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5월 29일 금요일

기도하지 않는 그리스도인

기도하지 않는 그리스도인은 자신들이 어떤 위험에 처해있는지 자각하지 못합니다. 아마 이렇게 반발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스도인이 기도를 안한다고 해서 어때서? 그래도 보혈의 피로 씻기우고 용서 받고 천국에 가는 신자들인데. 믿음 생활이 약간 미적지근해진다고 위험할게 뭐가 있어?”

저는 하늘아버지께서 시간과 에너지를 많이 요구하는 이 바쁜시대를 이해하신다고 믿습니다. 그리스도인들도 다른 사람들과 같이 바쁜 일정에 휘말리게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독생자 예수의 목숨과 바꾼 주님께 가는 통로를 거부하는 것을 가볍게 여기신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우리의 견고한 망대로 만드셨습니다. 그렇지만 누구든지 그에게 “달려가는” 사람만이 안전하게 피할 수 있습니다. (잠언 18장 10절 참조). 달려 들어가지 않으면 당신은 아직 문 밖에 있는 것입니다. 당신은 이스라엘인들이 서 있었던 그 곳에 서 있지만 하나님은 더 이상 그 문에서 사람들을 만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은 문 안에 있습니다: 죄의 용서, 필요한 때의 자비, 극복하는 능력.

아버지와 아들이 느꼈을 거부의 고통을 상상해보십시오. 저는 그들 사이에 이러한 대화가 오갔을 거라고 그려봅니다:

“아들아, 너는 매맞았고, 조롱 당했고, 못 박혔고 땅에 뭍혔다. 그것은 나에게 너무 고통스러워서 그 순간 나는 눈을 감았다. 하지만 너는 영원한 언약을 성취했다. 너는 너를 믿는 모든이에게 받아들여짐이 가능하게 했고 길을 열어주었다. 너 때문에, 마지막 때의 사람들이 나에게 올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나의 힘 안에서 강하게 자랄 수 있고 다른때가 아닌 지금 유혹하고 공격하는 사단에 대적하는 믿음을 키울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우리의 사랑하는 자녀들이 어디 있습니까? 월요일이 지나고 저희는 그들을 보지 못했습니다. 화요일이 되었지만 역시 없습니다. 수요일이 오고 그들의 흔적조차 찾을 수 없습니다. 목요일, 금요일, 토요일이 지나도 역시 그들을 보지 못합니다. 오직 주일에 교회에 있는 동안에만 그들이 저희에게 옵니다. 왜 저희에게 오지 않습니까? 자녀들이 저희를 사랑하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는 같은 질문을 에덴동산에서 주님에게로부터 숨어버린 아담에게 하십니다: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창세기 3장9절). 주님은 아담이 어디 있는지 늘 알고 계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아담에게 왜 교제를 거부했는지를 물어보셨고, 주님의 임재에서 숨는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보여주셨습니다.

진실로 아버지께로 가는 통로를 이용하지 않는 사람들은 사데교회와 같이 처해질 것입니다. 주님은 사도 요한에게 지시하십니다, “사데 교회의 지도자에게 이 편지를 써서 보내라; 일곱 영을 가진 이가 말한다 . . . 나는 네 행위를 알고 있다. 네가 살았다는 이름은 가졌으나 사실 죽은 거나 다름이 없다” (요한계시록 3장1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