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내자 by Gary Wilkerson

수년 전에 친구들과 함께 텍사스주 샌안토니오라는 도시에 있는 알라모 요새를 보러 여행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일행 중의 한 친구의 고향이 마침 샌 안토니오여서 가이드를 하며 길 안내를 하겠다고 자청했습니다. 하지만 도시에 도착하자, 같은 상점이 세 번이나 돌며 무언가 잘못되어가는 것을 느꼈습니다.

“우리 계속 같은 자리를 도는 것 아니야?”라고 누군가 물었습니다. 그 친구는 “아니야, 거의 다 왔어”라며 우리를 안심시켰습니다. 하지만 엄청난 교통체증이 걸리는 곳으로 들어선 것을 알게 되었고, 마침내 누군가가 그 친구에게 물었습니다. “우리는 네가 이 도시를 잘 아는 줄 알았어. 고향이라고 했잖아?” 그 친구는 “맞아, 하지만 내가 두 살때 이사를 가버렸어”라고 대답했습니다.

분명히 마이클이라는 친구는 이상적인 안내자가 아니었습니다. 의도는 좋았지만, 저희를 어떻게 안내해야 할지도 몰랐습니다. 그는 우리가 살면서 원한다고 생각하지만, 예수님이 주시는 만족스러운 삶과 반대되는 곳을 맴돌게 하는 안내자를 연상시킵니다.

다른 안내자는 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있어도 요점을 놓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 아내 켈리와 필리핀으로 선교여행을 갔을 때의 일입니다. 쉬는 날에 저희는 가이드가 딸린 카누 여행을 하기로 했습니다. 그 투어 요원들은 작지만, 운동으로 다져진 필리핀인들로 구성되었습니다. 저희는 강물이 얕아서 그냥 떠내려 가야 하는 곳에 이른 적이 있습니다. 저는 “투어의 한계에 이르렀군.”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놀랍게도 젊고 힘센 가이드는 제가 탄 카누를 들어서 깊은 물로 옮겨주었습니다! “너무나 놀랍군! 정말 신뢰 가는 가이드야!”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후에 경치가 아름다운 곳에 이르렀을 때, 지도가가 우리에게 카누 젓는 것을 멈추라는 신호를 했습니다. “잘됐군. 이 나라의 놀라운 역사에 관해서 설명을 들을 수 있겠어. 아마 이 나라의 민주 지도자들이 어떻게 혁명을 기획한 지일지 몰라”라고 생각했습니다. 가이드는 신난 기색을 띠며 “이곳이 ‘람보’라는 영화가 만들어진 곳입니다!”라고 말했고, 다른 곳을 가리키며 “이곳에서 브래드 피트와 안젤리나 졸리가 소풍을 했습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저희가 살면서 진퇴양난의 곤경에 처했을 때 정보를 주는 안내자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가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풍성한 삶으로 이끄는 정보 또한 가지고 있습니까?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요 1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