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9월 20일 월요일

불신의 기도

믿음의 기도에 대해서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나는 이 기도에 상응하여 거울에 비친 형상, 즉 육에 기초한 기도가 있다고 믿습니다. 나는 이것을 불신의 기도라고 부릅니다.

당신에게 한 가지 질문을 하고 싶습니다. 당신은 주님이 “그만 기도해라 - 무릎을 펴고 일어나라”라고 당신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까? 그분의 영이 당신에게 “그만 울고 눈을 닦아라. 왜 내 앞에서 얼굴을 땅에 대고 있느냐?”라고 명령하신 적이 있습니까?

주님은 바로 이 말들을 모세에게 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어찌하여 내게 부르짖느냐”(출14:15). 이 구절에 대한 히브리어 직역은 “너는 왜 내게 고함을 지르느냐? 내 귀에 들리는 이 시끄러운 간구는 다 무엇이냐?”입니다.

하나님은 왜 모세에게 이 말을 하셨을까요? 여기 한 경건하고 기도하는 사람이 인생의 위기에 놓여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로에게 쫓기고 있었고 탈출구가 없었습니다. 대부분 크리스천들도 모세처럼 반응했을 것입니다. 그는 호젓한 언덕으로 올라가 홀로 주님 앞에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기도하며 그의 마음을 쏟아 부었습니다.

모세가 부르짖는 것을 하나님이 들었을 때, 그분은 그에게 “그만 됐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다음에 대해서는 성경에 명백한 말씀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 시점에서 하나님은 아마, “모세야, 너는 내 앞에서 괴로워할 권리가 없다. 너의 부르짖음은 나의 신실함에 대한 모욕이다. 나는 이미 구원에 대해 나의 진지한 약속을 너에게 주었다. 그리고 어떻게 행해야 할지 상세히 가르쳐주었다. 이제 울음을 그쳐라,”라고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우리 자신의 위기를 직면할 때 우리는 “내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은 기도이다,”라고 스스로를 확신시키려고 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행동하라고, 믿음으로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라고 우리를 부르시는 때가 옵니다. 그런 때에 그분은 우리가 광야로 후퇴하여 기도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것은 불순종일 것이고 어떤 기도를 드려도 그것은 불신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불신의 기도는 하나님의 인자하심만을 고려합니다. 그분의 거룩한 심판의 준엄함을 무시합니다. 바울이 기록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준엄하심을 보라”(롬11:22). 사도는 여기서 의식적으로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준엄하심을 한숨에 말합니다. 두 개를 따로 떼어 놓을 수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구약에서는 이사야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하지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 놓았고 너희 죄가 그의 얼굴을 가리어서 너희에게서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 이는 너희 손이 피에.....더러워졌으며”(사59:1-3).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구약과 신약사이에 달라지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이사야가 지적하였듯이 사랑과 자비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그분은 거룩하고 공정하시기 때문에 여전히 죄를 미워하십니다. 그것이 바로 그분이 이스라엘에게 “너희 죄로 인해 너희 말을 들을 수 없다”고 말씀하시는 이유입니다.

시편 기자 다윗의 말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내가 나의 입으로 그에게 부르짖으며 나의 혀로 높이 찬송하였도다 내가 나의 마음에 죄악을 품었더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 그러나 하나님이 실로 들으셨음이여 내 기도 소리에 귀를 기울이셨도다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가 내 기도를 물리치지 아니하시고 그의 인자하심을 내게서 거두지도 아니하셨도다”(시 66:17-20).

시편 기자의 말은 “나는 내 마음에 죄악을 보았고 그와 함께 거하기를 거부하였다. 그래서 나는 죄를 씻기 위해 주님께 나아갔다. 그러자 그분은 나의 기도를 들으셨다. 하지만 만약 내가 나의 죄를 붙들고 있었다면 하나님은 내 부르짖음을 듣지 않으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