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2월 15일 화요일

두려움과 경외

하나님이 민족들을 흔들어 위험한 때가 닥치는 것을 볼 때 우리 자연인은 크게 두려워할 것이라고 선지자들은 경고합니다. 에스겔은 물었습니다. “내가 네게 보응하는 날에 네 마음이 견디겠느냐 네 손이 힘이 있겠느냐”(22:14).


하나님이 노아에게 다가올 심판에 대해 경고하며 방주를 지으라고 했을 때 노아는 “경외함으로”(11:7) 받아들였습니다. 심지어 대담하고 용기 있는 다윗도 “내 육체가 주를 두려워함으로 떨며 내가 또 주의 삼판을 두려워하나이다”(119:120)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하박국 선지자는 재난의 날이 다가옴을 보고 울부짖었습니다. “내가 들었으므로 내 창자가 흔들렸고 그 목소리로 말미암아 내 입술이 떨렸도다......썩이는 것이 내 뼈에 들어왔으며 내 몸은 내 처소에서 떨리는도다”(3:16).


위 구절들을 읽으면서 주목하실 점이 있습니다. 이 신실한 자들에게 다가온 두려움은 육체적 두려움이 아니라 주님에 대한 경외심이었습니다. 이 성자들은 그들의 영혼의 대적을 두려워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을 두려워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다가오는 참화의 뒤에는 무서운 권능이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폭풍의 결과를 두려워했던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주님의 신성함을 두려워했던 것입니다!


그들과 마찬가지로 우리 각자도 앞으로 재해와 파멸의 시간에 두려움에 압도당하는 체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두려움은 절대로 운명에 대한 육체적인 불안 때문이 아니라 주님에 대한 신성한 경외로부터 기인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안에 있는 모든 죄에 바탕을 둔 두려움을 경멸하십니다. 물질, 재산, 우리 삶의 기준을 잃어버리는 데 대한 두려움 말입니다.


전 세계에서 자신의 나라 경제가 악화되어가는 것을 보며 사람들은 이 같은 두려움에 차

있습니다. 그들은 경제적인 홍수가 발생하여 평생 동안 수고한 모든 것을 쓸어갈까 봐 두려워합니다. 이것은 소망이 없는 불신자들의 울부짖음입니다. 이것이 경건한 자들의 울부짖음이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참으로 당신이 주님의 자녀라면, 하늘의 아버지께서는 이와 같은 당신의 불신을 참고만 계시지 않을 것입니다. 이사야가 경고했습니다. “너는 어떠한 자이기에 죽을 사람을 두려워하며 풀 같이 될 사람의 아들을 두려워하느냐.....너를 지은 자 여호와를 어찌하여 잊어버렸느냐 너를 멸하려고 준비하는 저 학대자의 분노를 어찌하여 항상 종일 두려워하느냐 학대자의 분노가 어디 있느냐”(51:12-13). “만군의 여호와 그를 너희가 거룩하다 하고 그를 너희가 두려워하며 무서워할 자로 삼으라”(8:13).


하나님이 당신의 두려움과 경외가 되도록 하십시오. 이런 두려움은 사망으로 인도하지 않고 생명으로 인도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