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3월 31일 수요일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요?

기도들이 응답되지 않을 때 그것은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요? 고통이 좀체 사라지지 않고 하나님이 우리 믿음에 대한 응답으로 아무것도 하시지 않는 것처럼 보일 때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요? 종종 그 때 하나님은 이전보다 더욱 최고로 우리를 사랑하고 계시는 중 이십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 하시느니라.” 징계하는 사랑은 모든 믿음의 행위, 모든 기도, 모든 약속에 선행합니다. 나를 고통스럽게 한다고 내가 생각하는 것이 나에 대한 그분의 사랑일 수 있습니다. 나의 고집과 자존심을 버리도록 때리시는 그분의 부드러운 손길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믿음을 믿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능력이 우리 안에 역사하도록 하는 것보다 우리 기도의 능력을 강조합니다. 하나님을 파악해서 그분을 책처럼 읽을 수 있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개념과 반대로 일이 벌어질 때 놀라거나 당황하기를 원치 않으므로 “그건 하나님일 리가 없어. 그분은 그렇게 일하시지 않지,”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움직이기 위해 너무 분주하여 그분이 우리에게 역사하려고 하신다는 것을 망각합니다. 그것이 바로 인생의 의미입니다. 즉, 하나님이 우리를 영광의 그릇으로 재창조하시려고 우리에게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물을 변화시키기 위해 기도하느라 바빠서 기도가 우리를 변화시키도록 허용할 시간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기도와 믿음을 마치 한 그룹의 선택된 “대가들”이 그분으로부터 무언가 캐내기 위해 배우는 두 개의 비밀 도구로 우리 손안에 두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기꺼이 우리가 받으려는 것 보다 더욱 더 주시고자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왜 결코 자물쇠로 잠가둔적이 없는 것을 열려는 열쇠나 도구로 기도와 믿음을 사용할까요?

기도는 하나님의 유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유익을 위한 것입니다. 믿음은 그분의 유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유익을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원하고 신성하게 성가신 분이 아닙니다. 그분은 마치 “현명한 자가 상을 탈 것이라”고 하며 사람들에게 풀라고 내준 수수께끼들로 자신을 두르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는 이처럼 기도와 믿음의 문제에 대해 혼동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대담하게도 하나님을 모든 소원을 이루어주는 우리의 개인 지니로 생각합니다. 믿음을 하나님의 약속으로 그분을 몰아세우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을 벽에 밀어 붙여놓고 “주님, 당신은 당신의 약속을 돌이키실 수 없습니다. 나에게 올 몫을 원합니다. 당신은 당신의 말씀에 구속되어있습니다. 그렇게 하셔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당신의 말씀은 진리가 아닙니다,”라고 외치느라 애쓰는 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신다고 우리는 생각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기도와 믿음의 진정한 의미를 놓치는 이유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오로지 주시는 분으로, 우리는 받는 자로 간주합니다. 하지만 기도와 믿음은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자가 되는 길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무엇을 얻어내는 길로 사용될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분을 기쁘게 해드릴 수 있는 것들을 드리는 길로서 사용되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