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9월 16일 목요일

교제의 삶

하나님의 자녀중의 많은 이들이 그분과 교제하는 삶에 대해 거의 또는 전혀 모릅니다. 왜 그럴까요?

그런 크리스천들은 하늘 아버지에 대해 비감하고 왜곡된 개념을 갖고 있다고 나는 믿습니다. 자기 주인에 대해 왜곡된 이미지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한 달란트를 숨겨둔 종에 대한 예수님의 비유를 기억합니다. 그 종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내가 알았으므로”(마25:24).

마찬가지로, 오늘날 많은 신자들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내가 반가와 사랑 안에서 기뻐하시며 노래 부르실 리가 없다. 때로 나는 비참할 만큼 그분을 실망시켜드렸고 그분의 이름에 먹칠을 하였다. 어떻게 그분이 나를 사랑하는 것이 가능할까? 특히 지금 내가 직면하고 있는 이런 고투가운데?”

이것이 바로 왜 그토록 많은 수의 크리스천들이 그들의 하늘 아버지께 가까이 다가가기를 원치 않는지 한 가지 큰 이유라고 나는 믿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어느 모로 그분을 실망시켰다고 느끼기 때문에 그분께 가까이 나아가기를 두려워합니다. 그분에 대해 그들이 생각하는 것은 소멸하는 불로 가득차고 그들을 심판하고 정죄할 준비가 되어 있는 분이라는 것이 전부입니다.

오늘날 우리 모두에게 할 질문은 어떻게 우리에게 사랑의 편지를 쓰시고, 우리와 함께 있기를 갈망한다고 말씀하시고, 항상 우리를 감싸 안을 준비가 되어있으시고, 우리에 대해 오직 선한 생각만 하고 계시다고 말씀하시는 아버지께 우리가 가까이 다가기를 원치 않을 수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어리석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이런 확신을 주십니다: 사탄은 네가 무용지물이라고 할 지 몰라도 나는 단언하건대 너는 나의 기쁨이란다.

당신은 이렇게 생각할지 모릅니다. “명백히 주님은 아직도 죄 가운데 있는 사람을 기뻐하시지 않는다. 내가 내 죄의 길을 계속 간다면 그분이 나를 사랑하실 것이라고 기대할 수 없다. 그런 사고방식은 신성 모독에 근접한 것이다.”

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을 사랑하시지만 그들의 죄는 사랑하시지 않습니다. 성경은 그분이 계속 죄를 짓는 자녀는 모두 책망하시지만 언제나 오래 참으면서 그리하신다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그분이 우리를 책망하신 후에 그분의 영이 죄에 대한 그분의 진노에 대한 감각을 우리에게 채워주십니다.

이 모든 것을 통하여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변하지 않은 채 있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나 여호와는 변하지 아니하나니”(말3:6). “아버지....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약1:17). “내가 하나님이요 사람이 아님이라”(호11:9).

우리에 대한 그분의 사랑이 마치 그분에 대한 우리의 사랑처럼 밀려왔다 밀려가는 것은 결코 가능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의 사랑은 뜨겁고 열정적이다가 미지근하거나 차갑기도 할 정도로 거의 매일 변합니다. 제자들처럼 우리도 어느 날은 예수님을 위해 죽을 준비가 되어 있다가 그 다음 날에는 그분을 버려두고 달아납니다.

당신이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지 물어보아야만 하겠습니다. “내 하늘 아버지는 나를 사랑하신다! 그분은 내가 그분 보시기에 다정하고 사랑스럽다고 말씀하시고 나는 그분을 믿는다. 내가 무슨 일을 겪든지, 어떤 시험이나 시련을 겪게 되든지 그분이 나를 구해내실 것이라는 것을 안다. 그분은 이 기간 동안 내내 내가 절대로 부서지도록 내버려두시지 않고 내 위를 감돌고 계실 것이다. 그분은 언제나 나에게 친절하고 부드러우실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교제가 시작되는 때 입니다. 우리는 매일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에 대해 확신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에 대한 그분의 계시를 우리가 믿는다는 것을 그분께 보여드려야 할 것입니다. 요한은 기록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요일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