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3월 29일 월요일

우리는 지나치게 세속적입니다

요즈음에는 천국에 대한 이야기나 이 낡은 세상을 등진다는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셨습니까? 대신 우리는 더욱 많은 물질을 얻기 위해 우리 믿음을 사용하는 법에 대한 메시지들로 폭격을 맞고 있습니다. 어느 유명한 선생은 말했습니다. “다음에 올 부흥은 재정적 부흥일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믿는 자들에게 재정적으로 복을 퍼부어줄 것입니다.”

죽음에 대한 메시지는 어느 것이나 부담스럽습니다.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것조차 무시해 버리려고 하고 그에 대해 토론하는 사람들을 병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때때로 우리는 천국이 이러할 것이라고 이야기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죽음이라는 주제는 금기입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에 대한 개념이 얼마나 위축되어버렸는지요! 그토록 많은 크리스천들이 죽음에 대한 생각에 두려워하는 것도 당연합니다. 사실은 우리가 세상과 그에 얽매인 모든 것을 버리라는 그리스도의 부르심에 대한 이해와 거리가 먼 것입니다. 그분은 와서 죽으라고, 우리 자신에 대해 기념비를 세우지 말고 죽으라고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기억되어져야 하는지에 대해 염려하지 말고 죽으라고 부르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서전이나, 본부 건물이나 대학이나 신학교를 남기지 않으셨습니다. 떡과 포도주 외에는 자신을 대대로 기념하기 위해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습니다.

초대 크리스천들은 얼마나 달랐던 지요. 바울은 죽음에 대해 많이 말했습니다. 실은, 죽음으로부터 우리가 부활하는 것이 우리의 복된 소망이라고 신약에 언급되어있습니다. 하지만 요즈음 죽음은 우리가 익숙해진 행복한 삶으로부터 우리를 떼어내는 침입자로 간주 됩니다. 우리의 삶을 물질적인 것들로 몹시 어질러놓았기에 우리는 꼼짝달싹도 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더 이상 우리의 아름다운 집들, 사랑스러운 물건들, 매혹적인 연인들을 떠난다는 생각을 견딜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생각하는 듯합니다. “지금 죽는 것은 너무도 엄청난 손실일거야. 나는 주님을 사랑해, 하지만 내 집을 즐겨볼 시간이 필요해. 아내와 결혼했잖아. 소를 시험해 봐야만해. 시간이 더 필요해.”

믿음에 대한 가장 위대한 계시는 무엇일까요?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실천에 옮길 수 있을까요? 히브리서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을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히브리서 11:13,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