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0월 22일 목요일

예수님의 메세지의 핵심

회개는 그리스도의 부활 이후 첫번째 설교에서 초점이 되는 내용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유월절에 모인 군중에게 이런 말씀을 전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도 아는바에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 너희 앞에서 그를 증거하셨느니라 그가 하나님의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어 준 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어 못 박아 죽였으나”(사도행전 2:22-23).

사람들이 이 말씀을 들었을때 그들은 강력한 단죄를 느꼈습니다. 그 메세지는 성령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마음을 찔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것이 바로 성령의 역사하심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요한복음 16:8).

사람들의 마음은 요동쳤고, 그들은 어디로도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갑자기 그들의 앞에는 생과 사의 문제가 놓여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베드로에게 자신들이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질문하였습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대답하였습니다.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가로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사도행전 2:38, 40).

이 구절은 예수님의 메세지의 핵심에 회개가 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리고 메세지에 단죄(죄상에 대한 단호한 심판)가 없다면, 죄 그리고 죄책감 그리고 책임 등, 성령께서 그 말씀 안에 일하지 않았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베드로는 유월절에 그 사람들을 비난하거나 책망하고자 하지 않았습니다. 베드로는 그저 진리를 전하고자 하였고, 성령께서 진리를 나타내실 때에 단죄를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우리 안에 깊이 뿌리박혀 있는 마음의 모든 방면의 죄를 드러내시고 뽑아버리십니다.

그렇지만 슬프게도 오늘날 수많은 교회에서는 이러한 회개가 이루어 지고 있지 않습니다. 제 사역에서는 이러한 편지를 종종 받고는 합니다. “제가 수개월 동안 전도하려고 하는 이웃이 있습니다. 교회에 데리고 다니지만 그는 하나님에 대한 갈망은 커녕 말씀을 듣고 적용하지도 못합니다. 그러나 제 목사님 또한 죄에 관한 설교는 한마디도 하지 않으십니다. 제가 듣는 설교에는 단죄나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씻어주신다는 말씀은 전해듣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 이웃은 똑같은 죄를 반복하면서 그 죄를 짓는것에 더욱 편안해하고 있습니다.”

이 얼마나 슬픈 비극인지요. 하나님께서 오히려 교회 안에서 죄 짓는 것을 수용받고 괜찮다고 인정받는 사람들을 보시면서 얼마나 슬퍼하실지요. 예수님께서는 단죄하시는, 즉 나의 모든 죄를 드러내시는 성령의 능력과 임재 없이는 그 누구도 죄로부터 구원받을수도, 진리를 경험할 수도 없다고 말씀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