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0월 30일 금요일

자본주의적인 기독교

미국은 “자본주의적 기독교”를 목격하고 있습니다. 신자 수, 건물, 헌금의 증가가 영적인 성장보다 더 큰 목표가 되었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한 예수님의 심판이 현재 많은 교회에 적용됩니다: “너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조차 알지 못하는구나. 너의 눈먼 것이 너를 미지근하게 하는데 그것조차 보지 못하는구나. 아직 나를 향해 뜨겁다고 생각하는구나!” (계 3:15-17 참조)

에베소 교회는 예수님과 친밀함을 잃는 죄를 지었습니다. 두아비라 교회는 분별력을 잃고 영적인 간음의 죄를 지었습니다. 이제 라오디게아 교회는 가장 큰 죄에 빠집니다: 예수님을 필요로 하는 마음을 잃어버렸습니다.

결국 벌거벗음으로 끝나게 됩니다. 예수님은 라오디게아 사람들의 벌거벗은 상태를 비난하셨습니다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3:18). 그리스어로 벌거벗음은 “풍부한 자원에서 벌거벗겨지다”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만을 온전히 의지하는 사람을 위해 그분의 자원을 보호하십니다. 그 자원이 무엇입니까? 진정한 영적인 풍요인 주님의 능력, 기적을 행하는 힘, 가르침, 임재를 뜻합니다.

한 시간의 예배에 편안히 앉아있는 성도를 그려보십시오. 이들은 삶의 스트레스를 어떻게 풀 것인가에 대한 간략한 설교를 듣고 문밖으로 나갑니다. 주님 앞에 부서져서 통회하는 필요를 느끼지 못합니다. 가슴을 꿰뚫는 메세지로 죄를 깨달을 필요를 느끼지 못합니다. “주님, 저를 부러뜨려 주십시오. 주님만이 저희 부족함을 채워주십니다”라고 울부짖을 필요가 없습니다.

예전에 있었던 열정이 어디에 있습니까? 이러한 성도는 한때 교회와 말씀에 열심이었고, 성령님의 비추심에 마음을 다 내어드렸던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다 배웠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을 주일 예배 때만으로 제한하는 미지근한 성도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리오디게아 목회자를 너무나 사랑하셔서 그에게 주님의 자원에 열심을 내라고 말씀하십니다: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3:19). 주님의 사랑의 손이 그들을 훈계해 주시고, 주님의 능력과 도우심을 부르짖는 필요의 마음을 만들어주십니다. 예수님은 똑같은 말씀을 오늘날에도 저희에게 하고 계십니다. 리오디게아 성도들에게 하신 것 같이 “이것이 나와 함께 하는 것이다. 내가 문들 두드릴 때 대답하는 것이고, 내가 지금 와서 같이 식사하자고 부르는 것이다. 네가 필요한 모든 것이 나에게 있다. 나와 교제하는 것이 사역을 지속하는 데 필요한 것이다. 모든 것은 나와 시간을 보내는 데서 오는 것이다.”라고 저희에게 말씀하십니다.

2015년 10월 29일 목요일

거짓 목자

두아디라 교회의 문제는 음행하고 악한 세력들을 용납한 것이었습니다. 이 글을 읽었을 때 목회자의 반응을 상상해보십시오: “두아디라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그 눈이 불꽃 같고 그 발이 빛난 주석과 같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시되” (계 2:18).

편지는 적당한 칭찬으로 이어집니다: “내가 네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노니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2:19). 다시 한 번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의 행위를 안다. 사랑, 믿음, 섬김이 처음보다 많구나.” 무엇보다 큰 것은 “네가 나를 사랑하는 것을 안다” 하시는 말씀입니다. 처음 친밀함을 잃었다고 책망하지 않으십니다.

하지만 꿰뚫어보는 말씀을 읽게 됩니다: “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 (2:20).

정확히 여기서 이세벨이라 하는 여자가 누구입니까? 사람들을 유혹하는 탐욕스런 사역자들을 보고만 있었던 거짓 목자를 말하고 계십니다. 두아디라의 목회자들을 책망하고 계십니다. 여기서 이세벨은 탐욕스런 사역자 이상을 지칭합니다. 이러한 거짓 목자들을 사실 자신들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계획을 지어냅니다. 간단히 말해 이세벨이라는 이름은 주님의 눈에 악하고 가증스러운 모든 것의 대명사인 것입니다.

얼마나 당혹스러운 그림입니까? 이러한 사람들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헌신하는 남녀입니다. 그들은 인내하며 신실하게 예수님을 사랑합니다. 이러한 믿음의 사람들이 어떻게 거짓 선지자에 끌릴 수 있습니까? 하나님이 가증스러워하는 사악한 사역자들에게 어떻게 유혹될 수 있습니까?

복음을 통틀어 예수님은 많은 이들을 속이고 집어삼키는 거짓 목자에 대해 경고하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다수의 사람이 거짓 복음에 속을 정도로 분별력이 없음에 너무나 놀랐습니다. 이런 일이 여러분에게 일어난 적이 있습니까? 실상은 사단의 것인 텔레비전의 말씀에 영이 집어삼켜 졌습니까? 노인들의 주머닛돈을 노리고 여러분의 정욕에 호소하는 번영에만 집중한 설교자의 메세지를 가까이하고 있습니까? 예수님은 이세벨과 같은 세력 앞에 신실히 서 있는 이들에게 강력히 충고하십니다: “다만 너희에게 있는 것을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으라” (2:25). 예수님은 “너는 진정한 분별력을 배웠다. 교리의 바람에 휘둘리지 않게 해라. 그리고 지금은 계속 붙잡고 있어라. 기만당하지 않도록 해라. 그것이 내가 바라는 것이다. 내가 돌아올 때까지 다른 짐을 지우지 않겠다”라고 말씀하십니다(2:24 참조).

2015년 10월 28일 수요일

예수님 임재의 상실

요한 계시록 2장에서는 에베소 교회 속에서 그리스도의 임재를 잃은 것에 대해 묘사하고 있습니다. 저는 오늘날 같은 일이 벌어지는 것을 봅니다. 제가 아는 사람 중에서 사회 복지과에서 일하거나 봉사센터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가장 힘든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는 일에 진실되고 헌신적이지만 매일 벌어지는 현실은 감당하기 너무 큰 고통입니다. 기독교인에게도 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사역자들도 보살피는 사람들의 죄나 고통을 많이 보기 때문에, 마음이 굳어질 때가 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에베소에 있는 목자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너는 한때 다른 이들에게 친절했었다. 그들의 말을 들어주고 그들을 향한 사랑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귀가 먹어버렸구나. 그들과 함께 앉아있지만 그들의 눈물에 동정을 보이지 않고, 사역 하지만 생명 없이 쳇바퀴 도는구나. 너에게서 내 임재를 거두는 수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다.”

영적으로 굶주린 사람은 주님의 임재가 명백히 없는 곳에 있지 않습니다. 주님의 가까움을 알고 싶어서, 주님의 임재를 경험할 수 없으면 찾을 수 있는 곳으로 떠납니다. 실제로 저는 “주님의 임재가 살아 있는 교회를 찾을 수 없습니다.”하고 하는 불만의 편지를 많이 받았습니다.

저는 이런 불만을 가진 많은 기독교인이 안타깝게도 퇴보하는 것을 목격해왔습니다. 그들은 교회를 찾지 못해 집에 앉아 텔레비전으로 설교를 보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영적인 음식으로 기름진 것을 얻지 못해 결국은 마음이 굳어지게 됩니다. 곧 교회를 다 져버리게 됩니다. 히브리서(10장 25절 참조)에서 경고했던 형제들과 모이는 데 등한시 하게 되고, 결국 완전히 예수님과 그 임재에 무관심해집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들의 어떤 불만이든 듣지 않으신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친밀한 교제를 계속하면 저희의 전부가 되어주십니다. 다니는 교회의 상황이 어떻든지 간에, 우리는 귀한 시간을 주님께 드리는 데 부지런해야 합니다. 말씀이 저희 안에 살아 움직이는 것을 원하면, 주님의 임재속으로 깊이 들어가야 합니다. 요한 계시록 1~3장에서 같이, 모든 믿는 사람이 스스로 이렇게 자문해야 합니다: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는 성경 공부나, 섬기는 일들이 예수님과 보내는 시간을 뺏어가고 있는가? 예전과 같이 아직도 그분을 향한 배고픔이 있는가? 아니면 잃어버린 것이 있는가?

2015년 10월 27일 화요일

우리의 현재 고난

아마 지금 여러분은 극심한 고난에 고통받고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고난의 뒤에는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삶에 있는 죄들을 다루고 계심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왜 하나님께서 이런 극심한 고통을 겪도록 허락하셨는지 궁금해합니다.

고통의 용광로가 바뀌는 삶의 계시가 될 수 있습니다. 바로 그와 같은 일이 욥에게 일어났습니다. 고난 속에서 욥은 놀라운 발견을 합니다. 그의 하나님을 아는 순수함에도 불구하고, 그는 진정 주님을 알지 못했습니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회개하나이다”(욥 42:5-6)라고 그는 고백했습니다.

이 고난을 겪었을 때 욥은 적어도 일흔 살 가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평생을 하나님을 알아왔습니다. 주님을 향한 재단 앞에서 많은 시간을 찬양과 경배로 보냈습니다. 오랫동안 주님은 그의 놀라운 방식과 신비들을 가르쳐주었습니다. 욥은 주님의 위안, 그의 거룩함, 성품, 기질, 진노에 대해 알아왔고 주님의 능력과 지혜의 신비도 배웠습니다.

하지만 상상할 수조차 없는 위기가 왔을 때, 그는 주님을 볼 수조차 없었습니다. 대신, 하나님은 희미해진 신학적 용어가 되어버렸습니다. 날마다 삶에서 너무나 큰 부분을 차지했던 주님이 이제는 그가 겪는 삶에서 사라진 것으로 보였습니다. 갑자기, 주님은 설교 일부이거나 능력이나 생명이 없는 지식으로 전락한 것으로 보였습니다.

저는 주님께서 이것이 욥의 삶에서 드러나기를 원하셨다고 믿습니다. 우리 사랑의 아버지는 자녀들이 당신을 단순히 예배나 성경공부, 기도 모임에 참여함으로서 아는 것보다 더 깊이 알기를 원하십니다. 가장 치열한 싸움이나 고난이 있는 저희 삶의 모든 부분에서 저희가 하나님을 친밀하게 알기를 원하십니다. 죽은 신학의 하나님이 아닌 전능하시고, 가까이에 계시며 손에서 모든 것을 통제하시는 하늘 아버지로 저희가 그분을 알기를 바라십니다.

현재 저희의 고난은 저희 안에서 이 둘 중의 하나를 열매 맺습니다: 마음이 굳어져서 불신의 벽이 생기거나 저희 삶의 모든 부분을 통제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영광의 시각입니다.

2015년 10월 26일 월요일

우리는 왜 예수님을 따릅니까? by Gary Wilkerson

저에게 요한복음 6장은 예수님을 배척하고 돌아선 이들에 관한 구절을 담고 있어서 모든 성경 말씀 중에서 가장 어렵게 다가옵니다. 말 그대로 사람들이 떼 지어 예수님을 떠나는 장면입니다(요 6:66 참조).

예수님은 이미 기적적으로 몇천 명의 군중을 먹이셨습니다. 그들은 주님이 하신 것에 놀라고 기뻐하며 이 기적을 행하는 메시아를 따를 준비가 되어있었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그들이 따라야 할 것이 진정 무엇인지 시험했을 때 많은 군중이 비웃으며 떠났습니다.

이 구절에 감추어져 있는 것은 예수님을 따르는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질문입니다: “당신의 삶을 책임지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당신입니까 아니면 예수님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 삶의 방향을 제시하도록 허락해드립니까? 아니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을 우리가 정하려고 합니까?”

많은 기독교인이 주님과의 교제 속에서 이와 같은 질문에 맞닥뜨리게 됩니다. 처음에서부터 부딪히는 문화의 전쟁은 우리 안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먼저 바깥세상의 문화가 끊임없이 누가 이익을 얻을 것이냐고 저희를 부추깁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나라의 문화가 묻습니다. “어떻게 주님과 네 이웃을 섬길 수 있어?”라고 말입니다.

예수님은 이미 하나님의 나라를 세상에서 전하셨습니다: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막 1:15).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가운데 있다”입니다. 그 당시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던 많은 사람이 세상적 가치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것이 우선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축복을 주셨을 때, 그들은 떼를 지어 “당신이 나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제공하면 당신을 따르겠어. 아픈 가족을 고쳐주고 기도에 응답해주면 제자가 되겠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우리의 믿음이 어떻게 됩니까? 예수님이 우리 삶의 “도우미”가 아닌 것을 알았을 때도 얼마나 헌신적일 수 있습니까? 금방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한 사람들이 가장 먼저 주님을 져버렸습니다. 실망해서 떠났고 포기했습니다. 예수님은 이 일이 일어날 것을 아셨기 때문에 가장 위대한 기적을 보이신 순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요 6:26). 이것이 오늘날 저희에게도 적용됩니다. 저희는 예수님의 축복 때문에 따릅니까? 아니면 그분이 주님이어서 따릅니까?

2015년 10월 24일 토요일

어려운 시기를 위한 강력한 믿음 by Claude Houde

시편 6장 8절에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울음소리를 들으신다는 말씀을 지극히 부드럽고 개인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끔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 다른 번역에서는 이렇게도 기록합니다. “하나님께서 개개인의 눈물을 세고 계신다.”

사방에서 불확실, 분노, 두려움, 의심 그리고 근심 등의 위협을 받으며 세워야 하는 믿음의 제단은 사실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어느 싱글맘은 아들을 보면서, 어제까지만 해도 사랑과 온정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 어느 순간 정체 모를 분노와 거리감을 느낄 때,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집니다. “내 아들의 옷을 입은 이 오만하고 밉기만 한 이 괴물은 누구지? 왜? 아버지 없이 이 아이를 어떻게 혼자 키울 수 있을까?”

여러분과 저도 똑 같은 두려움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의사로부터 암 선고를 받았을 때의 두려움과 쇼크… 아직은 싱글이지만 주변의 결혼한 친구들과 그의 자녀들을 보면서 외로움에 가득 차 하나님께 “저는 언제쯤? 저는 왜?”라고 외치는 사람들…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시작한 사업이 한 순간 망하여 파산을 해야 하는 완전한 실패자로 느껴지는 어느 사업가…

사망의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십자가를 구경 온 관광객들은 가지 않을 길을, 즉 좁은 문을 향하여 전진합니다. 이러한 사망의 골짜기로 다닐 때에 우리는 진정한 크리스천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열정적인 목회자가 교회의 분열을 지켜보며 수 없는 죽음을 경험하는 것, 또는 배우자로부터 버려지거나 배우자의 외도로 상처 입은 믿음의 사람이 복원되지 않을 이혼을 하게 되는 것 등의 영혼을 부숴버리는 모든 삶의 문제들은 믿음이 있는 사람들에게도 평생 통증을 안고 살게 될 것 같은 불편한 느낌을 남기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재정비하고, 복구하며 심지어 부활의 믿음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창세기 12장에 보면 아브라함도 그의 믿음의 제단을 잃었습니다. 땅에 기근이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따끔하지만 진리의 말씀을 아브라함에게 보이셨습니다.

여러분, 성경은 진리의 거울이며, 그 목적은 여러분의 생명을 구원하기 위함입니다. (야고보서 1:23-25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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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약력: 클로드 후드(Claude Houde) 목사님은 캐나다 몬트리올에 위치한 New Life Church의 담임목사이며, 세계 전역에 걸쳐 월드챌린지(World Challenge)에 의해 주최되는 Expect Church Leadership Conferences의 주된 강사입니다. 그의 지도력으로 New Life Church는 소수 인원으로 시작해서 개신교 교회로서는 성공하기 힘든 캐나다의 보수적인 지역에서, 지금은 교인 수가 3,500명이 넘는 교회로 성장했습니다.

2015년 10월 23일 금요일

생명을 낳는 말씀

“이것은 하늘로서 내려온 떡이니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그것과 같지 아니하여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 이 말씀은 예수께서 가버나움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에 하셨느니라 제자 중 여럿이 듣고 말하되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느냐 한대 예수께서 스스로 제자들이 이 말씀에 대하여 수군거리는 줄 아시고 가라사대 이 말이 너희에게 걸림이 되느냐”(요한복음 6:58-61).

이 구절은 예수님께서 믿는자들에게 전하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들이 민감하게 반응했던 부분이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이부분입니다.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요한복음 6:53-54).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그의 말씀을 듣고는 경악을 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물은 것이었습니다. “내가 당신을 불쾌하게 만들었습니까? 내가 진실을 말하는 것이 불편하십니까?” 그리고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요한복음 6:63). 예수님께서는 아주 명료하게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당신을 불쾌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생명으로 인도하는 진리의 말씀입니다.” 이때 예수님의 제자들의 반응은 어떠하였습니까? “이러므로 제자 중에 많이 물러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요한복음 6:66).

이 장면에서 예수님께서 복음에 관하여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은 단순히 말하자면 이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의 피와 그의 십자가는 누군가를 불편하게 만드는 메세지일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비록, 그의 복음이 영생으로 인도하는 단 하나의 진리이지만, 모두가 수용하고 믿지 않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너희 중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있느니라”(요한복음 6:64).

예수님께서 하셨던 이 말씀은 오늘날의 교회의 모습에 투영됩니다. 놀랍게도, 몇몇의 교회에서는 그리스도의 피에 관한 내용을 예배 중에서 아주 제거해버렸습니다. 목회자들은 더이상 그리스도의 피를 설교 중에 또는 찬송 중에 언급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을 불편하게 또는 불쾌하게 만든다는 이유로 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경고를 주십니다. “너희에게 나의 진리가 얼마나 불편하고 불쾌할지는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너희의 믿지않음으로 인하여 진리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진리는 생명을 낳게 하고, 너희는 음식과 음료수를 마시듯이 이 진리를 먹어야 한다. 그렇게 하여 이 진리가 너희 안의 세포에 흡수되어 너희 존재의 일부가 된다. 그러므로 내가 전한 이 진리의 말씀을 묽게 변질되게 하여서는 안된다. 너희의 설교에서 나의 피와 심자가를 제거한다면, 영생에 대한 갈급함과 소망으로 오는 사람들을 생명의 공급원으로부터 끊어내는 것이다.”

2015년 10월 22일 목요일

예수님의 메세지의 핵심

회개는 그리스도의 부활 이후 첫번째 설교에서 초점이 되는 내용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유월절에 모인 군중에게 이런 말씀을 전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도 아는바에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 너희 앞에서 그를 증거하셨느니라 그가 하나님의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어 준 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어 못 박아 죽였으나”(사도행전 2:22-23).

사람들이 이 말씀을 들었을때 그들은 강력한 단죄를 느꼈습니다. 그 메세지는 성령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마음을 찔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것이 바로 성령의 역사하심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요한복음 16:8).

사람들의 마음은 요동쳤고, 그들은 어디로도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갑자기 그들의 앞에는 생과 사의 문제가 놓여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베드로에게 자신들이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질문하였습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대답하였습니다.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가로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사도행전 2:38, 40).

이 구절은 예수님의 메세지의 핵심에 회개가 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리고 메세지에 단죄(죄상에 대한 단호한 심판)가 없다면, 죄 그리고 죄책감 그리고 책임 등, 성령께서 그 말씀 안에 일하지 않았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베드로는 유월절에 그 사람들을 비난하거나 책망하고자 하지 않았습니다. 베드로는 그저 진리를 전하고자 하였고, 성령께서 진리를 나타내실 때에 단죄를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우리 안에 깊이 뿌리박혀 있는 마음의 모든 방면의 죄를 드러내시고 뽑아버리십니다.

그렇지만 슬프게도 오늘날 수많은 교회에서는 이러한 회개가 이루어 지고 있지 않습니다. 제 사역에서는 이러한 편지를 종종 받고는 합니다. “제가 수개월 동안 전도하려고 하는 이웃이 있습니다. 교회에 데리고 다니지만 그는 하나님에 대한 갈망은 커녕 말씀을 듣고 적용하지도 못합니다. 그러나 제 목사님 또한 죄에 관한 설교는 한마디도 하지 않으십니다. 제가 듣는 설교에는 단죄나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씻어주신다는 말씀은 전해듣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 이웃은 똑같은 죄를 반복하면서 그 죄를 짓는것에 더욱 편안해하고 있습니다.”

이 얼마나 슬픈 비극인지요. 하나님께서 오히려 교회 안에서 죄 짓는 것을 수용받고 괜찮다고 인정받는 사람들을 보시면서 얼마나 슬퍼하실지요. 예수님께서는 단죄하시는, 즉 나의 모든 죄를 드러내시는 성령의 능력과 임재 없이는 그 누구도 죄로부터 구원받을수도, 진리를 경험할 수도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2015년 10월 21일 수요일

회개의 자리

“그러면 무엇을 말하느뇨 말씀이 네게 가까와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로마서 10:8-11).

쉽게 말하자면, 우리는 죄에대한 고백으로 회개를 하고 구원에 이르게 됩니다.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마태복음 9:13). 예수님께서는 회개를 통하여 치유함 받는 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나니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누가복음 5:31-32)

사랑하는 여러분, 이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나의 교회에서는, 회개를 통하여 치유받는다. 육체적인 질병이 있든지, 정신적인 아픔이든지 아니면 영적인 아픔이든지간에, 누구나 회개를 통한 회복을 받는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복음의 핵심적인 메세지는 과연 무엇일까요? 그는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그리고 요한복음을 통하여 명쾌하게 말씀하십니다. 네개의 복음서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의 교회에서 내가 전하고자 하는 메세지는 모든 죄인에게 해당한다.”

첫째로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리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가라사대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마가복음 1:14-15). 예수님의 첫 메세지는 무엇이었습니까? 그것은 바로 회개입니다.

어떤 크리스천들에게는 참으로 어려운 말로 들릴 수 있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대답하겠지요. “네. 그렇지만 예수님께서 얼마나 강력하게 회개에 대한 설교를 하셨습니까?” 이러한 질문에 대하여 누가가 대답을 합니다.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누가복음 13:5).

몇몇 분들은 회개에 초점을 맞춘 그리스도의 복음을 우울하게 받아들일수도 있지만 바울은, 회개하는 마음이 진정한 생명으로 인도한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고린도후서 7:10).

2015년 10월 20일 화요일

진정한 복음

예수그리스도의 진정한 복음은 과연 무엇일까요?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마태복음 16:24).

분명한 것은, 예수그리스도의 교회에 속한다는 것은 그저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 뿐이 아닌 그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수많은 크리스천들은 그저 “예수님께 제 한 표를 보냅니다” 라며 동의하는 것이 믿음의 전부라고 쉽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동의를 하지만 그리스도가 그의 삶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모두 잊어버린채 살아갑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의 교회에 속한 다는 의미는 예수님을 따르기로 결심하고 실제로 행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짊어지는 것을 포함합니다.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마태복음 10:38).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진정한 나의 교회는, 나에 대한 믿음으로 인하여 고난을 받고 박해를 받을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 명예, 인정 그리고 세상적인 정욕 뿐아니라 자기 자신을 부인할 준비를 하라.”

사실은, 그리스도의 교회는 이 세상으로부터 단 한번도 인정되고 수용되었던 적이 없습니다. 만약 당신이 예수님을 위하여 산다면, 스스로 이 세상의 사람들로부터 분리시킬 필요도 없이, 그들이 당신을 분리시킬 것입니다. 그저 예수님을 위하여 살기로 결심을 한다면, 당신은 책망을 받고, 거절당하고, 악하다는 말을 들으며 치욕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인자를 인하여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며 멀리하고 욕하고 너희 이름을 악하다 하여 버릴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도다”(누가복음 6:22). 예수님께서 그렇게 세상으로부터 미움받고 분리되며, 욕을 듣는 것이 진정한 믿음의 완성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마태복음 16:25). 다른 말로는 “이 세상을 의미있게 사는 방법은 자신을 모두 버리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사는 것입니다. 그럴때에 진실된 기쁨, 평화 그리고 만족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나의 교회는 단 하나의 흠도 주름도 없다. 그러므로 나에게 올때에, 너의 모든 죄를 내려놓고 회개하여야 한다. 세상적인 탐욕과 야망 그리고 자아까지, 모든 것을 나에게 내려놓고, 자신으로 죽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믿음으로 나와 함께 장사되어질때에 내가 너에게 새 생명을 주어 다시 일으킬 것이다.”

2015년 10월 19일 월요일

선한 목자의 인도 by Gary Wilkerson

“삯군은 목자도 아니요 양도 제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늑탈하고 또 헤치느니라. … 나는 선한 목자라 내가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요한복음 10:12, 14-15).

있는 그대로 바라보면, 이 세상의 가장 헌신적인 목회자도 삯군입니다. 그는 선한목자가 양을 지키도록 고용한 믿음직한 일꾼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믿음직한 일꾼도 절박하게 배고픈 이리를 상대하기에는 버거울 때가 있습니다.

여기서 제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세지는, 훌륭한 목회자들도 여러분을 실망시킬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 또한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목회자는 우리의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이 여러분을 아는 것과 같이 여러분을 알지 못합니다. 그리고 때때로, 우리는 전문적인 카운셀러의 지혜를 구해야 할때도 있을것입니다. 예수님과 우리 주변의 수많은 인간적인 도움과의 가장 큰 차이는 선한목자이신 예수님은 우리와 항상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10:11). 그는 당신을 절대로 실망시키시지 않으시며, 떠나지 않으시며 그리고 당신을 가장 선한 길로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님께서 장사꾼들을 성전에서 내쫓으셨던 장면을 생각해보십시오. 예수님께서 하신 행동은 상징적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내부의 종교적인 관습을 엎으시고 이렇게 선포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장로들과 서기관들은 양들을 돌보는 목자이어야 하건만, 아버지께 신령과 진정으로 산 제사를 드리기 보다는 제사를 돈받고 팔고 있다. 이런 모든 관습을 내가 지금 뒤집는 것이다. 나는 내 목숨을 나의 양들을 위하여 내려놓는 선한목자니라. 나는 나의 양들을 더 나은 좋은 초원으로 인도하며 그들의 생명을 지키고 축복할 것이다.” 여러분께서 진실된 삶의 인도를 받고 싶다면, 선한 목자의 음성을 익히셔야 합니다. 실제적인 음성으로 다가 올수도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항상 기록된 말씀, 즉 성경말씀을 통하여 여러분에게 다가올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의 방향과 길잡이가 필요합니까? “나를 따라오너라” 라고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의 시선을 예수님께 놓고, 말씀에 초점을 맞추고, 듣고, 순종하십시오.

2015년 10월 17일 토요일

잃어버린 세월들 by Nicky Cruz

제 아버지께서 세상을 떠나실 때, 예수님을 찬양하면서 돌아가셨습니다. 아버지께서는 노후에 주술과 마법, 사탄숭배 등을 모두 버리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셨습니다. 바로 제 어머니께서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전도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어머니 그리고 아버지 두분 모두 하늘나라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경험하며 영원한 집에서 휴식을 취하고 계십니다. 제 두 눈을 감으면 제 부모님이 왕 중의 왕이신 예수님을 찬양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습니다. 

제 아버지가 이 땅 위에 사실 때 그런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아버지께서 믿지 않으실 때에는 저는 아버지께서 사탄숭배를 하는 열정으로 하나님을 섬기시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아버지는 정말 열심 있고 성실한 증인으로 전도하며 말씀을 전하셨을 것입니다.

제 아버지께서는 삶의 모든 것을 뜨거운 열정으로 임하셨습니다. 그래서 생각해 볼 때에, 제 아버지의 믿음은 그칠 줄 모르는 강력하고 실제적인 믿음으로 기적을 일으키며 하나님의 말씀에 완전히 취하여 어디로 인도하시던지 따르는 믿음이었을 것입니다.

악마를 두려워하여 도망가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맞서 싸워 이겼을 것이며, 이 세상에 믿음으로 영향력을 미치시는 분이셨을 것입니다. 만약 제 아버지께서 조금 더 젊은 시절에 예수님을 영접하셨다면 말입니다.

여러분, 제 아버지의 삶과 마음을 앗아갔던 것처럼 사탄이 여러분의 삶과 마음을 앗아가게 허용하지 마십시오. 사탄의 거짓말에 유혹되지 마시고, 사탄의 의미 없는 약속들에 흔들리지 마십시오. 예수님께 온 마음과 삶을 드리십시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일으키시고 사랑해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만이 우리에게 필요한 힘과 지혜를 주실 수 있으십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겠습니다. 사탄으로 하여금 당신의 세월을 훔쳐가게 허용하지 마십시오. 사탄은 하나님의 선하심과 그의 진리로부터 당신의 눈과 귀를 멀게 할 것입니다. 놀랍고 위대하신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십시오!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한복음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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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약력: 니키 크루즈(Nicky Cruz)는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전도사이자 저작가입니다. 그는 1958년 뉴욕에서 데이빗 윌커슨(David Wilkerson) 목사님을 만난 후, 폭력과 범죄의 삶으로부터 예수님께로 돌이켰습니다. 그의 극적 전환에 대한 이야기는 데이빗 윌커슨 목사님의 저서 “The Cross and the Switchblade(십자가와 칼)”에서 처음 알려졌으며, 그 후에 발간된 그의 베스트셀러 자서전 “Run, Baby, Run(달려라 니키)”에도 수록되어 있습니다.

2015년 10월 16일 금요일

잃어버린 그의 임재

요한계시록 3장에서, 예수님께서 계시록 일곱교회의 목사들에게 보내신 서신들을 요약해서 말씀하십니다. 강력한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계3:20) 안타깝게도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께 마음의 문을 자주 열어 주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문을 두드리실지라도 집에 없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대신 문에 이 표지를 달아 놓습니다, “사랑하는 주님, 저는 오늘 병원으로 전도하러 갑니다, 그리고 저녁에는 교도소로 가고요. 교회에서 뵙겠습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좋은 일들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필요을 충족시키기 위한 프로그램들이 있고, 성도들은 죄를 피하고 깨끗하고 정직한 삶을 삽니다. 하지만 이들에게 달라진 점이 있습니다. 이런 교인들은 한때 예수님과의 교제에 헌신했다는 것입니다. 단 하루도 거루지 않고 주님과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바쁘게 어떤 일에 참여하러 가는 길에 잠깐 주님께 인사나 하는 정도 입니다. 예수님께서 보시기에 매우 심각한 상태가 아니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경고를 하고 계십니다, “교회는 무언가를 잃어 버렸다. 그것은 바로 나의 엄청난 임재다. 너는 골방으로 다시 돌아가 나와 교제를 해야 한다.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너에게서 내 임재를 거둘 것이다. 너의 그 모든 선행들 – 설교, 전도 그리고 기부, 이 모든 것들이 너와 내가 함께하는 시간속에서 흘러 나와야 하는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이 나에게로 부터 흘러 나와야 한다.”

에베소 교회도 한때 그들이 소유했던 것– 그들 중 계셨던 예수님의 임재를 잃었습니다. 그들은 언제부턴가 예수님의 임재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기 시작했고, 이 생각들이 목회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습니다. 한때 서로 사랑하며 섬기던 성도들이 이제는 서로를 당연시 여기기 시작했습니다. 이 생각들 또한 그들의 선행에 매우 좋지않은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사람들 섬기는 일에 바빠지다 보니 하나님의 사랑이 아닌 사람들을 섬기는 일이 그들의 초점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강력한 임재는 없어졌습니다.

2015년 10월 15일 목요일

목사에게 보내는 편지

예수님께선 교회에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할 문제점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계셨습니다. 사도요한에게 그 주의사항들을 받아적어 일곱교회의 사자들에게 보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사자는 목사들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의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계1:16) 예수님께서 마치 사도요한에게 이렇게 말씀 하시는것 같습니다. “나의 일꾼들을 사랑한다. 내가 그들을 불러 기름부었으니, 너는 이제 그들에게 나의 말을 전하거라.”

저도 목사로서 상상을 하게 됩니다: 제가 사도요한에게 이런 서신을 받아 읽었을 때 과연 어떤 느낌이였을지? “뉴욕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너의 교인들에 관하여 이르노니.” 그때 그 일곱 교회의 목사들의 기분이 어땠을지 한번 상상해 보세요.

에베소 교회의 목사를 예를 들어 생각해 보세요. (계2:1-11) 사도요한이 보낸 서신에는 에베소 교회에 대해 크게 기뻐하시는 모습이 보입니다. 그들의 행위와 수고와 인내를 칭찬하십니다. 그들은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아니하였고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견뎠습니다. 시간이 지나도 게으르지 아니하였습니다. 에베소의 목사가 이 글들을 읽으면서 감탄했을 것입니다, “와, 주님께서 우리를 매우 기뻐하시는구나. 이것은 분명히 추천장이야!”

하지만 더 읽으면서 예수님의 날카로운 말들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계2:4) 예수님께서 에베소 교회의 목사에게 경고하십니다,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계2:5)

에베소 교회의 목사가 이 글을 읽고 얼마나 경악했겠습니까. 그는 아마 이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회개? 아니면 촛대를 옮기신다고?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지? 우린 언약속에 있는 신도들이고 믿음으로 의로움을 얻었는데… 기부도 많이하고 남을 보살폈는데, 어째서 우리에게 마치 아무런 일이 없던 것 처럼 처음으로 돌아가라고 하시는 거지? 무슨 뜻이지? 정말 예수님의 말씀인가? 어떻게 성도들에게 이 서신을 읽어주지?

2015년 10월 14일 수요일

주님은 교회를 사랑하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교회를 사랑하십니다. 교회를 위하여 생명을 내어 주셨으며, 마태복음 16장 18절에서 저희에게 말씀하시기를 “음부의 권세가 교회를 이기지 못하리니라”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교회의 주춧돌이 되시며 또 그의 영광과 지혜가 교회에 임한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순절에 성령님을 보내셔서 교회를 설립하시고 또 교회를 세우시기 위하여 기름부음 받은 일꾼들을 – 목사로, 교사로, 사도로, 선지자로, 또 복음전하는 자로 – 삼으셨습니다. (엡4:11-12)

주님께서 교회를 축복하기 원하신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하지만 왜 계시록에서는 예수님의 재림을 무시무시한 장면으로 기록해오고 있을까요? 요한은 기록하기를 예수님께서 불꽃같은 눈과 우뢰같은 음성으로 그의 교회에게 찾아 오신다고 합니다.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그의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 같고 그의 발은 풀무불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 소리와 같으며 그의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의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치는 것 같더라.” (계1:13-16)

계시록은 하나님 말씀의 총체 입니다. 말세의 일어날 모든 일을 서술하고있는 가운데 예수님의 모습을 처음으로 보게됩니다. 왜 예수님의 모습이 불길한 예감을 주는 분으로 묘사 될까요? 왜 예수님께선 교회에게 날카롭게 말씀하고 계실까요? 사도 요한이 기록 하기를 ‘예수님의 말씀은 마치 날선 검과 같고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합니다.’ 한때 예수님의 가슴에 머리를 기댄 사도 요한이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요한은 얼굴을 땅에 대고 있습니다: “내가 볼 때에 그의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매” (계1:17).

그때 주님께서 직접 본인의 모습을 설명 하십니다: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지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주리라.” (계2:23) 사실은,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교회를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교회를 살피러 오십니다. 그분께서 그의 백성을 사랑으로 고치시며 정결하게 하시러 오십니다.

2015년 10월 13일 화요일

절대적은 믿음을 개발하다

우리는 시련속에 있을 때, 그 문제에서 눈을 돌려야 합니다. 이런시기에는, 우리자신에게 이런 격려의 말이 필요합니다. “나의 주님은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나를 잊지 않으셨습니다. 내가 이렇게 끔찍한 시련을 당하는 동안, 그는 나를 지켜보고 계십니다. 그리도 나는 압니다. 상황이 아무리 힘들지라도, 모든것은 주님의 지배안에 있습니다. 어느누구도, 그 어떤 능력도, 나를향한 그분의 계획을 바꿀수 없습니다.”

혹시 지금 낙심하고 있습니까? 이런 생각들로 힘들어 하고 있습니까? “이 문제의 해결책을 찾을 수가 없어. 이 시련을 이겨낼 수는 있을까?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이렇게 고통속에 머물러야 할까? 주님, 제가 다시 기뻐할 수 있을까요?”

여기 여러분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이시니라.” (약5:11) “욥이 그의 친구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여호와께서 욥에게 이전 모든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신지라” (욥42:10).

여러분은 욥처럼 잃은것을 두배로 얻지 못할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그것보다 훨씬 더 값진 것을 얻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진실로 여러분의 삶을 지배하고 계신다는 것을 마음으로 알게 될 것입니다. 그분의 사랑은 더이상 신학적인 이론이 아닌, 직접적이고 개인적인 구원의 사랑이란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더이상 그 어떤 적이나 시련을 두려워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단순히 어려움을 이겨낸 승리자가 아닌, 그 이상의 것 , 천국에 계신 예수님과 함께하는 자로 더이상 두려워 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지금의 여러분도 처음으로 시련을 맛본 욥과 같이, 하나님을 오직 성경공부와 설교로만 알고 계실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좋은방법 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에서 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 하나님께서 여러분이 듣는것뿐 아니라 하나님을 볼수 있길 원하십니다. 여러분의 삶을위해 거룩한 계획을 가지고 계신다는 사실을 온전히 믿는 믿음으로 자라길 원하십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지옥에 있는 마귀도, 여러분 앞에 나타나는 그 어느 괴물도 주님의 영원한 목적을 막지 못한다는 사실을 믿기 원하십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가장 힘든 시련 가운데서도 욥처럼 하나님의 선하심을 고백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자신있게 이 믿음의 구절을 낭독할 것입니다, “그가 나를 죽이시리니 내가 희망이 없노라 그러나 그의 앞에서 내 행위를 아뢰리라” (욥13:15).

2015년 10월 12일 월요일

주님앞에서의 진실함 by Gary Wilkerson

매우 작은 결정에도 하나님의 인도를 구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있습니다. 어떤 상표의 치약을 사야 할지 알고 싶다면, 하나님께서는 치약 상표 이름 대신 아마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매일 매일 잊지 말고 양치질을 하여라.” 이처럼 모든 것에 하나님의 뜻을 구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 이유는 많은 것들이 이미 성경에 나와있기 때문입니다.

최근 저는 터키에 갔었습니다. 이라크 국경 근처에서 벌어진 난민사태를 보며, 월드 챌린지가 어떤 도움이 될 수 있을지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많은 난민들이 ISIS의 난폭한 학대를 피하여 터키 국경으로 도망오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안탑깝게도 이 지역엔 UN군의 도움이 전혀 없었습니다. 정말 절실히 도움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가진 것이라곤 입고 있는 옷 밖에 없는 수많은 난민들이 모여드는 곳이였습니다. 부모가 지뢰 폭파로 사망하시는 모습을 직접 본 한 아이와도 대화를 나누어 봤습니다.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엔 너무나 큰 트라우마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광경을 보며 집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전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주님, 월드 챌린지 도 함께 돕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기도가 제 입술에서 나오자마나 거룩한 확신에 휩싸여 되뇌었습니다. “왜 이런 것 때문에 기도를 하고 있지? 당연히 가서 도와야지 않겠어!” 그때 깨달았습니다. “월드 챌린지는 반드시 그곳에 있어야 했습니다. 우리에게는 복음의 소망이 있고 , 또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자원으로 도울 수 있는 능력이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월드 챌린지 사역의 DNA 입니다. 굶주린 자를 먹이라? 고통받는 자에게 위안을? 고아의 삶에 변화를? 왜 이런 질문들을 가지고 기도를 해야 합니까? 갑시다!”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마25:35-36).

오해는 하지 마십시오! 저는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구하기 위해 기도를 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주의 양이고, 또 그의 목소리를 알기에 묻지 않아도 행할 수 있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 (약1:27)

2015년 10월 9일 금요일

하나님의 거룩한 산

이사야는 사탄의 굴욕을 이미 보았습니다. 사악한 영들이 능력과 자신감을 하나님 앞에서 잃는 것 또한 보았습니다. “여호와의 손이 이 산에 나타나시리니 모압이 거름물 속에서 초개가 밟힘 같이 자기 처소에서 밟힐 것인즉” (사 25:10).

이사야는 사단의 굴욕이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는 기도와 찬양의 장소인 산에서 일어난다고 분명히 밝힙니다. 여기서 모압은 이스라엘의 진짜 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악한 사단을 대변하는 표시이기도 합니다.

베드로는 이사야의 환상이 예루살렘의 교화에 이미 일어나고 있다고 설교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모든 선지자의 입을 통하여 자기의 그리스도께서 고난 받으실 일을 미리 알게 하신 것을 이와 같이 이루셨느니라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새롭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행 3:18-19). 베드로는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이 이루어지는 날에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임재로 새롭게 되는 날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사야가 말하는 새롭게 되는 날은 하나님께서 새롭게 하고 치유하시는 날을 뜻합니다 (사 28:12참조). 그리고 우리가 잘해서가 아니라 그분 이름의 영광을 위해서 하시는 것입니다. 오순절에 베드로는 목격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의 임재가 발현하여 수천 명의 군중을 새롭게 하셨습니다. 온 가족을 포함한 많은 사람이 자유를 얻었습니다. 성경에서 베드로가 주님의 임재를 고넬료의 가정으로 움직여, 온 가족이 구원받는 사건을 볼 수 있습니다.

바로 지금, 바로 그때와 같은 깨어짐이 일어나고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묶여 있던 가정들이 자유롭게 되고, 영적으로 잠자고 있던 수많은 자녀가 베일을 벗고 돌아가야 할 부모님에게 향할 것입니다. 저희가 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다니엘이 예레미야의 예언과 시대를 분별하며 했던 대로 하면 됩니다: “내가 금식하며 베옷을 입고 재를 덮어쓰고 주 하나님께 기도하며 간구하기를 결심하고” (단 9:3). 다니엘은 부름 받은 대로 하나님의 거룩한 산으로 갔습니다. 많은 믿는 주님의 사도들이 이 마지막 때에 만나야 할 곳이 그곳입니다!

2015년 10월 8일 목요일

돌아오는 때에

곧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의 능력과 임재속으로 들어갈 것입니다. 주님께 회개와 용서, 말씀, 기도로써 온전히 돌아온 사람들은 그들의 눈물이 기쁨으로 변하는 것을 볼 것입니다. 세계 곳곳에서 지금 자유 된 사람들의 눈물이 방대한 강물처럼 흐르고 있습니다. 수 세기에 걸친 사단의 억압에서 풀어진 사람들이 회개의 눈물을 흘리고, 그들의 구원자를 찬양합니다.

이사야는 우리가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을 경험할 때 울며, “그 날에 말하기를 이는 우리의 하나님이시라 우리가 그를 기다렸으니 그가 우리를 구원하시리로다 이는 여호와시라 우리가 그를 기다렸으니 우리는 그의 구원을 기뻐하며 즐거워하리라”(사 25:9)라고 예언했습니다. 이사야는 자신이 본 것에 너무나 기뻐서 놀라움으로 거의 심장이 터져나갈 지경이었습니다.

“주 여호와께서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 자기 백성의 수치를 온 천하에서 제하시리라” (사 25:8). ‘수치’라는 이 단어는 히브리어에서 근간을 찾으면 “꾸짖다, 망신을 주다”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신실한 믿음의 사람을 꾸짖고 창피를 주는 사단의 능력을 뜻합니다.

이러한 공격은 사랑하는 사람들이 사단의 강한 덫에서 벗어나기를 기도할 때 일어납니다.


아마 여러분도 이런 지옥의 수치를 들어 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조롱하며 “네가 하나님께서 기도에 응답하신다고 자랑했는데, 그 응답이 어디 있는가? 자식을 위해 수년간 금식하고 기도했지만, 나아진 게 없다. 그 오랜 시간 동안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자녀는 절대 구원받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이런 원망도 듣습니다: “다 네 잘못이다. 네가 네 자녀에게 반항의 씨를 심었다. 그의 마음을 굳게 한 것은 너다.” 이것이 사단이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잘 쓰는 수치의 말이지만, 다시 들을 필요가 없습니다. 대신, 주님께서 주신 말씀에 단단히 설 수 있습니다: “주 여호와께서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 자기 백성의 수치를 온 천하에서 제하시리라” (사 25:8)

2015년 10월 7일 수요일

마지막 날을 위한 기적

“또 이 산에서 모든 민족의 얼굴을 가린 가리개와 열방 위에 덮인 덮개를 제하시며” (사25:7).

여기에 놀라운 두 예언이 있습니다. 처음은 이스라엘인에 관한 것입니다. 이사야가 말한 덮개는 모세의 때부터 이스라엘인의 마음을 가리고 있는 영적인 무지를 뜻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 무지를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언제든지 주께로 돌아가면 그 수건이 벗겨지리라”(고후 3:16). “이 신비는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우둔하게 된 것이라… 구원자가 시온에서 오사 야곱에게서 경건하지 않은 것을 돌이키시겠고”(롬 11:25-26)

바울은 이사야가 이스라엘인에 관해 ‘구원자가 무지의 덮개를 제한다’는 예언을 했다고 믿었습니다. 너희가 전에는 하나님께 순종하지 아니하더니 이스라엘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이제 긍휼을 입었는지라(롬 11:30). 여러분, 이 예언은 지금도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세계 곳곳에서 유대인이 그리스도를 볼 수 있는 눈이 띄고 있습니다. 세상적인 잡지도 유대인이 예수님을 다시 보고 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사야의 예언은 우리의 가족과 관련된 다른 의미 또한 포함하고 있습니다. 사단에 의해 영적 무지의 덮개를 쓴 모든 배우자, 자녀, 가족 식구에게 적용됩니다. 저는 자녀들이 사단에 의해 눈이 멀었다고 호소하는 부모님의 편지를 많이 받습니다. 그들은 자녀들을 크리스천 환경에서 양육했으나, 이제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모르겠어. 아이들이 믿음을 상실해버렸고 무슨 말을 해도 듣지 않아’라며 혼란스러워하고 힘들어합니다.

바울은 이 세상의 우상들이 젊은 세대의 눈을 멀게 한다고 말합니다. 사단이 복음의 빛을 차단했기 때문에, 청년들이 믿음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므로 부모가 무슨 이유 때문인지 알아보려고 하는 것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문제는 상담, 설교, 좋은 부모 양육방식 등을 벗어나 있습니다. 단지, 간단한 기적만이 필요할 뿐입니다. 


우리의 싸움은 영적인 것입니다. 결국, 우리는 이 세상 우상의 영과 대적하기 때문입니다. 사악한 영들은 우리의 삶에 깊이 임재하고 계시는 예수님만이 다루실 수 있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사단이 묶어놓은 사슬을 흘러내리는 초같이 녹일 수 있습니다.

2015년 10월 6일 화요일

예수님의 임재

여러분의 집을 방문하시는 분이 예수님의 임재를 경험하십니까? 그의 거룩한 향기가 여러분의 가정, 결혼생활, 관계 속에 스며있습니까? 가족의 중보의 눈물, 잘못을 바로잡으려는 진실한 마음이 있습니까? 아니면 육이 다스립니까?

모든 기독교인의 가정은 고결한 곳이어야 하고, 세상과 육에서 떨어진 산이며, 예수님과 함께하는 거룩한 잔치가 벌어지는 곳이어야 합니다. 하지만 많은 가정에서 찾을 수 없는 이유는 불결한 것들로 더럽혀졌기 때문입니다. 선정적이고 비열한 사악함이 텔레비전이나 인터넷을 통하여 허용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임재를 일궈야 하는 가정에서 이러한 악이 존재하는 것을 마주하는 천사는 얼마나 아연실색하겠습니까? 지금 많은 크리스천들이 외설적인 비디오를 빌리고, 텔레비전의 타락에 젖고, 주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영화에 돈을 들이는 일에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왜 그들의 가정에 영적인 죽음이 맴도는지 궁금해합니다.

우리 가정, 교회, 마음에 그리스도의 임재와 능력을 가져오고 지속시키는 것은 성령님의 역사 하심입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우상숭배로 성령님을 근심시킵니다. 우리의 집이 더러운데 사랑하는 하나님을 모르는 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어떻게 말이 되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기적에 놀라운 기적을 더하셔서 우리의 마음과 정신을 벅차게 하심으로 일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세상이 존재하기도 전에 모든 것을 계획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약속의 계획을 만드셨으면, 그것은 무조건 실현이 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연회에 초대받지 못할 수 있습니다. 주님에 대한 뜨거운 사랑이 미지근해졌거나, 세상이 주는 즐거움에 빠져버린 사람들은 잔치에 참석할 수 없을 것입니다. 


선지자 이사야는 연회의 만찬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 산에서 만민을 위하여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포도주로 연회를 베푸시리니 곧 골수가 가득한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맑은 포도주로 하실 것이며” (사 25:6).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의 우유만으로 만족하지 않았던 사람을 말합니다. 이들은 주님의 책망을 사랑했으며, 기름진 말씀에 갈급했습니다. 오래 저장된 맑은 포도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매일 찾고 또 갈급해 했습니다.

2015년 10월 5일 월요일

안내자 by Gary Wilkerson

수년 전에 친구들과 함께 텍사스주 샌안토니오라는 도시에 있는 알라모 요새를 보러 여행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일행 중의 한 친구의 고향이 마침 샌 안토니오여서 가이드를 하며 길 안내를 하겠다고 자청했습니다. 하지만 도시에 도착하자, 같은 상점이 세 번이나 돌며 무언가 잘못되어가는 것을 느꼈습니다.

“우리 계속 같은 자리를 도는 것 아니야?”라고 누군가 물었습니다. 그 친구는 “아니야, 거의 다 왔어”라며 우리를 안심시켰습니다. 하지만 엄청난 교통체증이 걸리는 곳으로 들어선 것을 알게 되었고, 마침내 누군가가 그 친구에게 물었습니다. “우리는 네가 이 도시를 잘 아는 줄 알았어. 고향이라고 했잖아?” 그 친구는 “맞아, 하지만 내가 두 살때 이사를 가버렸어”라고 대답했습니다.

분명히 마이클이라는 친구는 이상적인 안내자가 아니었습니다. 의도는 좋았지만, 저희를 어떻게 안내해야 할지도 몰랐습니다. 그는 우리가 살면서 원한다고 생각하지만, 예수님이 주시는 만족스러운 삶과 반대되는 곳을 맴돌게 하는 안내자를 연상시킵니다.

다른 안내자는 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있어도 요점을 놓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 아내 켈리와 필리핀으로 선교여행을 갔을 때의 일입니다. 쉬는 날에 저희는 가이드가 딸린 카누 여행을 하기로 했습니다. 그 투어 요원들은 작지만, 운동으로 다져진 필리핀인들로 구성되었습니다. 저희는 강물이 얕아서 그냥 떠내려 가야 하는 곳에 이른 적이 있습니다. 저는 “투어의 한계에 이르렀군.”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놀랍게도 젊고 힘센 가이드는 제가 탄 카누를 들어서 깊은 물로 옮겨주었습니다! “너무나 놀랍군! 정말 신뢰 가는 가이드야!”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후에 경치가 아름다운 곳에 이르렀을 때, 지도가가 우리에게 카누 젓는 것을 멈추라는 신호를 했습니다. “잘됐군. 이 나라의 놀라운 역사에 관해서 설명을 들을 수 있겠어. 아마 이 나라의 민주 지도자들이 어떻게 혁명을 기획한 지일지 몰라”라고 생각했습니다. 가이드는 신난 기색을 띠며 “이곳이 ‘람보’라는 영화가 만들어진 곳입니다!”라고 말했고, 다른 곳을 가리키며 “이곳에서 브래드 피트와 안젤리나 졸리가 소풍을 했습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저희가 살면서 진퇴양난의 곤경에 처했을 때 정보를 주는 안내자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가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풍성한 삶으로 이끄는 정보 또한 가지고 있습니까?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요 10:10).

2015년 10월 2일 금요일

놀라운 연회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 산에서 만민을 위하여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포도주로 연회를 베푸시리니 곧 골수가 가득한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맑은 포도주로 하실 것이며”(이사야 25:6).

이 구절에서 이사야 선지자가 하고자 하는 말은, 이러한 놀라운 연회가 예수님께서 돌아오시기 전에 이루어질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때에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울거나, 공포에 젖어있거나 패배하고 스트레스로 지쳐있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돌아오실 때에 하나님의 백성들은 “골수가 가득한 기름진 것”을 먹으며 연회를 즐기고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이 연회를 마련하셨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마지막 때에 이러한 축제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은 바로 이것입니다. “내가 최고의 와인은 마지막을 위해 남겨두었단다. 그래서 지금 나의 백성들에게 부어줄 것이다. 나의 임재 안에서 나의 백성들이 놀랍고 즐거운 것들로 연회를 즐기게 할 것이다.”

저는 전 세계의 각 지역을 여행하면서 이러한 놀라운 연회를 보았습니다. 젊은 청년들이 영혼을 먹이시는 생명수를 구하며 복음을 갈급해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거짓 복음과, 군중이 듣기 좋아하는 달콤한 유혹의 메시지보다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의 친밀한 교제 속에서 그의 계시와 진리를 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불과 같은 열정으로 기도함으로써 주변의 모두를 믿음으로 감동시키고 있습니다.

자, 이러한 놀라운 연회가 이루어지는 산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 산은 거룩한 장소, 그리스도의 임재가 나타날 집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과 교제하며 심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장소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하나님의 임재하심이 머무를 이 산은 아주 중요한 개념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마지막 때에 하시는 모든 일들은 그의 임재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그리스도의 임재의 나타나심에 대하여 말할 때, 결코 우리가 쉽게 상상하는 미스터리하고 세상적이고 드라마틱한 무언가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나타내실 때는 그 자리에 있는 모두가 느낄 수 있게 하십니다. 시편의 저자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산들이 여호와의 앞 곧 온 땅의 주 앞에서 밀같이 녹았도다”(시편 97:5). 쉽게 말하자면, 모든 영적인 장벽과 세속적인 방해 등은 예수님께서 자신을 나타내실 때에 모두 증발해 버릴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임재는 분명히 실재하며, 진짜로 예수님께서 나타나실 때에는 직접 만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2015년 10월 1일 목요일

마지막 때에

현재 우리는 성경에서 말하는 “늦은 비”의 때에 살고 있으며 현재 하나님의 계획들이 실현되고 있습니다. 온 세계에 걸쳐 사탄의 도시의 높은 장벽이 허물어지고 있습니다.

공산주의가 어떻게 되었는지 생각해보십시오. 러시아 그리고 동유럽 국가들을 생각해보고ㅡ독일의 장벽은 말 그대로 무너져 내렸습니다. 수 만명의 사람들이 한때 사탄의 포박 속에 살았지만 이제는 자유함을 얻었고 그들이 처음으로 복음을 접하게 됩니다. “강한 민족,” 즉 죄에 무뎌졌던 사람들이 이제 하나님을 경외합니다.

자, 우리는 현재 아주 특별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제가 50년 이상 사역하면서도 보지 못해왔던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제 사역팀이 나이지리아에서 전도성회를 하는데, 하루에 500,000며의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예전에는 볼 수 없었던 하나님에 대한 갈급함이 보다 더 절박해진 것이 보였습니다. 제가 과거에는 상상도 못 했던 일들입니다.

또 그러한 놀라운 광경은 이란에서도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수십 년 전에 제가 집필한 책 십자가와 칼이 살며시 출판되었습니다. 그리고 약 25,000부가 보급되었습니다. 그리고 영화 예수는 수백 개의 모임에서 은밀하게 상영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수천 명에서 수만 명의 이란 사람들이 복음으로 구원받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최근에는 중동지역 어느 국가의 틴 챌린지 프로그램에서 제 마음을 감동하게 하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슬람 국가인 이 나라에서는 알코올중독과 마약중독이 만연해있습니다. 정부 관계자들은 그 문제가 이제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인정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에 힘입어 틴 챌린지 프로그램에서는 중독에서 자유함을 얻고, 예수님을 영접한 수백 명의 졸업자들을 배출하였습니다.

어느 졸업자는 이제 그 지역의 유월절 교단의 책임자로 일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는 나라의 마약 황제로 알려진 사람이 틴 챌린지의 졸업식에 참여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어떤 저명한 이슬람 지도자는 수많은 젊은이들의 담대한- 예수님께서 자신들을 중독에서 치유하셨다는- 간증을 들었습니다. 아마도 그 마약 황제가 몰랐던 한가지 사실은, 그 수백명의 틴 챌린지 졸업자들이 졸업 후에 각 지역으로 흩어져 교회를 세우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정부는 틴 챌린지를 국가에서 가장 성공적인 마약 프로그램으로 인정하였습니다.

온 세계에서 믿겨지지 않는 방법으로 하나님의 계획이 실현되고 있습니다. 사탄의 장벽들이 모두 무너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사도행전 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