터 보호해 주실 수 있고, 너무도 놀라운 기쁨으로 나를 하나님 보좌 앞에 흠 없는 자로 보일 수 있는 그분께 내 모든 것을 의탁한다."

2013년 4월 18일 목요일

하나님의 존귀한 보배들

하나님께서는 연약한 자들을 통해 이 땅에서의 그분의 목적을 달성하고자 작정하셨습니다.

위대한 기도 용사였던 이사야는 우리처럼 그저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였던 다윗은, 하나님의 어떠한 축복도 받을 자격이 없는 살인 하며 간음하는 자였습니다. 베드로는 자신을 가장 사랑했던 분을 저주하면서, 하늘의 주 되시는 하나님을 부인했습니다. 열국의 아버지 아브라함은 자신의 신변을 위해 자기 아내를 노리갯감으로 내주는 거짓된 삶을 살았습니다. 야곱은 속이는 자였으며, 아담과 이브는 완벽하게 마련된 혼인을 악몽으로 바꿨습니다. 이 지구 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자였던 솔로몬은 역사상 가장 어리석은 일들을 행했습니다. 요셉은 미처 성숙되지 못한 장난기로—그 장난이 자기에게 화살로 되돌아올 때까지, 형들을 조롱했습니다. 요나는 회개하는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경멸하며, 온 도시가 불탐으로써 그 도시를 향한 자신의 예언이 정당화되는 것을 보기를 원했습니다. 롯은 그의 두 숫처녀 딸을 색욕에 미쳐버린 소돔인 폭도들에게 내어 주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했고 하나님께 놀랍게 쓰임 받았던 자들, 그러나 그들의 연약함 때문에 거의 좌초되었던 이들의 목록은 계속해서 이어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시며 그들과 함께하고 계셨습니다. “내가 너를 불렀고 너와 함께 할 것이다. 나는 너희 부족함이나 연약함과 상관없이 내 뜻을 성취할 것이다!"

성경에서 가장 격려가 되는 말씀 중 하나는 고린도 후서 4장 7절에 있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바울은 그러한 질그릇들, 죽어가는 자들, 사방에 우겨 쌈을 당한 자들, 당혹해하는 자들, 핍박당하는 자들, 낙담한 자들에 대한 묘사를 계속합니다. 그리고 결코 버림받았거나 절망 가운데 있지 않더라도, 그렇게 하나님께 쓰임 받는 자들은 새로운 몸으로 입혀질 것을 절실히 기다리며 그들 육신의 짐 아래서 계속 신음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능력을 무시하십니다. 그분은 잘해 보려는 우리의 자기중심적인 노력에 웃으십니다. 그분은 높고 능한 자들을 절대 사용하지 않으시고, 대신 세상의 약한 자들을 사용하셔서 지혜로운 자들을 부끄럽게 하십니다.

“형제들아, 너희는 너희의 부르심을 보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은 육신을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않고 권력 있는 자도 많지 않으며 좋은 가문에서 태어난 자도 많지 아니하리라.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어리석은 것들을 선택하심은 지혜로운 자들로 부끄럽게 하시려는 것이라. 하나님께서 세상의 약한 것들을 선택하심은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시려는 것이라.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을 선택하신 것은 없는 것들로 있는 것들을 쓸모 없게 만들려 하심이라. 그리하여 아무 육체라도 그분의 면전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되리라” (고린도 전서 1:26-29)

하나님은 그분의 소중한 보배들을 질그릇에 담으십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아무것도 아닌 것들로 불가능을 가능케 하기를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2013년 4월 17일 수요일

폭풍 한가운데서

“그러나 이제 배는 바다 한가운데 있었고 바람이 반대로 불므로 파도로 인하여 요동하더라. 밤 사경에 예수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그들에게 가시니, 제자들이 그분께서 바다 위로 걸어오시는 것을 보고 불안해하여 이르기를, 영이다, 하고 무서워서 소리 지르거늘 예수님께서 즉시 그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14:24-27).

제자들은 너무도 당황했고 갑작스럽게 압도되어서, 예수님께서 그들을 가까이서 지켜보고 계시다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 중 하나가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이건 마귀가 하는 짓이야. 우리가 경험했던 모든 기적 때문에 마귀가 우리를 죽이려 하고 있어.” 다른 제자는 이렇게 말했을 겁니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 거야? 우리 중 누군가 죄를 지었나? 하나님께서 이 배를 타고 있는 누군가에게 화나셨어!” 또 다른 제자가 이렇게 질문했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왜 이런 일을 당해야 해? 그분께서 시키신 일을 우리가 하고 있잖아. 우리가 순종하고 있는데 왜 갑자기 이런 폭풍이 왔을까?”

그리고 가장 어두운 시간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가시더라.” 예수님께서 폭풍 언저리에 서서, 그토록 사랑하는 그들의 모든 고통을 느끼면서, 그들이 다치지 않도록 보호해 주기를 너무도 원하며, 곤란에 처한 자녀를 도와주고 싶은 열망으로 가득한 아버지로서 기다리시는 것이 얼마나 힘드셨을까요? 그러나 그분은 가장 사나운 폭풍이 임할 때까지는 그들이 결코 그분을 완전히 알거나 신뢰할 수 없음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들의 믿음이 한계에 달했을 때 서야 그분 자신을 드러낼 수 있으셨던 겁니다. 그 배는 가라앉지 않았을 것이나 폭풍이 배를 후려치는 것보다도 더 빨리 그들의 공포가 그들을 침몰시켰을 겁니다. 침몰에 대한 두려움은 물이 아니라 절망이었던 것입니다!

“제자들이 그분을 보고… 불안해하여 이르기를, 영(유령)이다, 하고 무서워서 소리 지르거늘” (마태복음 14:26).

그들은 폭풍 속에서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본 것은 귀신—한 유령이었습니다. 그들이 당하고 있는 환란 속에서 예수님께서 너무도 가까이서 함께 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그들은 생각조차 못했습니다.

우리의 환란 가운데서 예수님을 볼 수 없다는 것이 우리가 모두 직면하고 있는 위험입니다. 대신 우리는 유령을 봅니다. 두려움이 가장 절정에 달했을 때, 가장 어두운 밤에, 폭풍이 가장 광폭할 때, 바람이 가장 요란히 불며 절망이 엄습해올 때, 예수님께서는 항상 우리 가까이 오셔서 폭풍의 구원자, 환란의 주 되시는 자신을 드러내십니다.

“주께서 큰물 위에 앉아 계시나니, 참으로 주께서 영원토록 왕으로 앉아 계시는도다” (시편 29:10).

2013년 4월 16일 화요일

우리는 오늘도 그분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이 들었던 주님의 음성으로 인해 수백만이 믿게 되었습니다. 사울이 “땅에 쓰러져 들으매 한 음성이 있어” (사도행전 9:4). 바울로 개명이 된 후에도 그는 계속해서 주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는 자기 목자의 음성을 알았습니다.

베드로도 구원자의 음성이 자기에게 들릴 수 있도록 자신을 허용했습니다. “베드로는 기도하려고 지붕에 올라 가니라… 또 한 음성이 그에게 나서” (사도행전 10:9, 13). 한 사람이 그분의 음성에 순종함으로 고넬료의 집과 함께 온 이방 민족이 하나님 왕국으로 기꺼이 받아들여지게 되었습니다. 우리 또한 그분의 음성을 들을 수 있도록 우리 자신을 준비시켜야 할 것입니다. “오늘 너희가 그분의 음성을 듣거든…” (시편 95:7). 천국으로부터 듣는 것을 배운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님께서 무슨 일을 하실지 상상해 보십시오!

하나님의 음성이 우리에게 들리도록 기다리는 대신, 우리는 상담자나 심리학자에게 먼저 달려가고, 책자를 읽는다든지 태잎을 들으면서 그분으로부터 무언가 듣기를 갈망합니다. 우리는 한 지도자를 따르기를 원하고 미래를 위한 보장을 원하며, 확실한 방향의 조언을 듣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소수 그리스도인만이 주님께 어떻게 나아가서 그분의 음성을 들어야 하는지를 압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구를 한 번 더 흔들기를 원하십니다. 온 우주는 성령의 역동 하심에 준비되어 있습니다. “너희는 조심하여 말씀하시는 분을 거역하지 마라. 땅에서 말한 자를 거역한 그들이 피하지 못하였거든 우리가 하늘로부터 말씀하시는 분에게서 돌아선다면 더더욱 피하지 못하리로다. 그때에는 그분의 음성이 땅을 흔들었거니와 이제는 그분께서 약속하여 이르시되, 내가 또 땅뿐만 아니라 하늘도 아직 한 번 더 흔드노라, 하셨느니라” (히브리서 12:25-26).

그분께서 약속하셨습니다. “내 음성이 다시 한번 들릴 것이다. 듣는 자들은 이 땅을 흔들 것이다. 하늘과 땅이 움직일 것이다. 내 음성을 들음으로 말미암아 누구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요한계시록에서 마지막 라오디게아 교회에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보라, 내가 문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함께 만찬을 먹고 그는 나와 함께 먹으리라” (요한계시록 3:20).

그것이 바로 교회를 향한 그리스도의 마지막 경고입니다. “문을 열어라. 나로 하여금 네 은밀한 기도의 방으로 들어가게 하라. 내게 말하고 또 내가 너와 대화하게 하라. 나와 교제하라. 그렇게 함으로써 온 세상에 다가오는 유혹의 때로부터 내가 너를 보호할 것이다.”

2013년 4월 15일 월요일

“그리스도의 승전” by Gary Wilkerson

“그리스도의 승전”은 초대교회 교부들이 예수와 그의 대속에 대해 묘사할 때 사용하곤 했던 라틴어입니다. 대강 번역하자면 “우리의 승리는 우리 안에 있는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50대 50의 확률에서 적을 물리쳤을 때 우리는 이렇게 생각하기 쉽습니다. “내가 싸움에서 이겼다.” 그러나 우리의 적이 구척장신일 때, 그를 꾸짖었지만, 더 강하게 진격해 올 때, 우리의 모든 자원이 고갈 났을 때, 그리고는 마침내 두 손 들고서 “제가 더는 할 수 없습니다”고 고백할 때,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원하는 바로 그곳에 네가 있구나.”

대개 구약에 기록된 역사적 사건들은 영적 진리로서가 아닌 도덕적 지침으로 아이들에게 가르칩니다. 예를 들면, 요나의 이야기는 “하나님께 불순종하지 마라. 그렇지 않으면 큰 곤란을 당하게 될 것이다”는 교훈으로 가르쳐집니다.

우리 대부분은 주일 학교에서 다윗과 골리앗의 이야기를 “담대하고 용감하라”는 교훈으로 배웠습니다. 그런데 이 다윗 이야기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의 문제는, 우리가 아이들에게 그들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라고 가르치고 있다는 데에 있습니다. 그 어떤 이스라엘의 병사도 골리앗과의 일대일 싸움에서 살아남지 못했습니 다. 심지어는 가장 용감한 용사조차도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영적 싸움을 할 때 용맹과 담대함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다윗은 자기가 골리앗과 대적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너무 어렸고 아직 병사도 아니었습니다. 다윗이 전쟁터에 나타났을 때 갖고 있었던 유일한 무기는 형들에게 줄 빵과 치즈뿐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다윗이 달랐던 점은 그 싸움이 그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인식하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골리앗의 조롱을 들었을 때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날 주께서 너를 내 손에 넘겨 주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게서 네 머리를 취하고…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온 땅이 알게 하겠고, 또 주께서 칼이나 창으로 구원하지 아니하심을 이 모인 모든 무리가 알게 하리라. 전쟁은 주께 속한 것인즉 그분께서 너희를 우리 손에 넘겨 주시리라” (사무엘상 17:46-47).

영적 승리는 결코 우리에게 속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의 구원자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에서 다윗은 우리의 구원자이신 그리스도의 표상입니다. 그분은 어떤 마귀도 저항할 수 없는 권능으로 우리의 모든 고통과 절망을 해결하십니다. 그날 골리앗은 전혀 승산이 없었습니다. 그 싸움이 주님의 것이라는 단 한 가지 이유 때문에 말입니다.

2013년 4월 12일 금요일

열매 맺음

성경 말씀 중에서 저를 깊이 감동시키는 부분이 있는데,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부분입니다. “나는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시니, 내 안에서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모든 가지는 그분께서 제거하시고 열매를 맺는 모든 가지는 깨끗하게 하사 그것이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하시느니라...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버려져서 시드나니 사람들이 그것들을 모아 불 속에 던져 태우느니라" (요한복음 15:1, 2, 6).

저는 그리스도의 이 말씀을 읽고 또 읽었지만, 이 말씀이 지니고 있는 강한 설득력에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성령께서 이 말씀에 대한 이해의 심각성을 강조하셨던 것입니다. "내 아버지는 농부시니... 내 안에서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모든 가지는 그분께서 제거하시고."

그리스도인이 열매를 맺어야 한다는 사실이 하나님께는 선택의 여지가 아닙니다. 그분은 가지들이 열매 맺기를 인내로 기다리시며, 그분의 포도나무와 접붙여진 모든 가지를 대단한 열정과 관심으로 돌보십니다. 그분은 가지 치는 칼을 손에 들고 가까이 서서, 성장을 방해할 수 있는 부패나 병충, 또는 질병 등의 미세한 흔적이라도 발견하시려고 사랑스럽게 지켜보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가지로부터 열매를 기대하십니다. 열매 없이는 그분을 영예롭게, 그리고 영광스럽게 해 드리거나, 그리스도의 참된 제자가 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시나니, 이로서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 (요한복음 15:8).

열매를 맺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모든 것, 즉,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사명을 완수하는 것과 우리의 기도와 간구가 응답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나를 택하지 아니하고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것은 너희가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남아 있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그분께서 그것을 너희에게 주게 하려 함이라" (16절).

사실상 열매를 맺는다는 것은 단순히 우리가 무엇을 한다는 것보다는 우리가 무엇이 되느냐에 관한 것입니다. 저는 그리스도의 생명이 제게로 흘러 들어오는 것을 아무것도 막는 것이 없을 때 열매를 맺습니다. "이제 너희는 내가 일러 준 말로 깨끗하게 되었으니" (요한복음 15:3). 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의미하신 것입니다.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네가 내 말을 믿었으니 그 말씀에 떨며, 그 말씀으로 하여금 모든 감춰진 비밀이 드러나게 하며, 네 모든 어두운 것들을 빛으로 가져와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너를 정결하게 하라. 방해 요인은 모두 없어질 것이다!"

2013년 4월 11일 목요일

그리스도의 주 되심

그리스도의 주 되심에 순복 하는 자들에게는 그분의 힘과 그분을 아는 것이 증가하게 됩니다. 그들은 실제로 새로운 정신적, 그리고 육체적 힘을 얻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지속해서 그분 자신의 힘을 부어주시기 때문에, 그들의 여정에서 그들이 지치지 않습니다.

“이런 연유로 우리도 그것을 들은 날부터 너희를 위하여 간구하기를 그치지 아니 하노니, 곧 너희가 모든 지혜와 영적 지각 안에서 그분의 뜻을 아는 지식으로 충만케 되어 주께 합당이 행하므로 모든 일에 기쁘시게 하고 선한 일마다 열매를 맺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자라나며, 또 그분의 영광의 힘을 따라 모든 능력으로 강화되어 기쁨으로 모든 인내와 오래 참음에 이르러” (골로새서 1:9-11)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주 되심에 순복 하는 자들을 그리스도가 오실 때까지 흠 없게 보존하실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그분이 명하는 대로 행하며 우리 자신의 명철에 의지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 어떤 것도 부족함이 없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그분을 기뻐하시게 하기 위한 우리의 모든 필요를 공급하실 것입니다. 주님 자신께서 세상 끝날까지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도록 붙들어 주시고 지켜 주실 것입니다!

“이는 너희가 그로 인해 모든 일, 곧 모든 말과 모든 지식에 부요 해져서 그리스도의 증거가 너희 안에서 확고하게 되어 너희가 아무 은사에도 부족함이 없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기다림이라. 또한 그분께서 너희를 끝까지 확고하게 지키시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게 하시리라” (고린도 전서 1:5-9)

우리는 우리의 삶을 예수님의 보호 하심 가운데 맡겨 드려야 합니다. 그때야 우리를 붙드시고 지켜 주시는 것이 그분의 책임이 되는 것입니다. “주께서는 신실하시어 너희를 견고케 하시고, 악으로부터 지키시리라” (데살로니가 후서 3:3). 그분은 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신실하신 창조주께 그들의 혼을 지키시도록 맡길지어다” (베드로 전서 4:9).

2013년 4월 10일 수요일

예수님은 나의 삶의 왕이 되십니다

당신이 이렇게 말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저는 예수님이 제 삶에서 왕이 되시기를 원합니다. 저는 그분께서 제게 명하시는 모든 것을 하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는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임할 놀라운 두 가지 축복에 대해 알려 드리겠습니다.

첫 번째로 성경은, 만일 당신이 그분의 권면과 인도하심을 받기 위해 기다리며 예수님께 순복 한다면, 당신이 그분의 거룩하심에 참예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 우리 육신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늘 영들의 아버지께는 더욱 복종하며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 그들은 정녕 자기들이 옳다고 생각한 대로 며칠 동안 우리를 징계하였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유익을 위하시고 또 우리로 그분의 거룩하심의 참여자들이 되도록 하시느니라.” (히브리서 12:9-10)

바울은 우리의 모든 죄와 두려움에 대한 지배권을 달라고 간구하며 예수님께 나아가라고 우리에게 명하고 있습니다. “또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 내어 주지 말고 다만 너희 자신을 죽은 자들로부터 살아난 자들처럼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죄가 너희를 주관하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기 때문이라” (로마서 6:13-14)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만일 네가 풍성한 삶, 진실하며 온전한 삶을 알기 원한다면, 내게 복종하라. 그러면 내가 두려움, 죄책감 그리고 정죄 없는 삶을 네게 줄 것이다!”

두 번째로, 그리스도께서 주 되심에 순복하는 자들은 두려움이나 걱정 없이 평강 가운데 살게 될 것입니다. “우리를 우리 원수의 손에서 구하여 내심은 두려움 없이 주를 섬기기를, 우리의 전 생애를 통하여 그분 앞에 거룩함과 의로움으로 하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 하나님의 온유하신 자비로 말미암아, 높은 데로부터 여명이 우리에게 임하여 흑암에 있는 자들과 죽음의 그늘에 앉아 있는 자들에게 비치고 우리의 발걸음을 화평의 길로 인도하리로다” (누가복음 1:74-75, 78-79)

이 얼마나 놀라운 약속입니까! 만일 우리가 우리의 삶을 그분께 양도하면, 그분은 우리의 어둠 가운데 그분의 빛을 비추시어 우리를 평강과 안식 가운데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그 마음 가운데 그리스도를 왕좌에 모신 자는 무언가 틀립니다. 그러한 삶은 모든 이해를 뛰어넘는 평강이 흘러나오며, 당신은 그 사람의 얼굴과 태도에서 그 평강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2013년 4월 9일 화요일

담대하게 지성소에 들어가나니

히브리서 10장은 한 놀라운 약속을 담고 있습니다. 이 장은, 하나님의 문은 항상 우리를 향해 열려 있어서, 우리가 아버지께 언제든지 나아갈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로 인하여 담대하게 지성소에 들어가나니, 그가 우리를 위해 바치신 새롭고 살아 있는 길로 휘장, 곧 그의 육체를 통하여 들어가느니라. 또한 하나님의 집을 다스리는 대 제사장이 계시니, 우리가 믿음의 온전한 확신 가운데서 진실한 마음으로 다가가자. 이는 우리의 마음은 악한 양심으로부터 피 뿌림을 받았고 우리의 몸은 순수한 물로 씻겨졌기 때문이니라.” (히브리서 10:19-22)

후에 따르는 구절을 통해 우리는 주의 날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다는 충고를 받습니다. “어떤 사람들의 습관처럼 우리 자신들이 함께 모이는 것을 저버리지 말고 서로 권면하여 그날이 가까워져 오는 것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25절).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재림이 가까워져 옴으로, 지금이라도 너는 내 얼굴을 구해야만 한다. 지금이 바로 네 기도의 골방으로 들어가 나를 알아야 할 때이다!”

저는 우리가 이미 금융체계의 붕괴가 가까워져 오는 징조들을 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폭력과 부도덕이 증가하며 우리의 사회는 쾌락에 빠져 있습니다. “광명의 천사들” 같은 거짓 선지자들이 마귀의 교리로 많은 사람을 속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공포 때문에 사람들의 심장을 멈추게 할 환란의 때를 언제라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오기 전에, 히브리서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진리가 당신으로부터 빠져나가게 하지 마십시오! 근신하고 깨어 있으십시오. 당신에게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임재로 들어가는 문이 열려 있습니다. 그러니 온전한 믿음의 확신을 가지고 그분께 들어가서 당신의 간구를 올려 드리세요. 그리스도의 보혈이 이미 당신을 위해 길을 열었기에, 당신과 아버지 사이에 그 어떤 것도 끼어들지 못한답니다. 당신에게는 지성소에 들어갈 모든 자격과 당신에게 필요한 모든 도움을 받을 권리가 주워졌으니까요!”

2013년 4월 8일 월요일

성령 안에서 행하십시오 by Gary Wilkerson

우리 중 대부분은 우리 안에서 일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거의 느끼고 있지 못한다고 시인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안에 거하시는 하나님의 임재 하심을 쉽게 의심하곤 합니다. 바울은 이러한 딜레마에 대해서 갈라디아서를 통해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갈라디아서 5:16).

여기에서 말하는 바울의 권면이 들리긴 간단해도, 우리가 순종하기에는 어렵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를 악물고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오늘 성령 안에서 행할 거야.” 그 후 한번 실족하게 되면 우리는 바로 자신들이 “영적”이지 않다고 생각하고는 그보다 더 열심히 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또다시 우리는 율법 아래 있게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성령 안에 있다는 것을 믿기보다는 오히려 육신의 능력 쪽으로 이미 기울어졌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5장 18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리라.” 다시 말하면, 당신 안에 거하시는 하나님의 영이, 당신께 능력을 공급하는 그분의 은혜로 언제든지 들어갈 수 있는 통로를 제공하신다는 겁니다. 바울이 “성령을 좇아 행하라”고 말하는 것은 “율법 아래서가 아니라 은혜 안에서 행하라”는 뜻입니다.

그런 다음 바울은 성령 안에서 행함의 열매를 우리에게 알려 줍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5:22-23).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이러한 것들은 우리가 무엇을 행함으로 인해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들은 하나님이 우리 안에 심으시고 우리 안에서 행하신 그분의 열매입니다.

때로는 당신이 많은 사랑을 느끼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은 당신 안에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당신 안에 사랑을 심어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기쁨과 평안을 느끼지 않을 수도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당신 안에 그 두 가지 모두를 깊숙이 심어 놓으셨습니다. 그분의 놀라우신 영광과 당신의 깊은 축복을 위해, 그분의 영은 매일 매 시간 당신 안에서 일하고 계십니다

가장 놀라운 성경 말씀 중 하나로, 바울은 인간의 한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을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성령의 생명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로마서 7:25, 8:1-2)

2013년 4월 5일 금요일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기도를 들으신다고 믿지 않습니다

일부 성도들은 응답되지 않은 기도로 인해 낙심해서 마침내는 포기해 버립니다. 그들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내게는 기도가 아무 소용이 없어. 그런데 왜 내가 기도해야만 해?”

이사야 선지자 시대의 이스라엘 민족도 그와 흡사한 태도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때 이사야는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그들은 마치 의를 행하며 자기 하나님의 규례를 저버리지 아니한 민족과도 같이 날마다 나를 찾아서 내 길을 알기를 즐거워하나니…그들이 내게 구하며 하나님께 가까이 나오는 것을 즐거워하는도다. 그들이 말하기를, 우리가 금식하였으되 어찌하여 주께서 보지 아니하시나이까? 우리가 우리 혼을 괴롭게 하였으되 어찌하여 주께서 알아주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는도다” (이사야 58:2-3).

이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나는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나는 옳게 행하고 죄를 멀리하며, 지금까지 기도로 그분을 찾으며 충실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그분은 전혀 응답해주지 않으셨어요. 그런데도 왜 계속 그분 앞에서 내 영혼을 괴롭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께서는 단지 그들 자신의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한 것들을 구하는 자들의 기도에는 응답하지 않으신다고 야고보는 기록했습니다: “너희가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그것을 너희의 정욕에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 (야고보서 4:3). 달리 표현하면: “너희는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있지 않다. 너희는 무엇이든 그분이원하는 것에 순복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 그보다도, 너희 마음을 충족게 할 것들을 얻고자 그분을 설득시키려 한다.”

우리 하나님은 지극히 신실하십니다. 바울이 기록하기를, “참으로 하나님은 진실하시되 사람은 다 거짓말쟁이라 할지어다” (로마서 3:4). 그가 말하고 있는 것은 이것입니다. “백만의 목소리가 ‘기도는 아무 소용없어. 하나님은 내 기도를 듣지 않으셔!’라고 외치는 목소리를 네가 듣는다 할지라도 상관없다. 그 모든 자가 거짓말쟁이라고 불리게 하라.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틀림이 없기 때문이다. 그분은 우리 기도를 신실하게 들으신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믿고 기도할 때에 무엇을 구하든지 모든 것을 받으리라” (마태복음 21:22). 간단히 설명하면,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너희가 진실로 믿는다면, 천부로부터의 응답을 바라며 인내하려는 의지가 있을 것이다. 그것이 얼마나 오래 걸릴지 모른다 할지라도, 너희는 믿음을 굳게 붙들고 그분이 응답하실 것을 믿을 것이다.”

“오 주를 두려워하는 자들을 위하여 주께서 쌓아 두신 주의 선하심, 곧 사람들의 아들들 앞에서 주를 신뢰하는 자들을 위하여 주께서 베푸신 그 선하심이 어찌 그리 큰지요!” (시편 31:19). “주를 찾는 자들에게는 모든 좋은 것이 부족하지 아니하리로다” (34:10).

2013년 4월 4일 목요일

왜곡된 우선순위

기도를 등한시하는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우선순위가 왜곡되어 있습니다. 많은 성도는, 만일 시간이 나게 되면 그때 기도하리라고 다짐합니다. 그러나 매주 세차하고, 집 청소하고, 친구들 방문하고, 외식하고, 쇼핑하고, 스포츠 게임을 시청하느라 그리스도를 찾는 일이 덜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단순히 기도하기 위해 시간을 할애하지 않습니다.

노아 시대 사람들과 롯 시대 사람들 사이에는 다를 것이 없었습니다. 그들의 가장 우선순위는 먹고 마시고, 사고팔며, 시집 장가가고, 가족을 돌보는 일이었습니다. 그들은 임박한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메시지를 들을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심판이 임했을 때, 아무도 준비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유감스럽게도, 수세기가 지나는 동안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에게 하나님은, 그들의 우선순위 명단 가장 밑에 계시고, 수입, 미래 삶의 보장, 쾌락, 가족 등은 명단 꼭대기에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께서는 당신 삶의 찌꺼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기도 제목들을 빨리 던져 올릴 수 있을 만큼만의 잠깐 짬 내는 시간이 바로 그런 것입니다. 그런 것은 기도의 헌신이 아닙니다.

말라기 선지자는 이렇게 썼습니다: “너희가 눈먼 것을 생물로 드리면 그것이 악하지 아니하냐? 너희가 다리 저는 것과 병든 것을 드리면 그것이 악하지 아니하냐? 이제 그것을 네 총독에게 드려 보라. 그가 너를 기뻐하겠으며 너를 받아 주겠느냐?” (말라기 1:8).

그가 말하고 있는 것은 이것입니다. “너희는 아무 보잘것없는 농장 동물들을 하나님 전에 드리려고 가져오는구나—무관심하고 아무 배려 없는, 새것이 아닌 헌것으로 말이다. 하물며 너희 총독에게 그런 선물을 해 보고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보아라!”

하나님께서는 백성이 그분께 드려지는 희생물을 고를 때 그들의 가축을 조심스럽게 살펴보고 잘 점검해서, 가장 완벽한 표본만을 고를 것을 기대하셨습니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서 똑같은 것을 기대하십니다. 그분은 서둘러서 억지로 짜낸 시간이 아닌, 우리의 소중한 시간을 원하십니다. 우리는 그러한 시간을 내어 드리는 것을 최우선으로 해야만 합니다!

한번은 제가 미국에서 가장 큰 교회 중 한 목사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 분은 제가 보아온 사람 중에서 가장 분주한 사역자였습니다. 그는 사과도 하지 않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기도할 시간이 없습니다.” 그 말의 진정한 의미는 이렇습니다. “저는 기도를 전혀 중요시하지 않습니다.” 그분의 교회를 방문했을 때 저는 회중 가운데서 성령의 임재를 전혀 느끼지 못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제가 설교했던 교회들 중 가장 메마른 교회였습니다. 담임 목사가 기도하지 않는다면 그 교회에 무슨 생명이 있겠습니까?

자신의 삶 속에서 가족, 직업, 여가생활, 그리고 다른 무엇보다도 기도가 최우선이 되지 않는 한, 어떤 그리스도인도 기도하기 위한 시간을 아껴두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지 않는 한 그의 제물은 변질된 것입니다!

2013년 4월 3일 수요일

값싼 사랑

어떤 사람이 예수님을 사랑하는 정도를 표현할 때 제가 “미지근한”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가 있는데, 그 의미는 주님을 향한 그의 사랑이 차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그의 사랑이 “값싼”, 다시 말하면 별로 비싸지 않다는 뜻입니다. 한 예를 보여 드리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요한계시록 2장에서 에베소 교회에 말씀하셨을 때, 그분은 먼저 그들이 했던 모든 일을 칭찬하셨습니다. 그들이 죄와 타협하는 것을 미워하고, 거짓 교리를 받아들이는 것을 거부하고, 박해당했을 때 결코 약해지거나 포기하지 않았으며, 항상 복음을 위해 분투했던, 믿음으로 열심히 행했던 그들의 노고를 인정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에 대해 한가지 유감을 갖고 계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분을 향한 강렬하고도 값비싼 사랑을 그들이 져버렸다는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너를 책망할 것이 조금 있나니, 이는 네가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기 때문이라” (요한계시록 2:4).

그들의 모든 헌신에도 불구하고, 사랑과 절제로서 예수님과 함께 동행하는 것을 그들이 소홀히 했던 것입니다. 이제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나와의 첫사랑을 잃어버렸고, 내 임재로 들어와서 나와 교제하는 소중한 규율을 저버렸다.”

이것을 유념해 주십시오. 여기서 예수님께서는 처음부터 그분을 사랑해본 적이 없는 차갑고 피상적인 그리스도인들에 대해 말씀하고 계신 것이 아니라, 불타는 사랑을 가지고 그분을 믿기 시작했던 성도들에 대해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분은 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한때는 나를 사랑했던 자라도, 그의 열정이 식도록 내버려해두고 기도도 거의 하지 않게 변할 가능성이 있다.”

우리의 신랑 되시는 그리스도께 이것이 얼마나 모욕적일지 생각해 보십시오. 한 남편과 아내에게 둘만의 친밀한 교제가 없다면 그것을 결혼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 말씀하고 계시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분은 당신과의 친밀한 교제의 시간을 원하십니다!

당신이 교회에서 아무리 큰소리로 주님을 찬양한다 할지라도, 얼마나 그분을 사랑하는지를 수없이 말씀드린다 할지라도, 또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다 할지라도 소용없습니다. 당신이 많은 구제헌금을 하며 사람들을 사랑하고 죄를 미워하며 잘못 행하는 자들을 권고하며 산다 하더라도, 당신이 지속적으로 그리스도의 임재로 빨려 들어가지 않는다면, 그분을 향한 당신의 사랑을 잃어버린 거나 다름없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향한 밝고 불타는 사랑으로 돌아가지 않는 한 우리의 모든 수고는 헛됩니다. 우리는 이렇게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사랑한다는 것이 꼭 어떤 일들을 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야. 그분과의 친밀함을 유지하려면 내 삶에서의 절제가 있어야 하고, 그것은 내가 감당해야 할 일이야.”

2013년 4월 2일 화요일

그리스도인이 기도하는 일이 왜 어렵습니까?

우리 삶에서의 모든 해답은 믿음과 병행하는 기도라는 것을 성경은 명확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썼습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서 기도와 간구로 너희가 요청할 것을 감사와 더불어 하나님께 알리라” (빌립보서 4:6). 바울이 말하고 있는 것은 이렇습니다. “네 삶의 모든 영역에서 주님을 찾아라. 그리고 네 기도를 들으시기 전에 미리 감사를 드려라!”

바울은 우리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 친구한테 먼저 찾아가고, 그런 후 목사님이나 상담자에게 가보고, 마침내 주님 앞에 무릎 꿇는 마지막 수단으로서가 아닌, 항상 기도가 첫째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오직 너희는 첫째로 하나님의 왕국과 그분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태복음 6:33). 우리는 먼저 주님께로 나아가야만 합니다!

우리 교회는 수많은 상심한 그리스도인들로부터 가슴이 미어지는 편지들을 받습니다. 가족이 분열되고, 오랫동안 그리스도와 함께 신실하게 동행했던 사람들이 좌절과 두려움 속에 살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각자, 죄, 우울증, 세속화, 탐욕 등과 같은 것들에 의해 지배당해 왔습니다. 그리고 한 해 두 해 시간이 흐르면서 그들의 문제는 더 심각해졌습니다.

그런데 이들의 편지에서 제가 가장 놀랐던 것은, 소수의 그리스도인만이 기도에 대해 언급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테잎이나 책자, 상담소, 라디오 상담 등 온갖 종류의 해결책을 찾으려 했으나 기도는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위기에 처했을 때 하나님을 찾으며 그들에게 절실히 필요한 도움을 구하는 것이 왜 그리도 어려울까요?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그분 자녀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자비로운 사랑으로 응답하신다는 것을, 성경은 다음과 같이 증명하고 있습니다.

• “주의 눈은 의로운 자들 위에 머무르며 그분의 귀는 그들의 부르짖음에 열려 있도다” (시편 34:15).

• “의로운 자들이 부르짖으매 주께서 들으시고 그들의 모든 고난에서 그들을 건지시는도다” (17절).

• “그분 안에서 우리가 가진 확신이 이것이니, 곧 우리가 그분의 뜻대로 무엇이든 구하면 그분께서 우리 말을 들으신다는 것이라. 우리가 무엇을 구하든지 그분께서 우리 말을 들으시는 줄 우리가 안즉, 또한 우리가 그분께 구하여 청원한 것들을 얻는 줄 우리가 아느니라” (요한일서 5:14-15).

• “너희가 믿고 기도할 때에 무엇을 구하든지 모든 것을 받으리라” (마태복음 21:22).

이 말씀들은 하나님의 돌보심에 대한

2013년 4월 1일 월요일

그분은 당신을 새롭게 만드셨습니다! by Gary Wilkerson

당신은 자유롭게 되셨습니까? 아마도 당신은 이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그럼요! 나는 예수님에 의해 씻김 받고 구원 받았으며 거룩하게 되었고, 이제는 그분을 위해 삽니다.”

그렇다면 여기 다음 질문이 있습니다: 당신 나날의 삶이 당신이 방금 말한 그 영광스러운 자유를 반영합니까? 당신의 친구들, 배우자, 그리고 자녀가 당신이 자유롭게 되었다고 말할까요? 아니면 당신은, 오르락내리락하는 영적 시소를 타고 있다고 느끼는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과 같습니까? 당신의 그리스도와의 여정이 끊임없이 오르락내리락하며, 한순간은 영적인듯하다가도 금방 육정으로 전락해 버리곤 합니까?

믿음으로 우리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구원과 대속, 성화 의 위대한 진리를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우리 대부분은 이러한 “영적 진리”가 다른 세상에나 존재하는 것처럼 삽니다. 우리는 매주 교회에 가서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은혜를 찬양하며 기뻐합니다. 하지만 그분께서 주신 자유(구원)의 선물이 우리 나날의 삶 속에서 실현되고 있습니까?

우리 모두는 가능하면 생각과 행위를 정결하게 지키려 분투합니다. 아마도 당신은 이번 주에 당신 배우자에게 불쾌한 말을 했고, 그로 인해 괴로워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내가 왜 이러지? 이 결혼생활에 왜 내가 축복이 될 수 없을까?”

우리는 하나님과의 동행에서 실족할 때마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정말로 나를 자유롭게 하셨을까?” 그리고 당신이 구원받았는지에 대해서조차 의아해할 것입니다. 여러분, 그것은 자유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 안에서 진정으로 자유를 얻는다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그 첫 번째 증거로는 이렇게 말씀하신 예수님께로부터 입니다.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태복음 6:27, 33).

그리스도께서는 영적 삶 속에서 갈등하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같은 말씀을 하십니다: 걱정하지 마라! 그분과의 동행에서 당신이 매우 실패했다 할지라도 상관없습니다. 그분께서 선포하셨습니다. “너는 새로운 피조물이라” (고린도후서 5:17). 당신이 예수님을 따르기로 선택한 순간부터 그분은 당신을 새롭게 만드셨고, 그것은 절대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당신이 너무 멀리 떠나서 해매고 있다고 생각할 때조차 예수님께서는 그 반대로 말씀하십니다: “걱정하지 말아라. 네가 나와 친교 할 수 있도록 너를 위해 모든 것을 준비해 놓았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