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3월 4일 목요일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라

예수님이 자신의 때로부터 종말의 때까지 지켜보시면서 엄청난 문제점을 지적하셨습니다. 자신의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마9:37).

이 말씀을 읽으며 나는 궁금해졌습니다. “해결책이 무엇일까?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일꾼들을 길러내어 세상으로 보낼 수 있을까?” 바로 다음 구절에서 예수님이 대답하셨습니다. 누군가가 이 일꾼들을 추수하는 곳으로 보내달라고 기도해야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 하시니라”(마9:38).

당신은 “전 세계에 걸쳐 문호가 닫히고 있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사실 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눈에 어떤 나라들이 아무리 폐쇄적으로 보여도 상관없습니다. 하나님이 유럽에서 철의 장막과 아시아에서 죽의 장막을 찢어버리셨다면 그 무엇도 그분이 원하시는 곳에서 일하는 것을 막을 수 없습니다.

1980년대 우리 사역이 텍사스 주에 본부를 두고 있을 때 나는 1년 동안 뉴욕 타임스 스퀘어에 교회를 세우기 위해 하나님이 누군가를 뉴욕으로 보내주실 것을 기도했습니다. 나는 하나님이 누구를 선택하시든지 모금하고, 회의를 소집하고, 후원자들을 모으는 일 등을 돕기로 약속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이 특정지역의 추수를 위해 일꾼을 보내달라고 청하는 동안 주님은 나의 마음에 부담을 주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강렬한 기도를 통해 선교사로 보냄을 받았습니다. 안디옥에서 교회의 장로들이 추수를 위해 기도하던 중 일어났던 일 이었습니다(행13:2-6 참조). 바울의 첫 번째 선교 여행은 기도 모임의 산물이었던 것입니다. 경건한 사람들이 하나님께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달라고 청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얻은 직접적인 결과였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안디옥의 경건한 사람들처럼 추수를 위해 기도하는 일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실은, 우리가 기도하는 동안, 성령께서 지상에서 주님께 쓰임 받기 원하는 사람들을 찾아내어 그 마음 가운데 다급함을 느끼게 해주십니다. 그분은 도처에 있는 사람들을 감동시키시고 자신의 사역을 위해 구별해 두십니다.

마태복음 8장에서 한 백부장이 죽어가는 하인을 고쳐주시기를 구하려고 예수님께 왔습니다. 그리스도가 그 백부장에게 대답하셨습니다. “가라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하시니 그 즉시 하인이 나으니라”(마8:13). 나는 추수를 위해 중보기도 하는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일이 일어난다고 믿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일꾼들을 보내달라고 청할 때 성령께서 어떤 곳의, 그 누군가의 마음을 감동시킵니다. 어느 곳이든지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강력한 사실은, 우리의 기도가 일꾼들을 추수하는 곳으로 보내는데 쓰임 받는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