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0월 29일 금요일

당신은 당신의 아버지의 사랑 안에서 안전합니다!

예수님은 탕자가 집에 돌아왔을 때 그의 아버지의 집으로 다시 받아들여졌다고 말씀했습니다. 그는 새 옷을 받고 그의 아버지의 식탁에서 먹으며 온전히 용서받았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천사가 된 것은 아닙니다.

정반대로, 나는 그의 아버지가 상황이 일단락되기 전까지는 아들과 많은 문제를 겪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이 아들이 알아야만 했던 것은 그가 자신의 아버지의 사랑가운데 안전했다는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아버지가 그를 인내해주고, 같이 노력하고 사랑할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만 했습니다. 우리의 천부께서도 우리에게 이같이 하십니다. 하지만 우리는 계속 이렇게 말합니다. “언젠가는 내가 완벽해지고 하나님 앞에서 올바르게 되어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기가 쉬워질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그분은 당신이 죄인이고, 타락한 사람이고 그분의 원수이었을 때 당신을 사랑하셨습니다. 이제 당신이 그분과 화목했으니 얼마나 당신을 더 사랑하겠습니까! 하나님은 이미 당신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네가 나에게 이방인이었을 때, 반역하고 죄 가운데 있을 때에 너를 사랑했다. 네가 아들이 되겠다고 헌신했으니 이제 내가 너를 더욱 더 사랑하지 않겠느냐?”

우리는 마땅히 그래야 할 만큼 그분의 사랑 안에서 자신감을 가지고 안식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자신에 대해 사랑이라(he IS love)고 말씀합니다. 요한은 기록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안식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요한일서 4:16).

2010년 10월 28일 목요일

깨어나 삶을 사십시오. 지금 당장!

우리의 대부분은 아직도 성취하기 위해 미래를 바라보는 어리석은 자들입니다. 우리는 미래의 어떤 사건이나 환경의 변화가 우리에게 평강과 기쁨을 주리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이렇게 말합니다. “기다려 봐. 내 때가 오고 있어. 어떻게 해서든지, 어느 날엔가, 어디선가.... 저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몰라도 어떻든지 오고 있는 중이야.” 우리는 마치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며 날짜를 꼽고 있는 아이들 같습니다.

다윗이 슬픔에 잠겨 상념에 젖었던 때 시간이 너무 빨리 흘러간다고 쓴 적이 있었습니다. 이루어 놓은 것이 너무 적다고 그는 생각했습니다. 그 당시 모든 것이 헛된 것처럼 보였습니다. “진실로 각 사람은 그림자 같이 다니고 헛된 일로 소란하며 재물을 쌓으나 누가 거둘는지 알지 못하나이다 주여 이제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시편 39:6-7). 다윗은 심히 낙담했습니다. 그의 현재 상황은 너무도 헛되어 보였습니다. 그래서 어찌할 바 모르는 심정으로 부르짖었습니다. “주여 이제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최근 나는 펜실바니아의 언덕을 홀로 걷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내 마음에 이 동일한 질문을 던지셨습니다. “데이빗, 네가 바라고 있는 것이 무엇이냐? 왜 이 날이 네 인생의 가장 좋은 날이 아닌 것이지? 왜 너는 지금 충만하고 즐거울 수 없는 거냐? 저 너머에 네가 예수 안에서 이미 갖고 있지 않은 것은 아무것도 없단다.”

당신에게 묻습니다. 무엇을 기다리고 있습니까? 당신은 “오, 나의 이상형을 기다리지요,”라고 말할지 모르겠습니다. 당신을 모든 외로움에서 건져내고 당신의 영혼을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으로 채워 주리라고 생각하는 경건한 사람을 말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들의 배우자에게 권태를 느껴 인생의 낭만을 찾고 허전함을 몰아내기 위해 배우자가 승천하기를 기다리기도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저 너머에는 당신이 이미 갖고 있는 모습, 존재를 변화시키거나 그것에서 구원해 줄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어떤 다른 사람이 당신의 고독의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대단히 잘못된 것입니다. 당신은 지금 구원, 평강, 소망과 기쁨을 발견해야만 합니다!

예수님만이 유일하게 공허함을 채우실 수 있는 분입니다. 깨어나 삶을 사십시오!

2010년 10월 27일 수요일

하나님의 능력과 약속들을 제한하기

성경은 이스라엘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그들이 돌이켜 하나님을 거듭거듭 시험하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노엽게 하였도다”(시편 78:41).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불신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돌이켰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나는 우리가 의심과 불신으로 오늘날 하나님을 제한한다고 믿습니다.

우리 삶의 대부분의 영역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하지만 우리 믿음은 항상 범위와 한계가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적어도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떠맡아주실 것이라는 것을 실제로 믿지 않고 차단해 버리는 한 작은 영역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많은 독자들이 나의 아내 그웬의 치유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하지만 종종 자신들의 남편, 아내, 아들, 딸들의 치유의 문제에 대해서는 하나님을 제한합니다. 나는 치유의 영역에 대해 가장 하나님을 제한합니다. 많은 사람들의 육신의 회복을 위해 기도했고 하나님이 연이어 기적을 베풀어 주신 것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내 자신의 육신에 대해서는 나는 하나님을 제한합니다. 그분이 나에게 하나님이 되시도록 하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스스로를 위해 기도도 하기 전에 약을 털어 넣든지 의사에게 달려갑니다. 의사에게 가는 것이 틀렸다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때로 다음과 같은 표현에 들어맞는 사람인 것입니다. “여호와께 구하지 아니하고 의원들에게 구하였더라”(역대하 16:12).

당신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하나님께 중국이나 쿠바의 장벽을 무너뜨려 달라고 기도하지만 당신 자신의 가족의 구원문제에 대해서는 한 방울의 믿음도 없습니까? 당신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이 일을 하기 원치 않으실 게 틀림없어. 내 가족 케이스는 너무 심각해. 이 일에 대해 하나님은 내 기도를 듣지 않으시는 것 같아.”

이렇게 생각하는 게 사실이라면, 당신은 그분을 하나님으로 여기지 않는 것입니다. 당신은 그분의 방식에 대해 무지합니다. 하나님의 소망은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에베소서 3:20)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데이빗, 네가 내손을 묶어버렸다. 수갑을 채워버렸다. 내가 행할 것을 네가 진정으로 믿지 않는데 어떻게 너를 고칠 수 있겠느냐? 네 의심이 내가 네게 하나님 되는 것을 방해하고 있다. 나는 네가 받을 수 있는 것보다 기꺼이 더욱 주고자 하는 것을 알지 않는 한 너는 나를 모르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끊임없이 불평했습니다. “하나님이 하실 수 있을까? 그렇지, 우리를 위해 홍해에 길을 내 주셨지. 그렇지만 떡을 주실 수 있을까?” 하나님은 그들에게 떡을 주셨습니다. 실제로 광야에서 그들에게 식탁을 베풀어주셨습니다. “하지만 물을 주실 수 있을까?” 그들은 물었습니다. 하나님은 반석에서 물을 내어주셨습니다. “그러나 고기를 주실 수 있을까?” 하나님은 하늘로부터 고기를 내려주셨습니다. “그렇지만 우리의 대적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을까?” 번번이 하나님은 모든 분야에서 공급하시고 구원하셨습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하나님이 이것을 하실 수 있을까? 하나님이 저것을 하실 수 있을까?”하며 40년을 보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라고 말해야만 합니다. 그분은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구하고 하나님이 하실 것이라고 믿는 모든 것을 하나님은 하실 수 있고 하실 것입니다!

2010년 10월 26일 화요일

하나님을 아는 것은 예수님을 아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그리스도를 알게 되기 전까지는 하나님을 온전히 알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요한복음 14:9). 우리는 예수님을 가르치시는 분으로 볼 것이 아니라 성령이 우리에게 계시하시는 대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분을 알고 보기 원하시는 대로 보아야만 합니다.

내 서재에는 예수님에 대해 훌륭한 분들이 쓰신 책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분들 중에는 하나님이 우리가 그분을 보기 원하시는 대로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많다고 나는 믿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비전과 그리스도의 증언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알려지기 원하시는 대로 하나님을 알게 될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이 그분의 아들에 대해 우리가 이렇게 알기 원하신다고 믿습니다.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야고보서 1:17).

예수님은 선물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모든 자원들을 예수님 안에 포장하셨습니다. 그리고“독생자를 주셨”습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아버지로부터 오신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한 선물입니다. 당신은 예수님을 당신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온전한 선물로 보십니까? 당신은 그분을 당신이 기쁘게, 승리하며, 의롭게, 평강과 안식으로 충만하게 살기위해 필요한 전부로 여기십니까?

구약에 보면 하나님은 광야에서 이스라엘에게 수많은 좋은 선물들을 주셨습니다. 사막의 태양을 가려주는 구름. 밤에 그들을 안위하고 인도해주는 불. 반석에서 솟구친 물. 쓴물을 고친 나뭇가지. 불뱀에 물린 사람들을 치료하는 놋뱀. 그렇지만 이 모든 좋은 것들은 단지 그림자에 불과했습니다.

물이 솟구친 반석은 누구였습니까? 불은 누구였습니까? 만나는? 놋뱀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위해 베푸신 모든 것은 예수님을 통해서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이 모든 선물들이었습니다. “형제들아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에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고린도전서 10:1-4).

오늘날 우리는 그림자를 훨씬 능가하는 것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실체-그리스도 자신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우리 안에 거하십니다.

2010년 10월 25일 월요일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분의 이름을 알라고 가르치기 원하십니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아는 사람들은 다른 모든 음성들보다 그분의 음성을 알아듣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분은 자신이 당신에게 말씀하기 원하시고 당신이 결코 보거나 들은 적이 없는 것들을 말해주기 원하신다는 것을 당신이 절대적으로 확신하기를 원하십니다.

최근 주님은 내가 아직도 내 영혼에 말씀하시는 그분의 음성을 듣는 것을 주저한다는 것을 나에게 보여주셨습니다. 나는 그분이 말씀하시고 그분의 양은 주인의 음성을 알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나는 그분의 음성을 듣는 내 능력을 의심했습니다. 내가 들은 음성을 검사하는데 온 시간을 들이다가 그것이 내게 너무 크거나 신비스러우면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이 이러실 리 없지. 하물며 마귀도 말할 수 있지 않나. 육이 말하기도 하고 거짓의 영도 말하지. 수많은 음성이 우리에게 언제나 몰려오잖아. 어떻게 내가 하나님의 음성을 알 수 있겠나?”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사람들에게는 세 가지가 요구된다고 믿습니다.:

1. 하나님이 당신에게 말씀하기 원하신다는 흔들림 없는 확신. 당신은 하나님이 당신에게 말씀하고자 고대하신다는 것에 온전히 설복되고 확신해야만 합니다. 진실로, 그분은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시고 당신이 그분의 음성을 알아서 그분의 뜻을 행할 수 있기 원하십니다. 하나님이 당신에게 말씀하시는 것은 결코 성경의 범주를 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의 음성을 알아듣기 위해서 박사학위가 필요하지도 없습니다. 당신이 필요한 것은 “나는 하나님이 나에게 말씀하기 원하신다는 것을 믿는다,”는 마음이 전부입니다.

2. 양질의 시간과 고요함. 당신은 기꺼이 하나님과 따로 떨어져 골방에 있고 다른 모든 음성을 잠잠케 해야 합니다. 사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온 종일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그분이 내 삶속에다 무엇인가 세우려고 하시면 내가 그분의 음성 외에 다른 모든 음성들을 차단해 버린 후에야 그분의 음성이 다가오십니다.

3. 믿음으로 구하기. 우리가 진정으로 그분이 자신의 마음을 우리에게 전하실 수 있고 그분의 완전한 뜻을 우리에게 이해시킬 수 있다는 것을 믿기 전에는 그 어떤 것도(그분의 음성을 듣는 것을 포함해서) 하나님으로부터 얻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 중에 아버지 된 자로서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알을 달라 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누가복은 11:11-12). 다시 말해서 당신이 천부께 명확한 지침, 경건한 고침, 특별한 필요와 같은 말씀을 요청했을 때 그분이 대신 마귀를 보내 당신을 속이도록 하실 것이라고 일시적이라도 생각합니까?

어떤 아들이 자기 아버지에게 지침과 조언을 구하느라고 매일 밤 전화했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런데 어느 날 아버지가 장난삼아 자신의 목소리를 흉내 내는 사람을 고용해서 전화를 받도록 했습니다. 아들이 전화했을 때 이 가짜 아버지가 얼토당토않은 조언을 하고 허위 상담을 해주었습니다. 이 아들은 갑자기 온통 혼란스럽고 마음이 상했습니다. 왜냐하면 지금 듣는 것은 모두 이제껏 자기 아버지에게 배웠던 것과 상충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이 어떤 아버지라고 당신은 생각하십니까? 그렇습니다. 잔인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바로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분의 음성을 들려주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칭하는 자의 음성을 들려주는 분이라고 하나님을 비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괴롭히는 분이 아니십니다. 마귀가 당신을 속이도록 허락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실 때 평강이 뒤따르고 사탄은 그 평강을 위조할 수 없습니다. 당신이 고요와 안식의 자리에 있다면 하나님이 당신에게 말씀 하실 수 있다는 것을 확신하십시오. 그러면 결코 변함없는 확신을 갖게 됩니다. 당신은 하나님께 천 번이라도 되돌아 갈 수 있고 동일한 말씀을 받을 것입니다-왜냐하면 그것이 신뢰이기 때문입니다!

2010년 10월 22일 금요일

지연되는 기도 응답

우리들 대부분은 다윗처럼 기도합니다. “내가 부르짖는 날에 속히 내게 응답하소서”(시102:2). “내가 환난 중에 있사오니 속히 내게 응답하소서”(시69:17). 히브리어로 속히는 “지금 당장, 서둘러, 내가 당신을 부르는 바로 그 시간에, 해주세요!”를 의미합니다. 다윗은 “주님, 나는 당신을 신뢰합니다. 하지만 서둘러 주십시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서두르지 않으십니다. 우리의 명령에 즉각 움직이지 않으십니다. 사실은, 때로 당신은 그분이 응답을 하시기는 하는 걸까 궁금해질지 모릅니다. 당신은 부르짖고, 통곡하고, 금식하고 소망하나 며칠이 지나고, 몇 주, 몇 달, 심지어 몇 년이 지나도 하나님이 당신의 기도를 듣고 계시다는 표징을 전혀 받지 못합니다. 먼저 당신은 스스로에게 질문합니다. “뭔가가 내 기도를 막고 있음에 틀림없다.” 당신은 갈피를 못 잡게 되고 시간이 지나며 하나님에 대한 당신의 태도는 이렇게 됩니다. “주님, 이 기도의 응답을 받기 위해 내가 무엇을 해야만 합니까? 당신의 말씀에서 당신은 나에게 응답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고 나는 믿음으로 기도했습니다. 얼마나 더 많은 눈물을 흘려야만 합니까?”

왜 하나님은 진실한 기도에 대한 응답을 지연하실까요? 그분이 능력이 부족해서가 절대로 아닙니다. 그리고 그분은 우리가 그분으로부터 받기를 무엇보다 원하십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그 답은 다음 구절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여”(눅18:1).

헬라어로 낙심하다, 또는 faint in KJV, 는 “믿음이 느슨해지다, 믿음이 약해지거나 지쳐버리다, 고투하기를 포기하다, 완성되기를 더 이상 기다리지 않다”라는 의미입니다. 갈라디아서 6:9은 말합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주님은 그분께 나아오기를 늦추지 않고 지치지 않고 기도하는 백성을 찾고 계십니다. 이 사람들은 그분의 일이 완성되기 전에는 포기하지 않으며 주님을 기다릴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이 응답하실 때 그들이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실 것입니다.

2010년 10월 21일 목요일

징계하는 사랑

하나님이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분은 당신은 정결케 하는 일을 하실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회개하고 그분께 돌아오는 사람들을 사랑하는 징계입니다. 당신은 과거와 현재의 죄들 때문에 당신 영혼 안에 하나님의 화살을 느낄지 모릅니다. 하지만 당신이 회개하는 심령을 가지고 잘못으로부터 돌이키기 원한다면 그분의 징계하시는 사랑을 요청할 수 있습니다. 당신은 고침을 받게 되나 그분의 크신 자비와 동정심으로 고쳐주실 것입니다. 당신은 이방인들이 그렇듯이 그분의 진노를 느끼지 않고 도리어 그분이 사랑스런 손길로 치시는 훈련의 막대기를 느끼게 될 것입니다.

아마도 당신의 고통은 잘못내린 결정에서 온 것인지 모릅니다. 얼마나 많은 여자들이 하나님이 결혼하지 말라고 경고하신 사람과 결혼하였기 때문에 고통당하고 있습니까? 얼마나 많은 자녀들이 부모를 한계상황으로 몰아넣으며 마음 아프게 합니까? 하지만 많은 경우 부모 자신들의 과거의 죄와 태만과 타협으로 인해 생긴 일입니다.

당신이 가장 밑바닥에 도달했다는 것을 알 때, 그 때가 깨진 가운데 회개와 믿음 안에서 주님을 구할 때입니다. 성령의 힘을 새롭게 주입 받을 때입니다. 당신 안에 영적 힘이 흘러넘치도록 새로워지고 회복되어야 할 때입니다.

아시다시피, 당신이 하나님께 부르짖을 때, 그분은 당신에게 그분의 힘을 부어주십니다. “내가 간구하는 날에 주께서 응답하시고 내 영혼에 힘을 주어 나를 강하게 하셨나이다...내가 환난 중에 다닐지라도 주께서 나를 살아나게 하시고 주의 손을 펴사 내 원수들의 분노를 막으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구원하시리이다 여호와께서 나를 위하여 보상해 주시리이다 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이 영원하오니”(시138:3, 7-8).

크리스천들이 가장 받아들이기 힘든 것 중 하나가 의인이 고통당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시대까지 유대인들은 번영과 건강을 경건한 것과 연관 지었습니다. 당신이 부유하고 건강하거나 또는 다른 면으로 복을 받았으면 그것은 하나님이 당신을 기뻐하시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라고 믿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제자들이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마19:24)는 그분의 말씀을 이해하기 어려웠던 이유입니다. 제자들은 물었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까?”

오늘날도 마찬가지로 만약 당신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에 있으면 하나님이 절대로 당신이 고통당하게 하시지 않고 하나님을 부르기만 하면 그분이 달려와 즉시 모든 것을 해결해 주실 것이라는 잘못된 교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복음이 아닙니다! 히브리서 11장에 열거된 믿음의 영웅들은 모두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동행하였으며 돌에 맞고, 조롱당하고, 고문당하고 참혹한 죽음을 당했습니다(36-38절). 하나님과 친밀하게 동행했던 바울 자신도 파선을 겪고, 돌에 맞고, 채찍질당하고, 죽도록 내버림을 받고, 강도당하고, 투옥당하고 핍박받았습니다. 그는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고통을 받았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것들이 모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그의 믿음을 시험받고, 정화되고, 입증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시험과 시련을 통하여 우리 마음가운데 뭔가를 심기 원하십니다. 그분은 우리가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기를 원하십니다. “주 예수님, 당신은 나의 보호자이시고 나는 당신이 내 삶에 일어나는 일들을 통치하신다고 믿습니다. 만일 무슨 일이 일어나면 그것은 당신이 허락하셨기 때문이며 그렇게 하시는 당신의 목적을 신뢰합니다. 그 일로 내가 어떤 교훈을 받기 원하시는지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내가 의안에서 행하고 내 마음속에 당신의 기쁨이 있다면 내가 살든지 죽든지 당신께 영광이 될 것입니다. 당신이 어떤 영광을 예비해 놓으셨을 수도 있고 내 유한한 마음이 이해할 수 없는 영원한 목적이 있을 수도 있다고 믿습니다. 어떻든지, 나는 ‘예수님, 살든지 죽든지 나는 당신 것입니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2010년 10월 20일 수요일

하나님은 내가 들으리라 기대하지 않았던 것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어느 날 밤 기도 모임에서 하나님은 우리 교회에 대해 내가 들으리라 기대하지 않았던 것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주님이 제게 속삭이셨습니다. “이 교회는 충격 요법이 필요하다. 너무 많은 사람이 만족스러워 자기만족에 빠져있다. 너는 온 땅을 휩쓸고 있는 거짓 교리의 모든 풍파로부터 안전하고 위험을 느끼지 않고 있지만 앞으로 다가오는 것에 대해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사랑하는 여러분, 당신 안에 작동하고 있는 성령의 증언을 소유하라는 메시지는 부탁이 아니라 죽고 사는 문제입니다. 만약 이 말세에 당신이 성령의 증언을 갖고 있지 않다면, 당신은 끝까지 버티지 못할 것입니다. 다가오는 적그리스도의 영에게 항복하고 말 것입니다!

당신은 매일, 당신의 직업에, 직장에서, 학교에서, 성령의 증언이 필요합니다. 적그리스도의 체제로 갑자기 흡수되어버리지 않도록 정치가와 지도자를 올바르게 판단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등잔에 기름이 떨어져 버린 어리석은 열처녀에 대해서 예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그들은 성령의 공급이 있었으나 궁극적인 순간에 그분의 증언이 없었습니다.

어리석은 열처녀 처럼 되지 마십시오! 당신의 교회나 목사님이 당신의 영혼을 지켜줄 것이라고 믿으면서 당신의 기름이 떨어지고 있다면, 회개하십시오! 자신을 낮추고 당신의 마음을 탐색해 보십시오! 당신의 영혼에서 모든 분노와 원한을 없애달라고 하나님께 부르짖으십시오. 당신의 죄를 고백하고 내버리십시오. 그리고 다시 한 번 모든 것에 하나님을 의지하십시오!

성령의 증언을 소유할 수 있도록 당신 마음 안에 하나님의 평강을 가지십시오. 그리고 아버지께 더욱 풍성한 성령의 부으심을 구하십시오. 모든 것에 그분이 당신의 증인이 되시고 안내자가 되시기를 청하십시오!

우리는 예수님과 끝까지 함께 가는 것의 대가를 치르게 되겠지만 또한 상급도 받을 것입니다. 그것은 단순히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복입니다. 다른 상급도 많이 있지만(마19:29참조), 이것이 우리가 필요한 전부이기 때문에 이를 언급했습니다.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투옥되었을 때, 전 종교 체제가 그를 죽이고자 했습니다. 그들은 그가 성소를 더럽히고 거짓 교리를 전파한다고 고발했습니다. 그의 생명이 위험 했고 군인들 조차 “바울이 그들에게 찢겨질 까”(행 23:10) 두려워했습니다. 그래서 그를 무리 가운데서 빼앗아 영내에 가두었습니다. 다음 날 밤 주님이 직접 바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이 들려주신 말씀은 얼마나 대단하던지요. “담대하라! 더 많은 어려움이 닥쳐오고 있다!”

이러한 하나님의 사람들의 삶에서 그리스도를 따르는 대가가 명백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우리의 주인과 같아질 것이라면 우리는 또한 이 대가도 받아들여야만 합니다. 예수님이 모든 상황에서 우리와 함께 계시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에 견디는 것이 기쁨이 됩니다. 그리고 주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는 것을 알 때 우리는 무슨 일이든지 어떤 사람이든지 직면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대가를 계산해보고 모든 것에서 당신의 상급은 예수 그리스도의 귀하신 임재라는 것을 알고 계십시오.

2010년 10월 19일 화요일

성령의 증언

“증언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요일5:6).

성령의 내재적 증언이 나로 하여금 조용히 있지 못하게 하시는 때가 있습니다. 내안에서 성령이 일어나시기에 나는 말해야만 합니다.

성령은 무엇이 진리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드러내시려고 우리 안에 거하십니다. 그분은 마음 깊숙한 곳에서 고요하고 세미한 음성으로 말씀하십니다. 수많은 우리의 거룩한 조상들은 믿는 자들 안의 이 성령의 사역을 믿었습니다. 그들은 “증언을 갖고 있음”에 대해 많이 설교했습니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이 진리에 대해 설교하는 것을 듣지 못합니다. 사실은, 오늘날 대부분의 교회에서 성령의 증언은 실제적으로 들어볼 수 없습니다!

믿는 자들은 과거 어느 때 보다 성령의 증언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재림이 가까워올수록 더욱 더 필요합니다! 사탄은 할 수 만 있으면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조차 속이려고 뻔뻔스럽게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여 왔습니다. 거짓 교리, 거짓 교사, 거짓 복음들과 같은 그의 사악한 유혹은 더욱 극성스러울 것입니다.

성령의 내재적 증언은 “평강의 법칙”에 의해 작동합니다. 하나님의 평강은 당신이 가질 수 있는 가장 위대한 것입니다. 당신의 평강이 동요될 때 성령이 당신에게 말씀하시는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영속에 동요가 있을 때 - 심중 깊이 흔들림과 소란이 있을 때 - 하나님은 무언가 거짓된 것이 있다고 당신에게 말씀하시는 중입니다. 당신은 그분이 당황하심, 즉 그분의 비통과 분노를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골3:15). 감춰진, 회개하지 않은 죄가 믿는 자에게서 소중한 평강을 앗아갈 것입니다! 그의 마음이 죄의식, 비난과 두려움으로 갈가리 찢길 것입니다. 그러면 성령은 단 두마디 말씀을 그에게 하실 것입니다. “회개하라! 도망쳐라!”

그렇습니다. 성령은 당신을 교정하기 위해 당신에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죄, 의와 심판에 대해 당신과 논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에게 지시를 내리실 때, 즉 고요하고 세미한 음성으로 무엇을 하고 어디로 가라고 말씀하실 때는 성결하지 않은 그릇 안에서 역사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당신이 죄를 고집하면 - 죄를 고백하지 않고 처리하지 않으면 - 당신의 마음은 줄기차게 거짓말의 물줄기를 당신에게 대놓을 것입니다. 당신의 죄 가운데에서도 편안하게 만들어 주는 가르침들을 듣게 될 것입니다. 당신은 “내 문제들은 그렇게 심각한 것이 아닐 것이다. 마음에 찔림을 받지 않는다,”라고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당신은 완전히 길을 잃게끔 될 것입니다!

이사야는 올바른 하나님의 조언을 갈망한다고 주장하며 다니던 사람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그들은 “그는 자기의 일을 속속히 이루어 우리에게 보게 할 것이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는 자기의 계획을 속히 이루어 우리가 알게 할 것이라”(사5:19)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들은 그들 마음속에 기만이 있어 결국 그들의 모든 조언은 비뚤어졌습니다. 죄가 그들의 판단이 왜곡되도록 만들었습니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악을 분별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거룩하고 순결한 것을 그들은 불의하다고 불렀습니다. 그들에 대해 이사야가 말했습니다. “악을 선하다 하며 선을 악하다 하며 흑암으로 광명을 삼으며 광명으로 흑암을 삼으며 쓴 것으로 단 것을 삼으며 단 것으로 쓴 것을 삼는 자들은 화있을진저”(사5:20).

2010년 10월 18일 월요일

아버지 사랑 안에 안식 하십시오

당신의 친구나 사랑하는 사람이 어느 날 갑작스레 “나한테 화났어? 내가 뭘 잘못했니?”하고 물은 적이 있습니까?

당신은 아마 깊은 생각에 잠겨 조용히 있었을지 모릅니다. 그래서 “아니. 나 화나지 않았어. 네가 나한테 잘못한 것 없어. 나는 지금 그냥 조용히 있었어,”라고 대답합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계속 추궁합니다. “내가 무슨 말을 잘못했어?”

“아니, 네가 잘 못 말한 것 없어. 다 괜찮아.”

마침내 그 사람을 납득시키기 위해 당신을 그를 포옹해야 합니다. “자, 나는 너를 사랑해. 나는 화나지 않았어. 그런데 네가 계속 이러면 나를 화나게 만들고 말거야!”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도 이처럼 우리 하늘 아버지를 대합니다! 하루를 마치고 나서 우리는 자신의 은밀한 골방으로 들어가 이렇게 말합니다. “자, 한 번 생각해보자, 오늘 어떻게 예수님을 슬프게 해드렸나? 오늘 무엇을 잘못 했지? 무엇을 잊어버리고 안했지? 나는 정말 엉망진창이야. 주님이 어떻게 날 사랑할 수 있는지 몰라. 주님, 한 번 더 용서해 주세요. 언젠가 잘 순종할 거예요. 그때에는 주님이 저를 사랑하시기가 쉬울 거예요.” 하지만 하나님은 당신을 품에 안으시려고 언제나 그곳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분은 당신에게 자신이 얼마나 당신을 사랑하는지 보여주기 원하시고 당신이 그분의 사랑 가운데 편히 누워 쉬기를 원하십니다!

탕자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 그의 아버지의 집으로 다시 맞아들여졌습니다. 그는 새 옷을 받고 그의 아버지의 식탁에서 먹으며 완전히 용서받았습니다. 이 아들이 한 가지 알았던 점은 그의 아버지 집에서 그가 안전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아버지가 그를 참아주고, 같이 일하고 사랑할 것을 알았습니다. 우리에 대해서 우리 하늘 아버지도 이와 같으십니다.

우리가 우리 아버지로부터 얼마나 멀리 떨어져 길을 헤매든지 우리에게는 돌아갈 길이 늘 열려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엡1:6)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어야만 합니다.

그분은 자신들에게 열려있는 길을 받아들이고 그분의 사랑으로 돌아오는 모든 사람들을 품에 안기위해 팔을 벌리고 기다리십니다.

2010년 10월 15일 금요일

나는 너무 적은 것에 만족함으로 하나님을 제한 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에게 주시고 싶은 것이 너무 많습니다. 그분의 갈망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말3:10)는 것입니다. 그분은 꽉 들어찬 창고 안에 서서 말씀합니다. “나는 주고, 사랑하는 하나님이다. 그러나 나로부터 받을 사람이 너무 적다. 그들은 내가 그들의 하나님이 되도록 하지 않는다!”

물론 우리는 그분이 이미 행하시고, 주신 모든 것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많다고 생각하는 것에 만족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많은 크리스천들이 교회에 앉아 하나님의 임재로 복을 받는 것에 만족 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만족한 스폰지들”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모든 것을 흡수하지만 그분이 섬김을 위해 그들에게 기름붓기 원하실 때 그들의 삶에서 하나님을 제한합니다.

제자들이 그리스도가 베푸신 기적들에 놀랐을 때, 예수님은 대답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너희를 위해 앞으로 이보다 더 큰일을 준비하시고 계시다!” 우리들 대부분은 제자들과 같습니다. 한 가지 기적을 보면 남은 생애 동안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으로 만족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알았고 그분이 우리에게 하나님이 되시도록 했다면 우리는 훨씬 더 많은 것을 구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지방, 주, 연방정부 기관들의 지도자들을 하나님이 실각시키실 것을 믿으며 믿음으로 천상에 이르렀을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말씀하신대로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추락시켰을 것입니다!
- 우리는 예수님의 복음으로 우리 도시가 흠뻑 적셔지도록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시리라 믿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우리를 겨냥한 모든 무기에 대항하여 일어섰을 것이며 우리 가족들과 교회들안에 있는 사탄의 견고한 진들을 무너뜨렸을 것입니다.

우리의 비전은 무한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분의 왕국을 위하여 이보다 더 큰일들에 관하여 하나님을 믿었을 것입니다.

2010년 10월 14일 목요일

그분이 알려지기 원하시는 대로 하나님 알기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요14:9). 우리는 예수님을 사람이 가르치는 대로 볼 것이 아니라 성령이 그분을 우리에게 계시하시는 대로, 즉 하나님이 우리로 하여금 그분을 알고 보기 원하시는 대로 보아야만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시각과 그리스도의 증언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그분이 알려지기 원하시는 대로 하나님을 알게 될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이 우리가 그분의 아들을 다음과 같이 보기 원하신다고 믿습니다.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약1:17).

예수님은 선물 이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모든 자원들을 예수님 안에 포장하셨습니다. “독생자를 주셨으니....”(요3:16). 그리스도는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온,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선하고 온전한 선물입니다. 당신은 예수님을 당신에게 주신 하나님의 온전한 선물로 보십니까? 당신은 그분을 당신이 기쁘게, 승리하며 의롭게 평강과 안식으로 충만하게 사는데 필요한 전부로 보십니까?

옛적, 당신이 창조되기 전에 하나님은 당신의 상처와 필요가 어떠할지 아셨습니다. 그분은 당신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당신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앞서 아셨습니다. 그분은 자신의 정답을 요약해서 당신에게 규칙서를 보내거나 “답하는 사람들”의 무리를 보내지 않으셨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그분은 우리의 모든 위기와 필요에 대해 우리 모두에게 한 가지 해결책을 주셨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에 대한 한 사람, 한 길, 한 정답,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네가 내일을 위해 살기 원치 않는다! 너는 다만 뒤돌아보며 오늘이 너의 가장 최고의 날일 수 있었음을 보게 될 것이다. 예수님은 지금 이 순간 그분 자신의 모습 보다 너에게 더 나아지거나 더 강해질 수 없다. 오늘 내가 너의 하나님이 되도록 해주지 않겠니?”

2010년 10월 13일 수요일

그리스도를 통한 승리

하나님은 그분의 영광과 그 아들의 귀하심으로 우리를 다루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영원한 축복을 가로막을 수 있는 모든 것들은 하늘의 영광을 보장하고 원수의 모든 탄원을 이기는 답변을 제공함으로써 처리되었습니다.

허물이 문제입니까? 그분은 우리의 모든 허물들을 용서하여 주셨습니다.
죄가 문제입니까? 그분은 십자가에서 죄를 정죄하시고 제하여 버리셨습니다.
죄책감이 문제입니까? 그것은 십자가의 피로 지워졌습니다.
죽음이 문제입니까? 그분은 사망의 쏘는 것을 가져가시고 실제로 우리 속성의 일부로 만드셨습니다.
사탄이 문제입니까? 그분은 사탄의 모든 능력을 무효화 시키고 그를 멸하셨습니다.
이 세상이 문제입니까? 그분은 우리를 세상에서 구원하시고 세상과 우리가 연결된 모든 고리를 끊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크리스천 독자여러분, 우리가 성경의 가르침을 받는다면, 하나님을 그분의 말씀대로 받아들인다면, 그분이 말씀하신 것을 믿는다면 영원한 축복은 우리와 함께 할 것입니다. 덧붙여, 만일 그렇게 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우리의 죄 가운데 있고, 죄의 권세 하에, 사탄의 손아귀에서, 사망을 면할 수 없고, 악하고 그리스도가 없고 하나님을 믿지 않는 세상의 일부로서 경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진노 즉, 영원한 불의 보복에 노출될 것입니다.

복되신 성령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의 눈을 열어주셔서 그들의 합당한 위치, 즉, 그들을 위해 돌아가신 그리스도와 연합한 온전하고 영원한 구원과 또한 그분 안에서 그들이 죽었으므로 모든 원수들의 권세에서 벗어난 것을 보게 하여 주시기를!

데이빗 윌커슨의 개인 묵상에 사용된 J. B. Stoney의 글에서 발췌함.

2010년 10월 12일 화요일

그리스도를 통해 받으심

누구든지 안정된 평안을 누리고저 한다면 자기 자신에 몰두하고 있는 한 그 자신으로부터 떨어져야만 하고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하며 일 혹의 의심도 없이 하나님의 순전하고 귀하며 영원한 기록에 의지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결코 변하지 않습니다. 나는 변합니다. 나의 체격, 나의 감정, 나의 경험, 나의 환경이 지속적으로 변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히 동일합니다.

그리스도가 하나님 앞에서 신자의 위치를 정하는 유일한 것이라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사람에게 가장 위대하고 필수적인 요점입니다. 이것은 막대한 능력과 자유 그리고 축복을 가져옵니다. “주께서 그러하심과 같이 우리도 이 세상에서 그러하니라”(요한일서 4:17). 이것은 완벽히 경이로운 것입니다!

이것에 대해 숙고해 봅시다. 초라하고 불쌍한 죄의 노예, 사탄의 노예, 세상의 신봉자, 영원한 지옥에 노출된 그러한 사람이 주권적 은혜로 취해져서 사탄의 손아귀, 죄의 지배, 현세의 악의 권력으로부터 완벽하게 구원받고, 용서받고, 씻음 받고, 의롭게 되며 하나님께로 가까이 인도되고 그리스도안에서 받아들여지며 그분과 완벽하게 그리고 영원히 동일시되어 성령께서 “그리스도가 그러하심과 같이 그도 이 세상에서 그러하니라!”라고 말씀하실 수 있게 되는 것을 생각해 봅시다.

이 모든 것은 사실이라고 믿기에는 너무 좋아 보입니다. 진정으로 우리가 획득하기에는 너무나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은혜가 충만하신 하나님을 송축하고 하나님의 그리스도를 송축하십시오. 그분이 주시지 못할 정도로 좋은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처럼 주십니다. 우리의 하찮음과 사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분은 하나님이실 것입니다. 그분은 자신에게 합당하고 자신의 사랑하는 아들에게 합당한 방식으로 행하실 것입니다.

데이빗 윌커슨의 개인 묵상에 사용된 J. B. Stoney의 글에서 발췌함.

2010년 10월 11일 월요일

하나님의 사랑의 깊이

바울이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말했습니다. 그것은 모든 지식을 초월합니다. 광대하며 넓고 높으며 깊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사랑의 깊이에 초점을 맞추고 싶습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그 너비와 깊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에베소서 3:17-20).

최근, 나는 믿음에서 퇴보하였다가 첫사랑으로 돌아오는 크리스천들로부터 이메일을 받고 있습니다. 어떤 분은 이렇게 썼습니다. “나는 죄 사함을 받았고 주님을 사랑했습니다. 하지만 오랫동안 무서운 죄에 빠져 살았습니다. 이제 돌아왔지만 내 죄를 용서 받았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내가 과거에 지은 말할 수 없이 무서운 죄를 하나님이 용서하실 수 없을 것 같아 두렵습니다. 나에게는 평안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느낄 수 없습니다.” 또 다른 분은 이렇게 썼습니다. “나는 너무도 엄청난 죄를 지었습니다. 예수님께로 돌아가고 싶지만 하나님이 나를 경멸하신다고 느낍니다. 나는 빛을 거슬러 죄를 지었습니다. 용서받지 못할까봐 두렵습니다. 나는 죄인의 괴수들 중 한 사람입니다.”

믿음에서 퇴보하였던 사람들이 자극을 받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돌아오고 있습니다. 마약과 알코올, 정욕에 빠졌던 것에 진저리나고, 세상에 대해 지쳤습니다. 내 귀에 이렇게 들립니다. “나는 부도덕의 구렁텅이에, 끔직한 죄악에 너무도 깊이 빠졌습니다.” 이것은 마치 하나님이 선을 그어놓으셔서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에 한계가 있고, 일정한 지점에 이르면 “너는 나를 너무도 자주 격발했다. 나의 모든 간청과 경고를 거부했다. 이제 너는 선을 넘어 버렸다. 네 마음은 냉랭하다. 사탄이 네 마음속에 견고한 진을 건축했다”고 말씀하신다고 믿는 것과 같습니다. 나는 많은 믿음의 퇴보자들이 자신들이 죄를 지어 은혜의 때를 놓쳐버렸다고 지나치게 부끄러워하거나 지나치게 확신한다고 믿습니다. 그들은 주님이 사랑과 자비로 자신들의 죄악의 상태 속으로 깊숙이 손을 뻗고 계신 것을 생각하지 못합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명령으로부터 도망침으로 엄청난 죄를 지었습니다. 자신이 불순종함으로 많은 사람들의 피를 그의 손에 묻히게 될 것이었습니다. 큰물고기의 뱃속에, 그의 죄와 반역의 가장 깊은 곳에 하나님이 계셨습니다(요나 2장 참조). 요나는 자신의 죄로 인해 하나님이 자기를 버렸다고 믿었습니다. “주께서 나를 깊음 속 바다 가운데에 던지셨으므로....내가 주의 목전에서 쫓겨났을지라도.....깊음이 나를 에워싸고......내가.....내려갔사오며.....내 영혼이 내속에서 피곤할 때”(요나 2:3-7). 그가 바닥으로, 가장 낮은 곳으로 깊이 내려갔을 때 새로운 만지심, 즉 특별한 소명을 받았습니다. 그는 용서받았고 구원받았습니다. 이것으로써 성령은 우리 죄의 심연 속에서 역사하신다는 것이 증명됩니다. 어느 누구도 지나치게 죄를 지었다고 구원받지 못할 사람이 없습니다. 아무도 쫓아내지 않습니다. 성령이 여러 사람들을 다루시며 말씀하십니다. “회개하라. 너를 돌이키기 위해 너의 최악의 상황가운데 내가 있다.”

아무것도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놓을 수 없습니다. 그 무엇도!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그 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로마서 8:35, 37-39).

예수님의 보혈은 죄의 깊숙한 곳까지 이르러 자유와 용서, 자비, 그리고 하나님과의 화목을 제공해 주십니다. 당신이 죄에 깊이 빠져 있다 하더라도 사랑과 용서는 더 깊숙이 뻗칩니다.

참으로 깊은 그분의 사랑의 깊이여!

2010년 10월 8일 금요일

그분의 음성을 알기 위해

하나님을 진정으로 아는 사람들은 다른 모든 것보다 그분의 음성을 알아보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분은 자신이 당신에게 말씀하기를 갈망하신다는 것을 당신이 절대적으로 확신하기를 원하십니다. 당신이 이전에 결코 보지도 듣지도 못한 것들을 말씀해주시기 위해.

나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사람에게 다음 세 가지가 요구된다고 믿습니다:

1. 하나님이 당신에게 말씀하기 원하신다는 흔들림 없는 확신. 당신은 이에 대해 온전히 납득하고 확신해야 합니다. 진실로 그분은 말씀하시는 하나님입니다 그리고 당신이 그분의 뜻을 행하기 위해 그분의 음성을 알아듣기 원하십니다. 하나님이 당신에게 하시는 말씀은 절대로 성경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습니다.
2. 양질의 시간과 고요. 당신은 하나님과 기꺼이 따로 떨어져 있고 다른 목소리들을 잠잠케 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 하나님은 하루 종일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내 삶속에 무언가를 이루기 원하셨을 때 그분의 음성을 제외한 다른 모든 목소리를 폐쇄해야만 그분의 음성이 왔습니다.
3. 믿음으로 구하기. 그분의 온전한 뜻을 우리가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그분이 자신의 마음을 우리에게 전달하실 수 있다는 것을 우리가 온전히 믿지 못한다면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아무것도 (그분의 음성을 듣는 것을 포함해서) 얻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놀리는 분이 아닙니다. 그분은 원수가 당신을 속이도록 허용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실 때, 평강이 따르고 사탄은 그 평강을 위조할 수 없습니다!

“문으로 들어가는 이는 양의 목자라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자기 양을 다 내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 오되 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하는 고로 타인을 따르지 아니하고 도리어 도망하느니라”(요10:2-5).

2010년 10월 7일 목요일

당신이 서있는 장소

출애굽기 33장에서 모세는 알지 못했으나 하나님은 그분의 영광과 성품에 대해 더욱 큰 계시를 그에게 주시려고 했습니다. 이 계시는 우정이나 친밀을 훨씬 초월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고통당하는 모든 그분의 백성이 알기 원하시는 계시입니다.

주님은 모세에게 그분의 영광을 보여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내 모든 선한 것을 네 앞으로 지나가게 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네 앞에 선포하리라”(출33:19). 그리고 말씀하시기를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보라 내 곁에 한 장소가 있으니 너는 그 반석 위에 서라 내 영광이 지나갈 때에 내가 너를 반석 틈에 두고 내가 지나도록 내 손으로 너를 덮었다가”(출33:20-22).

이 구절에서 영광의 히브리어는 “내 자신”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내 자신이 네 가까이 지나가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다른 번역본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반석 틈에 너를 숨기고 내가 지나갈 때 까지 내 능력의 보호함으로 너를 방어해줄 것이다.”

이것이 바로 바울이 우리가 “그리스도안에 감추어져 있다”고 말하는 것의 의미입니다. 우리가 빛을 거슬러 심각하게 죄를 범하여 하나님을 실망시킬 때 우리는 넘어진 상황에 머물러서는 안 될 것입니다. 도리어 반석 틈에 숨겨지기 위해 재빨리 예수님께로 달려가야 할 것입니다. 바울은 기록합니다. “우리 조상들이....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고전10:1,4).

하나님이 그분자신에 대해 모세에게 주신 위대한 계시는 무엇이었습니까? 우리가 마음속으로 성화해야 할 그분에 대한 진리는 무엇입니까? 이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아침까지 준비하고 아침에 시내 산에 올라와...여호와께서 구름 가운데에 강림하사 그와 함께 거기 서서 여호와의 이름을 선포하실새 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선포하시되 여호와라 여호와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 인자를 천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리라 그러나 벌을 면제하지는 아니하고”(출34:1,2, 5-7).

여기 더욱 큰 계시 즉, 하나님이 누구이신지에 대한 온전한 묘사가 있습니다. 주님은 모세에게, “아침에 이 반석으로 올라와라. 너를 지켜줄 소망을 너에게 주겠다. 네가 이전에 전혀 본적이 없는 내 마음을 너에게 보여주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모세가 주님께 간청했던 “영광”이 무엇이었습니까?

영광이 여기 있습니다.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으신 하나님이라 인자를 천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리라 그러나 벌을 면제하지는 아니하”시는 하나님.

그리스도는 그 영광이 온전히 발현된 분이십니다. 진실로 아버지 안에 있는 모든 것이 아들안에 성육신 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 영광을 우리에게 가져오시기 위해 이 땅에 보내심을 받았습니다.

2010년 10월 6일 수요일

감사의 때

이 감사라는 주제가 최근 개인적으로 심히 중압감을 느끼는 가운데 내게 다가왔습니다. 그 당시 우리 교회 건물은 대대적인 공사가 필요했습니다. 교구민들의 문제는 쌓여가고 있었습니다.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이 모종의 시련을 겪고 있는 듯 보였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 모든 것의 부담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나는 내 사무실로 들어가 자리에 앉아 자신에 대해 연민을 느꼈습니다. 하나님께 불평하기 시작했습니다. “주님, 얼마나 오랫동안 나를 이 불 가운데 두실 겁니까? 내가 얼마나 오랫동안 이것들에 대해 기도해야 당신이 일하시겠습니까? 하나님, 언제 저에게 응답하실 건가요?”

갑자기 성령이 내게 임하시고 나는 부끄러워졌습니다. 성령이 내 마음에 대고 속삭였습니다.
“지금 당장 나에게 감사하기 시작해라, 데이빗. 내가 과거에 너에게 해주었던 모든 일에 대해서 그리고 내가 앞으로 하려는 것에 대해 나에게 감사제를 드려라. 내게 감사의 제물을 바쳐라 그러면 갑자기 모든 것이 달리 보일 것이다!”

이 말씀들이 내 영속에 자리 잡았습니다. 그러나 나는 궁금했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감사제‘란 무슨 뜻일까?” 나는 성경에서 이 구절을 찾아보고 내가 발견한 모든 참조 구절에 대해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 “감사제를 드리며 노래하여 그가 행하신 일을 선포할지로다”(시107:22).
- “내가 주께 감사제를 드리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리이다”(시116:17).
- “우리가 감사함으로 그 앞에 나아가며 시를 지어 즐거이 그를 노래하자(시95:2).
-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시100:4).

우리는 우리의 대제사장인 예수님이 이미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자신의 피의 희생 예물을 아버지께 드리신 때에 살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가 우리의 모든 죄를 씻으시고 결코 우리의 죄를 기억하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속죄의 역사가 완성되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시편 100편이 말하는 것처럼 우리는 또한 주님의 궁정에 감사와 찬송으로 들어가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두 마리 “염소”를 가지고 가야 합니다. “너는 말씀을 가지고 여호와께로 돌아와서 아뢰기를 모든 불의를 제거하시고 선한 바를 받으소서 우리가 수송아지를 대신하여 입술의 열매를 주께 드리리이다”(호14:2). 여기서 “수송아지”는 우리의 입술 또는 말들을 상징합니다. 히브리어로 이 구절의 정확한 뜻은 “우리가 어린 수송아지, 즉 우리의 입술을 드리겠습니다,”입니다.

우리의 감사제는 우리가 가져오는 염소 두 마리, 즉 우리의 입술 또는 목소리로 드려질 것입니다. 하나님은 “내 현존 앞에 네 감사의 말들을 가져오라. 나에게 너의 찬양을 말하고 노래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우 리는 속죄를 위해 하나님께 더 이상 피의 희생이나 금과 은의 제물을 가져오지 않아야 합니다. 대신 우리는 우리의 입술로부터 나오는 찬양과 감사의 희생을 그분께 가져와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송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언하는 입술의 열매니라”(히13:15). “입술의 열매”가 깊은 사의와 감사입니다.

2010년 10월 5일 화요일

맞는 노래 - 틀린 편

이스라엘의 자녀들이 시험을 겪고 있을 때 그 와중에서도 진정 깊은 사의와 감사를 표명해야 했을까요? 그들이 포위되어 소망이 없는 가운데 처했을지라도 하나님은 그들이 그러한 반응을 보이기를 정말 기대하셨을까요?

네, 절대적으로 그렇습니다! 그것이 바로 그들의 어려움으로부터 벗어나는 비결이었습니다. 아시다시피, 하나님은 우리가 어려움과 시련에 압도당해 있을 때 우리에게서 무언가를 원하십니다. 그 모든 것 가운데서도 우리가 그분께 감사제를 드리기 원하십니다.

나는 야고보가 다음과 같이 훈계할 때 그가 이 비결을 발견했었다고 믿습니다.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약1:2). 그분은 이렇게 말합니다. “포기하지 마라. 네 마음속에 제단을 쌓고 네 시련 가운데에서 기쁜 감사제를 드려라.”

물론 이스라엘의 자녀들은 주님께 찬양과 감사제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홍해의 틀린 편에서 드렸습니다! 그렇습니다, 백성들은 밤새 즐거워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즐거워하지 않으셨습니다. 승리가 온 이후에는 누구나 감사하여 소리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던지신 질문은, “내가 도움을 보내기 전에- 너희가 아직 전투 중일 때- 너희는 나를 찬양하겠느냐?”였습니다.

만약 이스라엘이 홍해 이편, “시련의 편”에서 즐거워하였다면 마라의 물에서 다시 시험받을 필요가 없었을 것이라고 나는 믿습니다. 그들이 홍해의 시험을 통과했더라면 마라의 물은 쓴맛이 아니고 단맛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목마른 채 지내지 않고 사막 모든 곳에서 물이 샘솟는 것을 보았을 것입니다.

시련의 시험이 진행되는 편에서 맞는 노래를 우리가 부르도록 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 하늘 아버지께 최고의 환희를 가져옵니다.

당신은 지금 가장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노래하십시오! 찬양하십시오! 주님께 이렇게 말씀하십시오. “당신은 하실 수 있습니다. 당신은 전에도 나를 구원하셨고 지금도 나를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나는 기쁨가운데 안식합니다.”

2010년 10월 4일 월요일

감사제

성경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구절의 하나를 베드로전서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사도는 우리 믿음이 시험을 받아야 하는 필요에 대해 말합니다.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벧전1:7).

같은 구절에서 베드로는 그러한 믿음의 시험에 직면하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예상해야 할 지 말해 줍니다.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v.6).

여기에서 쓰인 시험이란 말의 희랍어는 “입증하는, 검사하는, 어려움과 역경으로 시험하는”이라는 뜻입니다. 베드로는 “당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이라면 수많은 심한 시련과 시험을 겪게 될 것이다. 혹독하게 시험 당할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이 구절은 하나님이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고 합니다. “너의 믿음은 나에게 소중하다. 언젠가는 썩어 없어질 이 세상의 부 전체 보다 더욱 중요하다. 원수가 온갖 형태의 악을 너에게 보내는 이 말세에 나는 네가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굳건히 설 수 있기를 바란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네가 모든 캄캄한 날을 지날 때 나는 너를 지키고 복줄 것이다! 네가 할 일은 단지 나에 대한 믿음을 갖는 것이다. 너는 믿음을 통해 내 능력으로 보호를 받을 것이다!”

“너희는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았느니라”(v.5).

베드로는 우리에게 말합니다. “주께서 경건한 자는 시험에서 건지실 줄 아시고......”(벧후2:9). 여기에서 쓰인 시험이란 말의 희랍어는 “역경을 견뎌내는 지 본다,”는 의미입니다.

바울은 기록합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전 10:13).

명백히 하나님은 우리를 시련가운데 두시기 원치 않습니다. 그분이 왜 우리를 시험과 시련가운데 두고 싶어 하시겠습니까? 그분은 그분의 자녀를 시험함으로써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아니라 우리 시험의 결과로 영광을 받으십니다.

시련에서 벗어나는 길은 오직 하나 - 시험을 통과하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당신이 학교에 다닐 때 어떻게 마침내 그곳에서 벗어났습니까? 최종 시험을 통과함으로써 벗어났습니다. 통과하지 못했다면 당신을 다시 교실로 돌려보냅니다.

바로 하나님이 옛 이스라엘을 홍해로 이끌어 내셨을 때가 이런 경우입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을 시험하고 시련을 주고 검증하셨습니다. 그분은 그들이 파멸하기 직전까지 몰아 가셨습니다. 양쪽의 산으로 그들을 포위하고 한쪽은 바다요 다른 쪽에서는 적군이 다가오는 상황으로 그들을 둘러 싸셨습니다.

한데 주님은 어떤 반응을 기대하시면서 이스라엘을 그 상황에 처하게 하셨습니다. 그분의 백성이 자신의 무력함을 인정하기 바라셨습니다. 그분은 그들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듣기 원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어떻게 역병에서 우리를 구원해 내셨는지 기억한다. 우리가 짚도 없이 벽돌을 만들며 쉬지 못하던 시련의 용광로에서 그분이 우리를 어떻게 이끌어 내셨는지 기억한다. 하나님은 그때 우리를 구원하셨고 지금도 또 다시 하실 것이다! 그분의 신실하심 가운데 즐거워하자. 그분은 하나님이시다. 그리고 그분이 이행하실 약속을 우리에게 주셨다. 우리를 대항하여 오는 모든 대적으로부터 그분이 우리를 보호해주실 것이다.”

2010년 10월 1일 금요일

하나님 알기

나는 아주 충격적인 발언을 하고자 하는데 단어 하나하나 모두 진심입니다. 나는 하나님을 정말 알지 못합니다. 나는 그분이 내가 그분을 알기 원하는 방식으로 그분을 알지 못합니다.

이 사실을 내가 어떻게 압니까? 성령께서 나에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분이 나에게 다정하게 속삭이셨습니다. “데이빗, 너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식대로 그분을 정말 알지 못한다. 너는 진정으로 그분이 너에게 하나님이 되시기를 허용하지 않았다.”

구약에서 하나님은 한 백성을 - 다른 백성들보다 더욱 부하지도 않았고 더 똑똑하지도 않은 백성을 - 오직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고자 자신의 백성으로 삼으셨습니다. “너희를 내 백성으로 삼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리니”(출6:7). 다시 말해서 하나님은 “나는 너희가 내 백성이 되도록 가르칠 것이다 그래서 내가 너희의 하나님이 될 수 있도록!”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진정으로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에게 여러 번 반복하여 자신을 계시하셨고 나타내셨습니다. 그분은 천사들을 보내셨습니다. 그들이 들을 수 있게 말씀하셨습니다. 위대한 구원을 이루시며 모든 약속을 이행하셨습니다. 하지만 40년간의 기적과, 표적과 기사 후에 자신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는 “너희들은 나를 모른다. 너희는 내 길을 알지 못한다!”였습니다.

“내가 사십 년 동안 그 세대로 말미암아 근심하여 이르기를 그들은 마음이 미혹된 백성이라 내 길을 알지 못한다 하였도다”(시95:10). 하나님은 “이 모든 와중에서도 너희는 결코 나로 하여금 진정한 하나님으로 삼지 않았다. 40년 동안 너희를 가르치려 하였으나 너희는 여전히 나를 알지 못한다 - 여전히 내가 어떻게 일하는지 알지 못한다!”

하나님은 아직도 그분을 자신들의 하나님을 삼아 진정으로 그분을 알고 그분의 길을 배우기 까지 하려는 백성을 찾고 계십니다!

성경은 이스라엘에 대해 말합니다. “그들이 돌이켜 하나님을 거듭거듭 시험하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노엽게(limited, KJV) 하였도다"(시78:41). 이스라엘은 불신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돌이켰습니다. 마찬가지로 오늘 날 우리도 의심과 불신으로 하나님을 제한하고 있다고 나는 믿습니다.

우리는 삶의 대부분의 영역에서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믿음은 항상 경계와 한계가 있습니다. 적어도 한 작은 영역을 우리는 막아두고 이 부분만큼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떠맡으시리라고 진정으로 믿지 않습니다.

나는 치유 부분에서 가장 하나님을 제한합니다. 나는 많은 사람의 육체적 치유를 위해 기도했었고 하나님이 연이어 기적을 베풀어 주신 것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내 자신의 몸에 대해서는 하나님을 제한합니다! 나는 그분이 나에게 하나님이 되시도록 하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내 자신을 위해 기도하기 전에 약을 복용하거나 의사에게 달려갑니다. 의사에게 가는 것이 틀렸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때로 나는 “여호와께 구하지 아니하고 의원들에게 구하였더라”(대하16:12)라는 표현에 딱 들어맞는 사람입니다.

당신께 묻습니다. 당신은 중국이나 쿠바의 장벽을 허물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지만 당신 자신의 가족의 구원 문제에 대하여는 한 온스의 믿음도 없지 않습니까? 당신은 “하나님은 이것을 행하기 원치 않으시는 게 분명하다. 내 사랑하는 자는 아주 힘든 경우이다. 하나님은 이 문제만큼은 안 들어주시는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당신은 그분을 하나님으로 보고 있지 않습니다! 당신은 그분의 길에 대해 무지합니다! 하나님의 갈망은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엡3:20)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칠십인 장로들은 산 위에서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먹고 마셨습니다. 그럼에도 주님은 그들에 대해, “너희들은 결코 나와 나의 길을 알지 못했다,”고 말씀합니다.

제자들은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육신이 되신 하나님이신 그리스도와 함께 3년을 지냈습니다. 그들은 그분의 가르침을 받았고 밤낮으로 그분과 함께 있었습니다. 하지만 결국에는 그분을 버리고 도망쳤습니다. 그분의 길을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와 찬양을 몇 시간 씩 반복해서 되풀이한다고 해서 그것들을 들으시는 분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기도하고 금식하고 의로운 일을 하면서도 여전히 우리가 그분을 알기를 갈망하고 그분의 길을 이해하는 자리에 이르지 못할 수 도 있습니다. 주님을 진정으로 아는 모든 사람이 그분과 아주 친밀하기는 하지만 우리는 단지 골방에서 기도하는 것만으로 그분의 길을 배우지 않습니다. 그분과 기도가운데 많은 시간을 보내지 않고는 하나님의 길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기도는 모든 필요와 간구를 그분의 손안에 내려놓고 거기에 놓아둠으로써 우리가 하나님으로 하여금 우리의 하나님이 되시도록 하는 질 높은 시간을 포함해야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