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과 맺은 아합의 계약

한 번은 아합이 엘리야의 책망을 듣고 실제로 회개했던 적이 있습니다. “주의 말씀이 디셉 사람 엘리야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아합이 내 앞에서 겸손히 행하는 것을 네가 보느냐?” (열왕기상 21:28-29) 나중에 아합이 그 사건을 회상하며 이렇게 말할 수도 있었을 겁니다. “회개? 맞아. 하나님의 그 위대한 선지자 엘리야의 책망을 듣고 그랬던 적이 있었지.” 그러나 아합에게 그것은 단 한 번의 경험이었을 뿐, 매일의 실습은 아니었습니다. 문제는 그가 이미 세상의 친구이자 형제가 되어버렸다는 데에 있습니다. 여기서 ‘형제’의 의미는 “친밀함, 나와 같은 자, 내가 존경하는 자”라는 뜻입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저주하신 것과 계약을 맺었던 것입니다. 아합은 진리를 사랑한다고 주장했으나, 그의 내면 깊은 곳에서는 질책받는 것을 싫어했습니다.

오늘날 많은 자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오직 진리만을 듣기 원합니다. 그러니 솔직하게 진실 그대로 설교해주세요!” 그러나 그들의 속마음은 이렇게 말합니다. “너무 비관적이고 너무 완고해. 더는 이것을 견딜 수 없어.”

아합은 그가 거짓말하는 영에 의해 끌려다니고 있다는 끔찍한 사실에 눈이 멀어 있었습니다. 이 거짓 영은 가짜 선지자 시드기야로 하여금 하나님의 영이 자기에게 임했다고 과시하게 했습니다. (열왕기상 21:24 참조) 그로인해 아합은 그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있으며, 전쟁으로부터 승리해서 돌아올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이세벨 교리에 묶인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이 백 퍼센트 옳다고 확신합니다. 그들은 속임수를 보지 못합니다. 아합은 “그 사백 명의 대언자들은 가짜야. 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말씀을 듣지 않았어.”라고 생각하며 전쟁터로 나가지 않았습니다. 반대로 그는 전적으로 확신에 차서는, 완전히 속고 완전히 미혹된 채 나갔던 것입니다.

일부 그리스도인들이 왜 속임수에 빠졌을까요? “보라, 너희가 유익을 끼치지 못하는 거짓말을 신뢰하는도다. 너희가 도둑질하고 살인하며 간음하고 거짓 맹세하며 바알에게 분향하고, 너희가 알지 못하는 다른 신들을 따라 걸으면서 내 이름으로 불리는 이 집에 들어와 내 앞에 서서 말하기를, 이 모든 가증한 것을 행하려고 우리가 구출 받았나이다, 하려느냐?” (예레미야 7:8-10) 바로 그것입니다. 그들은 상습적 죄에 붙들려 있으며, 마음속에 비밀스런 우상을 갖고 있습니다. 죄를 정당화시키며 세상과 결연을 맺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의 집에 와서 이렇게 과시합니다. “나는 죄를 짓지 않았습니다.” 바로 이것이 거짓말하는 영에게 문을 열어놓는 초청장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