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2월 15일 화요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이시는 사랑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에게 주신 가장 위대하고 자비로운 선물 중에 하나는 우리의 죄를 사랑으로 책망해주는 신실한 선지자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또한 목자로서, 사랑하는 영혼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할 때 어조를 아주 조심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진리를 전하면서 영혼들에게 사과를 할 수는 없습니다. 목회자들이 교회에게 그들의 죄를 꾸짖지 못하고, 또는 안 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나단 선지자가 다윗 왕에게 그의 죄를 꾸짖지 아니하였다면 어떤 일이 발생되었을까요?(사무엘하 12장 참고).

생각해보면, 나단선지자는 다윗 왕이 성질을 이기지 못하고 한 행동들을 모두 보았기 때문에 권력이 있는 다윗 왕이 자신을 언제든지 죽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나단 선지자는 다윗에게 이렇게 말했었을 수도 있습니다. “다윗 왕에게 그저 좋은 친구가 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러니 그를 위하여 기도하고 그가 필요할 때 함께 있어주겠습니다. 그리고 성령이 그의 죄를 보게 하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랬더라면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저는 나단 선지자의 책망 없이는 다윗은 최악의 심판, 즉 하나님께서 다윗을 죄에 두시고 성령의 중재를 멈추시는 상황에 놓여졌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수 많은 크리스천들이 그런 상황에 놓여져 있습니다. 육신을 만족시키는 달콤하고 부드러운 말씀만 선택하여 들음으로써, 죄로 인하여 근심하는 마음은커녕 자신의 죄를 보지 못하는 지경에 놓여져 있습니다. 자신의 죄를 깨닫지 못하면 회개를 하지 못하고, 회개가 없으면 마음은 그저 단단해지기만 합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교회에게 이렇게 편지하였습니다. “내가 지금 기뻐함은 너희로 근심하게 한 까닭이 아니요 도리어 너희가 근심함으로 회개함에 이른 까닭이라 너희가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하게 된 것은 우리에게서 아무 해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고린도후서 7:9-10). 고린도교회의 성도들의 죄를 꾸짖는 바울로 인하여, 성도들은 죄로 인하여 근심하기 시작하였고, 근심은 그들로 하여금 회개하게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성도들은 죄를 미워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 위한 소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회개는 바울의 직선적이고 죄를 꾸짖고 책망하는 설교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바울이 고린도교회의 성도들에게 매우 강한 어조로 말한 이유는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그런즉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그 불의 행한 자를 위한 것도 아니요 그 불의 당한 자를 위한 것도 아니요 오직 우리를 위한 너희의 간절함이 하나님 앞에서 너희에게 나타나게 하려 함이로다”(7:12). 다른 말로는 “여러분을 정죄하거나 불안하게 만들려고 한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을 얼마나 사랑하고 생각하는지 알게 하려고 여러분의 죄를 보여드린 것입니다. 성령께서 여러분의 마음을 두드리실 때, 가끔은 아주 강하고 심하게 두드리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보이시는 다정한 사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