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6월 30일 화요일

선하심과 친절하심의 복

성령께서는 우리 안에 그분의 기쁨을 심어 놓으심으로써 우리에게서 모든 두려움 -실족의 두려움, 하나님으로부터 끊어지는 두려움, 성령의 임재를 잃어버리는 두려움- 몰아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가 이길 것이라고 확신시켜 주셨기 때문에 다윗처럼 기뻐하며 나아갈 것입니다.

 

하지만 너무도 적은 수의 크리스천들이 기쁨과 넘치는 즐거움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영혼의 안식이나 그리스도의 임재의 평강에 대해 알지 못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보호의 날개 아래 있다기보다는 자신들이 하나님의 진노의 엄지손가락 아래 있다고 생각하면서 애도하는 사람들처럼 걸어 다닙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하시라도 그들의 등에 회초리를 내려칠 준비가 되어있는 가혹한 십장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아무런 소망 없이 살아 있다기보다는 죽은 같이 불행하게 살아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시기에 우리의 문제는 죄가 아니라 신뢰입니다. 예수님이 갈보리에서 우리의 죄의 문제를 단번에 해결하셨습니다. 그분은 계속해서 우리에게이번에는 진짜 선을 넘고 말았다 되뇌지 않습니다.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에 대한 그분의 태도는 반대입니다. 그분의 영은 우리의 실패 가운데서도 아버지의 인애를 우리에게 상기시키면서 지속적으로 우리에게 구애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우리의 죄에 중점을 두게 우리는 하나님이 가장 원하시는 일에 대한 모든 시각을 잃어버립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힐지니라”( 11:6). 구절이 모든 것을 말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주시는 분이시며 자신의 인애를 우리에게 부어주시기를 간절히 바라시기에 예정보다 훨씬 앞서 우리에게 복을 주십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하늘 아버지께서 자신에 대해 우리가 갖기를 바라는 개념입니다. 그분은 우리가 언제 우리의 실패와 죄에 대해 회개할지 알고 계십니다. 언제 우리가 깊이 뉘우치는 날이 올지 알고 계십니다. 하지만 그분은 때를 기다리실 없습니다. 그래서 개입하셔서 말씀하십니다. “나는 자녀에게 그가 심판받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시켜 주기를 원한다. 왜냐하면 내가 이미 아들의 정결케 하는 피를 통해서 그를 용서했기 때문이다.”

2009년 6월 29일 월요일

주님의 앞서 가시는 사랑

주의 아름다운 복으로 그를 영접하시고(preventest KJV) 순금 관을 그의 머리에 씌우셨나이다”( 21:3). 얼핏 보면 다윗의 싯귀는 조금 어리둥절합니다. “prevent"라는 말은 보통 복과 연관되기 보다는 장애물과 연관됩니다. 이것을 현대어로 번역하면주께서 선한 복으로 다윗을 훼방하시고 됩니다.

 

하지만 “prevent"라는 성경적 단어는 완전히 다른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이는기대하다, 앞서가다, 미리 보고 이행하다, 마감일 전에 빚을 갚다 의미입니다. 한걸음 나아가 거의 모든 경우에 있어서 즐거운 일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이사야가 이런 유형의 즐거움에 대해 잠깐 보여줍니다. 즐거움은 하나님이 필요가 있을 것을 기대하시고 미리 채워주시는 데서 옵니다. “그들이 부르기 전에 내가 응답하겠고 그들이 말을 마치기 전에 내가 들을 것이며”( 65:24).

 

구절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의 사랑에 대한 놀라운 모습을 보여줍니다. 명백하게 그분은 몹시도 우리를 복주기 원하시고 우리 삶속에서 그분의 인애를 이행하실 준비가 되어 있기에 우리의 필요에 대해 우리가 그분께 말할 까지 기다리실 수가 없으십니다. 그래서 그분은 즉시 개입하셔서 우리를 향하신 자비와 은혜와 사랑을 베풀어 주십니다. 그리고 이것이 그분께 최상의 즐거움입니다.

 

다윗이 시편 21편에서 말하는 것을 요약하면, “주님, 당신은 내가 구하기도 전에 복과 인애를 퍼부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내가 요청하려고 생각할 있는 보다 더욱 많은 것을 제시하셨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영적인 영역에서 그에게 베풀어주신 경이로운 일들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다윗에게 자신의 대적에 대한 승리, 기도에 대한 응답, 극복하는 능력과 말할 없는 기쁨을 주었던 일입니다. 다윗이 자신의 마음을 내려놓기 위해 또는 요청을 드리기 위해 기도하러 가기도 전에 하나님은 모든 것을 행하셨습니다. 다윗이 드디어 자신의 마음을 쏟아 놓았을 , 그는 하나님이 이미 그의 대적을 무찌르기 위해 예비해 놓으셨음을 발견했습니다. 다윗이 전쟁터에 가까이 이르기도 전에 그의 승리는 보증되었습니다.

 

다윗은 이러한 약속들을 붙들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처음 일은 다가오는 적에게서 그의 눈을 것입니다. 이제 그는 이상 어려움이 왔는지 파악하려 하면서 환난 가운데 있다고 울고 있지 않습니다. 대신, 그는 하나님의 인애에 관한 계시 가운데 은혜를 누리고 있습니다. “나를 기뻐하시므로 나를 구원하셨도다”( 18:19).

 

이것이 바로 원수가 우리에게 홍수처럼 밀어닥칠 하나님께서 그분의 모든 자녀에게 의도하시는 일입니다. 주님은 그분의 사랑으로 우리

2009년 6월 26일 금요일

승리하는 교회

지금도 혹독한 믿음의 시련으로부터 나와 승리하는 교회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말세의 교회는 불타는 용광로와 길고 시련으로부터 벗어나오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하나님이 무슨 일을 계획하고 계시는가하고 물을 것입니다.

 

내가 보기에는 성령께서 사람들이 철저히 깨어지도록 역사하고 계십니다. 그분은 자신의 강함을 보여주기 위해 사람들이 그들의 육의 연약함에 대해 깨닫도록 인도하고 계십니다. 나는 그분이 자신의 백성들의 완고한 의지를 깨뜨려 그들이 오직그분의 뜻이 이루어지이다라고 마음을 정할 까지 그들의 한계까지 몰아가고 계신 것을 봅니다. 나는 그분이 자신의 사랑하는 자들을 오직 기적만이 그들을 구원해 있는 어려운 시험가운데로 인도하고 계신 것을 봅니다. 모든 것을 통해서 그들은 모든 것을 온전히 주님께 의지하게 것입니다.

 

이것이 당신의 상황을 묘사하고 있습니까? 아마도 당신은 예수님과 오랫동안 동행해 왔고 지금 당신 앞에 놓인 시험과 같은 것을 직면해 본적이 없을 지도 모릅니다. 당신이 압도당할 같은 , 오직 하나님만이 해결하실 있는 일들이 당신에게 닥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오직 그분만이 당신이 이것들을 통과하도록 하실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현재, 이슬람교도들은 알라신을 위해세계를 장악하려고 마지막 성전(聖戰) 준비하고 있습니다. 무자비한 참수가 특징인 증오의 메시지를 표방하며 이슬람교의 훈련장이 세계에 

걸쳐 일어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도 또한 사람들을, 세상의 진노를 위압하는데 사용하시기 위한 사람들을 훈련시키고 계십니다. 그분이 일을 어떻게 성취하실까요? 그들을 그분의 인애와 평강가운데서 훈련시키고 장비를 갖춰주십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며 그분은 폭탄이나 또는 자살 특공대를 사용하지 않으시고 긍휼의 주님 안에서 두려움 없이 극복하는 사람을 사용하실 것입니다. 

 

세계에서 하나님의 사람들은 그들 생애 어느 보다 더욱 고통, 시련과 고문을 겪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나는 확신합니다. 현재 그리스도의 진정한 안에서 견디어 내는 이토록 강렬한 영적, 물리적 전쟁 안에는 신성하고 영원한 목적이 있음을. “여호와께서는... 지으신 모든 것에 긍휼을 베푸시는도다”( 145:9).

2009년 6월 25일 목요일

당신은 자비로운 사람입니까?

여호와여 주의 긍휼이 많으오니”( 119:156).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며 긍휼이 많으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자하심이 크시도다 여호와께서는 모든 것을 선대하시며 지으신 모든 것에 긍휼을 베푸시는도다”( 145:8-9 이탤릭체 저자 임의 사용).

 

최근 자신에게 하고 있는 질문을 당신에게도 묻고자 합니다. 당신은 자비로운 사람입니까? 대부분의 우리는 다음과 같이 대답할 것입니다. “나는 자비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능력이 미치는 , 나는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동정합니다. 고통을 겪고 있는 그리스도안의 형제자매들의 고통을 나도 느끼고 그들을 도우려고 합니다. 곤궁에 처한 이웃들을 도우려고 최선을 다합니다. 사람들이 나에게 상처를 나는 그들을 용서하고 원망을 품지 않습니다.” 진정한 크리스천들은 길을 잃고 상처 입은 자들에 대해 상당히 긍휼한 마음을 품는 다고 나는 믿습니다. 그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슬프게도 진실을 말하자면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많은 사람 안에 있는 뿌리 깊은 편견과 아주 제한된 긍휼에 대한 개념을 드러내어 줍니다.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대부분의 종교는 다음과 같은 신조나 교리를 갖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의 자비는 모든 인간에게 펼쳐진다.”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로서 우리는 세계를 향한 그분의 긍휼에 대해 빈번히 말합니다. 하지만 진실은 다음과 같습니다.

 

다수의 크리스천들이 많은 사람들에 대해 하나님의 긍휼을 제한하고 있습니다. 나는 하나님이 없는 사창가에서 일하는 창녀들을 생각합니다. 아프리카나 다른 대륙에서 AIDS 죽어가는 수천 명의 사람들을 생각합니다. 끊임없는 마음의 고통과 심적 고민, 인생의 시련을 견디고 있는 동성연애자들, 그리고 자신들의 고통을 잊으려고 망각의 경지에 이를 까지 술을 마시는 사람들을 생각합니다. 내가 성경에서 읽은 바에 따르면, 나는 우리의 구주가 창녀, 동성연애자, 인생의 제일 밑바닥에 떨어진 마약이나 알코올 중독자들의 절박한 절규를 외면하시리라고는 생각할 없습니다. 그분의 긍휼은 제한이 없습니다. 끝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지상에서 그리스도를 대표하는 몸인 그분의 교회로서 우리는 누구든지 긍휼히 여기고 구원을 베풀어달라고 절규하는 사람에게 거절할 없습니다.

 

이러한 내적 편견들이 갑작스레 우리 면전에 나타나서 우리 마음에 관한 진실로 우리를 도전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러한 편견에 대해 알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당신이 자신의 가운데서 이것을 생각할 다시금 당신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자비롭고, 온유하고 사랑이 많은 사람입니까? 나는 많은 독자들이그렇습니다,”라고 대답하는 모습을 그려봅니다. 하지만 당신 주위에 있는 사람들, 당신의 가족, 직장 동료, 친구나 이웃, 다른 피부색을 가진 당신의 친구들에게 물어보십시오. 그리고 그들의 대답을 들어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