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0월 30일 금요일

자본주의적인 기독교

미국은 “자본주의적 기독교”를 목격하고 있습니다. 신자 수, 건물, 헌금의 증가가 영적인 성장보다 더 큰 목표가 되었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한 예수님의 심판이 현재 많은 교회에 적용됩니다: “너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조차 알지 못하는구나. 너의 눈먼 것이 너를 미지근하게 하는데 그것조차 보지 못하는구나. 아직 나를 향해 뜨겁다고 생각하는구나!” (계 3:15-17 참조)

에베소 교회는 예수님과 친밀함을 잃는 죄를 지었습니다. 두아비라 교회는 분별력을 잃고 영적인 간음의 죄를 지었습니다. 이제 라오디게아 교회는 가장 큰 죄에 빠집니다: 예수님을 필요로 하는 마음을 잃어버렸습니다.

결국 벌거벗음으로 끝나게 됩니다. 예수님은 라오디게아 사람들의 벌거벗은 상태를 비난하셨습니다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3:18). 그리스어로 벌거벗음은 “풍부한 자원에서 벌거벗겨지다”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만을 온전히 의지하는 사람을 위해 그분의 자원을 보호하십니다. 그 자원이 무엇입니까? 진정한 영적인 풍요인 주님의 능력, 기적을 행하는 힘, 가르침, 임재를 뜻합니다.

한 시간의 예배에 편안히 앉아있는 성도를 그려보십시오. 이들은 삶의 스트레스를 어떻게 풀 것인가에 대한 간략한 설교를 듣고 문밖으로 나갑니다. 주님 앞에 부서져서 통회하는 필요를 느끼지 못합니다. 가슴을 꿰뚫는 메세지로 죄를 깨달을 필요를 느끼지 못합니다. “주님, 저를 부러뜨려 주십시오. 주님만이 저희 부족함을 채워주십니다”라고 울부짖을 필요가 없습니다.

예전에 있었던 열정이 어디에 있습니까? 이러한 성도는 한때 교회와 말씀에 열심이었고, 성령님의 비추심에 마음을 다 내어드렸던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다 배웠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을 주일 예배 때만으로 제한하는 미지근한 성도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리오디게아 목회자를 너무나 사랑하셔서 그에게 주님의 자원에 열심을 내라고 말씀하십니다: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3:19). 주님의 사랑의 손이 그들을 훈계해 주시고, 주님의 능력과 도우심을 부르짖는 필요의 마음을 만들어주십니다. 예수님은 똑같은 말씀을 오늘날에도 저희에게 하고 계십니다. 리오디게아 성도들에게 하신 것 같이 “이것이 나와 함께 하는 것이다. 내가 문들 두드릴 때 대답하는 것이고, 내가 지금 와서 같이 식사하자고 부르는 것이다. 네가 필요한 모든 것이 나에게 있다. 나와 교제하는 것이 사역을 지속하는 데 필요한 것이다. 모든 것은 나와 시간을 보내는 데서 오는 것이다.”라고 저희에게 말씀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