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2월 25일 목요일

당신도 행할 수 있습니다

몇 달 동안 저는 과부, 고아, 헐벗은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왔습니다. 궁핍해서 더 이상 보험료를 낼 수 없거나 살 곳이 없는 사람들에게서 편지를 받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만군의 여호와여, 먹을 것을 주시고 필요한 것을 채워주십시오”라고 간청합니다. 마침내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기도만 하는 게 아니라 더 많은 것을 행해야 한다.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 네가 그들을 먹이거라. 너에게는 능력이 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잘 생각하셔야 할 것은 아무도 좋은 일을 행하는 것만으로 구원받을 수 없지만, 그 일로서 심판받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얼마나 많은 헐벗은 사람을 입히고 굶주린 자를 먹였는가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중요 점은 “주님을 구주로 고백하고서도 나만을 위해 살았는가? 욕심스럽고 과하게 사모으느라 예수님을 잘못 증거가 되고 있는가? 도움이 필요하고 가난한 사람들의 필요를 눈감고 지나쳤는가?”입니다.

죄로 물든 이 세상에 우리의 증거가 가져야 할 조건은 말씀과 행동 두 가지 다입니다.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것이 돕는 행위에서 떨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야고보가 말하듯이, 행하는 것은 복음의 능력을 증거가 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약 2:14-16).

많은 크리스챤들이 예수님의 계시에 두 가지 방법으로 반응합니다. ‘쉬운 복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은 혹독하지 않으셔. 최후의 심판일 설교뿐이야. 하나님은 사랑이 너무 많으셔서 가혹하게 심판하지 않으셔”라고 합니다. ‘강한 복음’의 사람들은 “이건 너무 엄격하고 원하는 것이 많아. 이러한 부담스러운 말은 받아들이지 않겠어. 나는 절대 만족하게 할 수 없어”라고 말합니다.

이 두 가지의 복음들은 제각각의 방법으로 정당화하고 답보합니다. 한쪽은 믿지 않는 사람들을 위한 부활을 증거가 되려고 합니다. 다른 쪽은 기도 모임을 열고 가난한 사람의 필요를 채워주시도록 하나님께 여쭙니다. 크리스마스 때에는 도움이 필요한 가족들에게 선물 바구니를 나눠주고, 다른 때에는 구걸하는 사람에게 동전을 줍니다. 하지만 비극적이게도 예수님께서 명하신 대로 온전히 행하는 헌신은 아주 적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