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2월 18일 금요일

보좌로 나아가는 유일한 길

이 천상의 장소는 당신이 눈물을 많이 흘린다고 갈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공부를 많이 하거나 의지력을 발휘하여 갈 수 있는 곳도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보좌의 삶으로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산 제물로 드리는 방법뿐입니다.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12:1).


바울은 자신의 체험을 토대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는 거부당했고, 시험을 받았으며, 핍박당하고, 매 맞고, 감옥에 갇혔으며, 파선 당했고, 돌에 맞았던 사람이었습니다. 또한 교회의 모든 염려들을 감당해야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어떤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한다”고 증거 했습니다.


그가 지금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내가 어떻게 이 천국 여정에 대한 지식을 갖게 되었는지 알기 원하십니까? 어떤 형편에서 처해져도 만족하고, 그리스도안에서 참된 안식을 발견하게 되었는지 알기 원하십니까? 여기에 그 길이 있습니다. 당신에게 주어진 천국에서의 지위를 누리는 비결이 여기 있습니다. 당신의 몸을 주님께 산 제물로 드리십시오. 오직 내 자신의 뜻을 제물로 바침으로써 나는 자족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산”이란 희랍어 단어의 어원은 “한평생 지속되는”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말하는 것은 구속력 있는 헌신, 평생에 한번 드리는 제사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오해하지 마십시오. 이 제사는 죄를 대속하는 제사와는 아무 상관없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제사만이 유일하게 합당한 대속제사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물로 드려 죄를 없이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9:26).


그것이 아니라, 바울은 다른 종류의 제사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의하십시오. 하나님은 구약의 사람들이 만들어낸 제사는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히브리서가 우리에게 말해줍니다. “번제와 속죄제는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10:6). 왜 이 제사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했을까요? 간단히 말해서 그 제사들은 마음을 요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묘사하는 제사는 하나님이 크게 기뻐하시는 것으로 그 이유는 바로 그 제사가 마음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제사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우리의 뜻에 대해 죽는 것이요, 우리가 스스로 충족하다는 생각을 내려놓는 것이요, 우리의 모든 야망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너희 몸을 드리라”고 권고하는 것은 “주님께 가까이 다가가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이것은 정확히 무슨 의미일까요? 그것은 우리 자신 전체를 주님께 바치기 위하여 하나님께 가까이 다가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 스스로 충족한 가운데서가 아니라 부활한 자녀로서, 예수님의 의를 힘입어 거룩하며, 그리스도안에 있는 우리의 지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아버지께 용납된 자녀로서 주님께 나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당신이 자신의 뜻을 주님께 의탁하는 그 순간, 제사가 드려진 것입니다. 당신이 스스로의 능력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애쓰는 것을 포기할 때 이 일이 일어납니다. 이 믿음의 행위가 바로 바울이 말하는 “영적 예배 (합당한 예배)”인 것입니다. 그것은 그분께서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복을 공급하시리라는 것을 믿으며 우리의 뜻을 그분께 맡기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