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1월 30일 화요일

오직 가족을 위하여

“요셉이 아우를 사랑하는 마음이 복받쳐 급히 울 곳을 찾아 안방으로 들어가서 울고”(창세기 43:30).

이것이, 비록 죄인일지라도 그를 향한, 우리 구세주의 마음입니다. 요셉의 형제들은 그의 앞에서 먹고 마시며 그의 집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요셉에게 따로 차리고 그 형제들에게 따로 차”렸습니다(창세기 43:32). 이 말의 중요성을 가볍게 넘겨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들은 온전히 회복되지 않은 채, 진정으로 그를 알지 못한 채, 사랑과 은혜의 계시를 받지 못한 채 요셉 앞에서 즐거워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무한한 사랑에 대한 계시를 아직 받지 못한 채 주님의 존전에서 먹고 마시며 찬양하는 사람들 일 수 있습니다. 사랑받지 못한다는 감정이 여전히 그들 마음가운데 남아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전으로 가서 노래하고 예배하며 찬양하고 집에 돌아가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신다는 증거를 보여주지 않으셨다. 내 기도는 응답받지 못한다. 하나님은 다른 크리스천들을 돌보시는 것처럼 나에게는 진정한 관심이 없으시다,”라는 동일한 거짓말로 되돌아가는 크리스천들의 경우입니다.

사랑에 대한 온전한 계시를 받기 전에 요셉의 형제들이 거쳐야할 마지막 한 단계가 남아있었습니다. 그러한 계시는 마음이 상하고 회개하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시편 51:17). 형제들은 아직 심령이 상하지 않았습니다(창세기 43:34).

이들은 자신의 죄를 인정했으나 요셉이 그들에게 그의 사랑을 나타내기 전에 그들의 비통함과 인간적인 자원의 막바지에 다다라 완전히 깨어져야 했습니다. 그래서 요셉은 그들을 마지막으로 시험했습니다. 그들이 가나안으로 돌아가기 전에 그의 청지기에게 막내 동생 베냐민의 자루에 자기가 쓰는 은잔을 집어넣도록 명했습니다. 그 형제들이 성읍을 벗어나기도 전에 요셉의 사람들이 그들을 따라잡고 잔을 훔쳤다고 비난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무죄라고 확신했기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의 종들 중 누구에게서 발견되든지 그는 죽을 것이요 우리는 내 주의 종들이 되리이다”(창세기 44:9).

그들의 태도가 달라진 것을 들어 보십시오. “하나님이 종들의 죄악을 찾아내셨으니 우리와 이 잔이 발견된 자가 다 내 주의 노예가 되겠나이다”(창세기 44:16). 그들은 서로 싸우지 않았습니다. 더 이상 자존심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낮아지고, 상하여 마침내 심령 깊은 곳에서부터 부르짖었습니다. “포기합니다! 항복합니다!”

그러자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이 계시되었습니다. “요셉이 시종하는 자들 앞에서 그 정을 억제하지 못하여 소리 질러 모든 사람을 자기에게서 물러가라 하고 그 형제들에게 자기를 알리니 그 때에 그와 함께 한 다른 사람이 없었더라”(창세기 45:1).

세상은 이 같은 사랑의 계시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합니다. 그들은 이제 무조건적인 사랑과 관용이라는 가족의 유대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성경은 “요셉이 큰 소리로 우니 애굽 사람에게 들리며 바로의 궁중에 들리더라”(창세기 45:2)고 말합니다. 세상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하여 들을 수 있지만 오직 가족만이 그것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가족만이 그러한 사랑과 긍휼 안에서 다루어집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겸손하고 심령이 상한 자안에 거하십니다. 그분은 그분의 가족가운데서 기뻐하십니다. 지난 모든 세월을 통틀어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우리가 죄인이었을 때조차도. 당신을 향한 그분의 사랑 안에서 안식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