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2월 14일 토요일

그분 사랑의 손길 by Jim Cymbala

교리의 순수성을 지키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그것이 신약시대 교회의 전체 모습은 아닙니다. 사도들은 옛 복음성가의 가사처럼, 단순히 그들의 자리를 지키는 것보다 더 많은 일을 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권능을 주시고 그들을 움직이셔서, 전체 사회에 영향을 미칠 수 있게 되기를 간청했습니다.

새벽 세시까지 성경이 해석되며 교리가 논의되었던 너무도 많은 곳에서, 바로 그 교리의 영은 상실되어 있었습니다. 1700년대 초기에 윌리엄 로(William Law)라는 한 영국의 묵시 저술가는 이렇게 썼습니다. “당신이 성경의 어떤 장이라도 읽으면서 많은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당신을 온전히 하나님의 영으로 돌이키게 하며 그분과의 온전한 연합으로, 그리고 그분을 향한 전적인 의존으로 당신을 인도하지 않는 한, 당신은 연약하고 공허하며 변화되지 않은 채로 남을 것입니다.”

우리가 그러한 단절의 고충을 겪고 있는지를 인식할 수 있는 길은, 외관이 더러운 사람들이나 우리와 달라 보이는 사람들, 또는 보편적 군중의 이미지에 걸맞지 않은 사람들을 향한 우리의 태도입니다. 교회가 단지 한 특정한 부류를 섬기기 위해 부름 받았다는 사상은 신약에서 찾아볼 수 없습니다. 죄의 대가는 결코 유쾌한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사면해주시고 치유해 주시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누가복음 19:10) 하나님의 영은 자비와 연민과 구제의 영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종종 그들과 다른 사람들에게 가까이 가는 것을 주저합니다. 그들은 물고기를 잡기 전에 하나님께서 그것을 깨끗이 해주시기를 기대합니다. 어떤 사람이 금고리를 몸의 이상한 부위에 부착시켰다든지, 어떤 사람에게서 악취가 난다든지, 또는 그사람의 피부색이 다를 때, 그리스도인들은 주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어떻게 우리에게 그분의 손을 뻗치셨는지를 잠시 생각해보십시오. 만일 “손을 뻗치다”라는 말의 진정한 의미가 존재한다면, 그것은 바로 거룩하고 순수한 신성의 하나님께서, 더럽혀지고 사악하며 불경건한 우리에게 그분 자신을 내어주셨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을 수도 있습니다. “너희는 나와 너무도 다르고 너무도 혐오스러워서, 내가 너희와 가까이하지 않는게 나을것 같다.” 그러나 그분은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분과 우리와의 차이가 그분 사랑의 손길을 끌어당겼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멀리 서서 문둥병자들에게 치유의 말씀을 던져주시지 않았습니다. 그분은 그들을 만지셨습니다.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저에게 대시며 가라사대,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신대, 문둥병이 곧 떠나니라.” (누가복음 5:13)

__________ 

저자 약력: 짐 심발라(Jim Cymbala) 목사님은 뉴욕의 한 소외된 지역에 위치한 작고 허름한 건물에서 이십명도 채 못되는 성도들과 함께 브루클린 테버네클(Brooklyn Tabernacle)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그는 브루클린 태생이며 데이빗 윌커슨 목사님, 그리고 게리 윌커슨 목사님과 오랜 친분을 갖고 있습니다. 그는 세계 전역에 걸쳐 World Challenge에 의해 주최되는 Expect Church Leadership Conference의 주된 강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