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3월 10일 수요일

가뭄의 계절

저는 수천명에게 설교를 하지만 매우 메마르게 느끼는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함에서 아주 먼것을 느끼는것입니다. 이런 때에는 하나님의 말씀 읽기를 갈망하지 않습니다. 그런 메마른 기간에는 말씀읽기를 주로 의무적으로 하게 됩니다. 메마르고 비었을 때는 나의 믿음이 온전하고 예수님에 대한 나의 사랑이 강할찌라도 기도하려는 충동을 크게 느끼지 못합니다.

교회에 앉아있는데 주위의 사람들은 은혜를 받으나 본인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 적이 있으십니까? 그들은 울며 기도하며 엄청난 감정으로 예배합니다. 그러나 당신은 전혀 감동을 받지 못합니다. 이때 당신은 본인의 영적생활에 무엇이 잘못되었나 회의가 들기 시작합니다.

저는 모든 참된 그리스도인은 신앙생활에서 그러한 영적 가뭄을 종종 체험한다고 믿습니다. 예수님께서도 고립됨을 겪으셨습니다. 그때 주께서 이렇게 부르짖으셨습니다. “아버지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이런 영적 가뭄을 어떻게 하면 극복할 수있습니까?

1. 기도의 삶을 유지해야 합니다.

한두시간 하나님과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메마름과 공허함을 가장 빨리 떨쳐버리는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과의 은밀한 골방에서의 이 만남을 미루면 죄책감이 생기게 됩니다. 주님에 대한 사랑이 우리를 하나님 임재하시는 곳으로 인도해야 할 것을 알지만 우리는 많은 것으로 스스로를 바쁘게 합니다. 시간은 지나고 하나님을 배제시킵니다. 우리는 여러 “생각하는 기도”를 하나님 계신 곳으로 던져 보냅니다. 그러나 문닫고 은밀한 골방에서 아버지께 홀로 기도하는 것과 바꿀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의 은혜의 보좌앞으로 담대히 나오십시요. 죄를 짖고 실수를 했을찌라도. 경건한 슬픔을 가지고 회개하는자는 즉시 용서하십니다.

2. 나는 조금의 고통을 더이상 두려워 하지말아야 한다.

예수의 부활전에 잠시동안의 고통이 앞섰습니다. 우리는 죽습니다. 우리는 고생 합니다. 고통과 슬픔이 있습니다.

우리는 고통을 받거나, 항거하거나 상처 받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고통없는 구제를 원합니다. 우리는 초자연적인 개입을 원합니다.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 행하시옵소서. 저는 약하고 언제나 그럴것입니다. 저는 제 식대로 행하는 동안 초 자연적인 구제를 기다릴 것이니 모든것 주님께서 행하십시요.”

그러나 하나님께 감사할것은 항상 고통은 최후의 승리전에 있는 잠간입니다.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간 고난을 받은 너희를 친히 온전케 하시며 굳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케 하시리라” (베후5: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