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2월 1일 월요일

주는 삶by Gary Wilkerson

아버지는 주는 본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주는 가정에서 자란 아이는 나눌 줄 알고, 예수님은 아버지의 주는 본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주는 삶으로 가족의 이름을 물려받으라고 손짓하십니다.

그러기 위해서 예수님은 최후의 만찬에서 놀라운 그림을 제시해주십니다. 떡과 포도주를 들어 ‘받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리는 나의 피니라’(막 14:22-23)라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떡에 축사하시고 떼어 나누어 주신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이렇게 함으로 주님은 부어주는 삶이 어떤 것인지 몸소 보여주셨습니다. 축복되어지고 부서졌으며 나누어졌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과 딸의 모습입니다.

이것이 필요를 채우는 것이 주목적인 보통 사람과 다른 이를 위해 삶의 목적은 찾고 부어주는 사람의 중요한 차이점입니다. 주님 안에서 저희는 ‘받는’ 삶에서 ‘주는’ 삶으로 전환하라고 부름 받았습니다. 육적인 영에서 주님의 신실한 영으로 바뀌는 데 필요한 힘을 예수님께서 주십니다. ‘나에게서 받은 축복을 다른 이들에게도 나누어 주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영광스러운 신학체계이지만 우리의 삶에서 거쳐야 할 가장 어려운 전환점입니다. 지난 몇 년간 크리스챤 인기도들은 ‘받는’ 삶에 점을 두고 있었습니다. 주된 주제는 ‘얼마나 하나님께서 자녀들을 축복하기 원하시는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주는 본성 때문에 이것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주님의 천국 문을 열어 놀라운 자원들을 저희에서 부어주고 싶어 하십니다. 진정 우리의 결혼, 건강, 재정들에 복주고 싶어 하십니다. 저도 그런 책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책들에는 없는 것이 있습니다. ‘받는’ 삶보다 훨씬 축복받는 것이 ‘주는’ 삶입니다. ‘받는’ 것은 쉽지만 ‘주는’ 것은 어렵고 보람찹니다.

예수님께서 축사하시고 떡을 떼고 나누어 주신 것을 기억하십시오. 종종 첫 번째 관문에서 많은 교회 주저앉습니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축복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않습니다. 주님 앞에서 삶이 부서지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에 ‘주는’ 마지막 단계로 가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희 안에 있는 하나님 축복의 목적을 절대 채우지 못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