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8월 29일 금요일

예수님을 맞을 준비

안일한 생활에 안주할 시간적 여유가 없습니다. 우리는 항상 각성된 상태에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때에 내가 등불로 예루살렘에 두루 찾아 무릇 찌끼같이 가라앉아서 심중에 스스로 이르기를 여호와께서는 복도 내리지 아니하시며 화도 내리지 아니하시리라 하는 자를 벌하리니”(스바냐 1:12). “찌끼같이 가라앉아서”라는 뜻은 무심하고 개의치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찌끼”는 포도주 베럴의 바닥에 가라앉은 앙금입니다.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세례를 받고자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그저 안일하고 느긋하게 앉아 앙금을 그저 마음 한켠에 담아 두고만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타임스퀘어 교회가 너무 극심하다며, 마음을 움직이고 각성하게 하는 메시지가 너무 많다고 말하며 교회를 떠납니다. 그들은 각성하게 하는 메시지가 없는 곳을 찾아서 떠났습니다. 그들은 “강력하고 각성의 메시지의 부담을 못견디겠습니다. 회개와 돌아오기를 너무 많이 요구합니다.”

저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성령님의 교회는 하나님의 촛불이 될것입니다. 이 도시에 불을 밝히며 안일한 삶에 안주하는 자들을 아주 불편하게 할것입니다. 예레미야 48장 11-12절에서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모압은 예로부터 평안하고 포로도 되지 아니하였으므로 마치 술의 그 찌끼 위에 있고 이 그릇에서 저 그릇으로 옮기지 않음 같아서 그 맛이 남아 있고 냄새가 변치 아니하였도다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그 그릇을 기울일 자를 보낼 것이라 그들이 기울여서 그 그릇을 비게 하고 그 병들을 부수리니” 이 사람들은 하나님의 일에 개입되기를 거부하였습니다. 그들은 조용하고, 평화롭고 방해받지 않는 풍요로움을 추구하였고 각성되고 변화되기를 거부하였습니다.

우리가 만약 주님의 재림이 얼마나 가까운지를 알았더라면, 불과 같은 심판이 얼마나 가까운지 알았더라면 우리는 하나님께 각성시켜 주심에 감사할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예배와 모임에서 마음의 온 앙금을 제거하고 성령으로 채움 받을 것입니다. 회개를 호소하고, 마음을 찌르는 진리의 말씀으로 의의 길로 가도록 권면하는 복음주의 설교자들에게 감사할것입니다. 심판의 날에 우리는 잠든 영혼을 깨우시는 나팔소리와 같은 메시지로 회개와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을 각성시켜주신 하나님께 영원토록 감사 할 것입니다.

저는 이미 모든 짐을 싼 상태입니다. 예수님의 얼굴을 볼 준비가 되어있고 대면하기를 갈망하고 있습니다!

2014년 8월 28일 목요일

오직 깨어 근신할찌라

멸망의 때가 다가올수록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로 하여금 오직 깨어 근신하도록 명령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근신할찌라”(데살로니가전서 5:6). 바울은 성도들에게 강력하게 권면합니다. “형제들아 너희는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매 그날이 도적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두움에 속하지 아니하나니”(5:4-5). 바울이 하고자 하는 말은 이렇습니다. “현 세상은 비극적인 어두움의 때이고 우리가 깨어 근신하여야 하는 불길에 타오르는 멸망은 밝아오는 새 날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육적인 것이 우리의 소망이 아니므로 우리는 어두움의 멸망의 운명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심은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신 것이라”(5:9).

그리스도의 신부인 우리에게 진통의 강도가 증가한다는 의미는 우리가 본향에 더욱 더 가까워 졌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게는 멸망으로 가는 초읽기이지만, 믿는 우리에게는 영광으로의 초읽기입니다! 그들에게는 심판이 우리에게는 부활이 약속된 것입니다. 믿지 않는 이들이 눈물로 부르짖으며 이를 갈을 때 우리는 기뻐하며 즐거워 할 것입니다! 이 거대한 어두움의 자녀들은 멸망의 때에 술에 취해 잠 들어 있습니다. “자는 자들은 밤에 자고 취하는 자들은 밤에 취하되”(5:7). 이는 이 세상의 모든 종류의 중독을 의미합니다. 중독 또는 취한다는 의미는 사람의 영혼을 극도의 흥분상태까지 발광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근신하여”(5:8). 이는 바울의 강력한 경고입니다. 바울은 멸망의 때에 그리스도가 아닌 이 세상의 것으로 인하여 결코 취하고 흥분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근신하라 꺠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니라”(베드로전서 5:8-9). 우리는 주께서 재림하시는 그 때까지 부지런하고 근면해야 합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근신하고 깨어있는 것입니다. “근신하다”라는 뜻은 “통찰력 있고, 신중하다”라는 의미입니다. 다른 말로는 다른 것에 마음을 뻇기지 말라라는 의미입니다. 이 세상 것에 너무 깊이 개입하지 말고, 너무 흥분하지 말고 또 너무 휘말리지 말라는 뜻입니다.

이 경고를 주시하십시오! 지금 당신은 집중력을 흐트리게 하는 마귀의 포도주를 마시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사탄이 가능하다면 믿는자들을 속이려고 한다고 경고합니다. 저는 불륜, 교만 또는 다른 습관적인 죄악들도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지만, 이 세상의 합법적이고 정당한 것들을 합리화 시켜 자신의 삶에 자리잡게 허용하는 것이 마음을 손쉽게 사로잡히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2014년 8월 27일 수요일

해산의 고통이 이름과 같이

“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때에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데살로니가전서 5:3).

이 구절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쓰여진 것으로 모든 단어 하나하나가 조심스럽게 선택되었습니다. 아기를 출산할 때 갑작스럽게 해산의 고통이 시작 되듯이 멸망도 갑작스럽게 다가올 것입니다. 이 구절에서의 여자는 죄악되고 하나님을 잃은 사회를 의미하고 해산의 고통처럼 심판의 날도 올 것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출산의 순간이 가까워질수록 고통의 간격과 강도는 증가합니다. 한시간 마다, 30분 마다, 10분마다.. 여자는 병원으로 옮겨지고, 고통은 더욱 증가합니다. 그리고 급작스럽게 끊임없는 진통은 지속됩니다. 이에 대한 영적 적용은 마지막 때에 멸망은 지속적으로 강력해지는 고통스러운 경고로 시작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미국이 이미 분만실로 향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의 수 백명의 해병이 레바논에서 경고 없이 급작스럽게 말살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속수무책으로 바라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또 수 년 후에 미국의 우주왕복선 챌린저가 하늘에서 폭발했을 때, 온 세상은 두려움을 가득찬 상태에서 7명의 우주비행사들이 지구로 고꾸라지는 모습을 무기력하게 바라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에이즈(AIDS)는 미국의 의사들에 의하여 전염병으로 공표하였습니다. 에이즈의 전염력은 정말 공포스러웠습니다. 이 사회에 다른 전염병인 마약도 만연하였습니다. 마약남용은 수백년 전에 퍼졌었던 흑사병처럼 번졌습니다. 갱단은 뉴욕, 로스 엔젤레스, 시카고를 누비며 살인, 절도를 일삼고 있습니다. 바울은 우리에게 이 모든 것들은 점점 심해질 것이라고 경고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고난과 슬픔의 속도를 높이시고 계십니다.

오늘날 우리는 그 어느때보다도 많은 경고를 받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사실 너무나도 많은 경고를 받은 나머지 경고를 귀담아 듣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는 이제 해산의 고통을 겪듯이 심판의 때가 다가왔습니다. 사람들은 세상 신과 우상을 찾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모든 일들이 다가 올 때, 우리는 구원의 때가 가까웠으므로 기뻐하라고 하셨습니다. 고통과 어려움의 시기가 다가 올수록 기뻐하십시오!

“이런 일이 되기를 시작하거든 일어나 머리를 들라 너희 구속이 가까왔느니라” (누가복음 21:28).

2014년 8월 26일 화요일

“제발 아니라고 말해주세요”

어느 교회의 정말 끔찍한 스캔들 소식을 들었습니다. 어느 복음주의 목회자가 고급 승용차, 고가의 보석, 호화스러운 집 그리고 고가의 와인들을 사들이는데 수만 달러를 썼다는 소식에 모두 얼굴을 붉혔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비웃고 조롱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이름은 사람들의 웃음거리와 풍자 소재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국가 제일의 “죄악을 설교하는 목회자”가 죄를 짓는 것이 포착되었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크리스천들은 “제발 아니라고 해주세요!”라고 부르짖었습니다. 그리고는 상당한 수의 사역들이 줄어드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와중에 번쩍 정신을 들게 하는 이 말씀이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하나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베드로전서 4:17).

이러한 소식에 교회는 왜 그렇게 충격을 받았을까요? 우리는 이미 심판이 우리 문 앞에 와 있으며 하나님의 집에서 먼저 시작 될 것이라는 경고를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교회를 다시 한번 깨우기 위하여 하나님의 이름이 조롱받게끔 허락하신 것입니다. 이세상에 다시 한번 마지막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이 어떠하며 또 의인이 겨우 구원을 얻으면 경건치 아니한 자와 죄인이 어디 서리요.”(베드로전서 4:17-18). 하나님의 심판은 아주 갑작스럽고 귀가 저릿해질 정도로 무섭고 섬뜩합니다. 하나님께서 엘리 제사장의 집을 심판하셨을 때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이스라엘 중에 한 일을 행하리니 그것을 듣는자마다 두 귀가 울리리라. 내가 그 집을 영영토록 심판하겠다고 그에게 이른 것은 그의 아는 죄악을 인함이니 이는 그가 자기 아들들이 저주를 자청하되 금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사무엘상 3:11, 13).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므낫세 지파의 타락을 심판하실때에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이제 예루살렘과 유다에 재앙을 내리리니 듣는 자마다 두 귀가 울리리라”(열왕기하 21:12). 또한 이스라엘에 심판을 내리실 때에 예례미야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보라 내가 이곳에 재앙을 내릴 것이라 무릇 그것을 듣는 자의 귀가 진동하리니”(예레미야 19:3). 히브리어로 귀가 “울린다”라는 의미는 사람들의 귀에 말하여 자신의 죄로 인하여 얼굴을 빨개지게 한다라는 의미를 지닙니다. 심지어 사악한 자들의 귀도 울릴것입니다!

교회에 내려진 심판을 보고 들은 것을 바탕으로 보아 하나님께서 미국의 귀를 울리신다면 이 사회에 얼마나 갑작스럽고 두려운 심판이 내려질까요? 미국 사회의 언론들은 종교를 놀림거리로 조롱하는 것에 아주 큰 즐거움을 느끼고 온 나라가 모든 거룩한 메시지 그 무엇도 못 믿게 만들었고 모든 목회자들을 사기꾼들로 몰아 버렸습니다. 사람들은 술잔을 들고 건배 할 때 말합니다. “지옥불 설교하는 목사들을 위하여!”그러나 모든 것은 하룻 밤 사이에 모두 변할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모든 귀를 울리시고 갑작스런 재앙이 있을 것입니다! 갑작스런 죽음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구원의 확신으로 인하여 고개를 들고 기뻐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일이 되기를 시작하거든 일어나 머리를 들라 너희 구속이 가까왔느니라” (누가복음 21:28).

2014년 8월 25일 월요일

믿음으로 사는 것 by Gary Wilkerson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을 갖기 위해서 우리는 간혹 혼돈스럽고, 짜증나거나 주먹을 불끈 쥐게 만드는 경험을 하기도 합니다. 당신도 이런 기도를 부르짖었을 수도 있겠습니다. “하나님, 제게 주신 약속을 기억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약속을 이루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가져가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께서 주신 언약을 이루시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제거하시는 이유가 무엇에 있을까요? 많은 경우는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가 그저 의무적인 것이 아니라 즐거운 관계가 되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언약이 우리의 힘으로 이루어 질 수 있는 것이라면, 우리는 매일 매시간을 실적주의에 사로잡혀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가 아닙니다. 대신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현재 진행중인 관계, 온 마음 다해 믿는 교제가 이루어지기를 원하십니다.

말씀을 들여다 보면,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고 하셨습니다.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로마서 4:19). “같다”는 말은 수학적인 용어입니다. 아브라함은 그의 삶 속에 있는 그 어느 것에서도 하나님의 약속이 이뤄지는데 가능한 그 무엇도 남아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 자신이 가진 능력중에서는 가능한 일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에서 아브라함의 믿음을 볼 수 있습니다.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이것은 인간의 믿음을 시작하시고 완전케 하시는 예수님을 떠올리게 합니다. 아브라함이 자신은 할 수 없다고 생각할수록 그의 믿음은 더욱 강해지고 성장하였습니다. 아브라함 자신의 죽음으로 자신이 가질 수 없는 성령의 힘으로 거듭난 것입니다.

저는 제 방황하는 아들이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소망하여 하나님께서 그를 넘치는 사랑으로 불러주실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제 아들은 이제 하나님을 만나고 회개하고 교회와 가족에게 돌아왔습니다.

저는 제 지역의 잃어버린 수 천명의 영혼들이 예수님께 돌아오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힘으로 전략을 짜고 프로그램을 계획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예수님께서 그의 나라를 위한 일의 시작이십니다. 우리의 믿음을 완전케 하실 수 있고 수많은 잃어버린 영혼들이 영생으로 거듭나게 하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 뿐 입니다.

맞습니다. 우리도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 동참하도록 부름 받았습니다. 당신의 지역사회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당신의 삶에서 하나님의 언약이 이루어지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바라시는 것은 오로지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2014년 8월 23일 토요일

시간을 되찾으라 by Claude Houde

“시간을 되찾으라.” (에베소서 5:16)

우리가 복음서에서 “시간”이라는 단어를 읽을 때, 신약의 그리스어(헬라어)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두 단어는 “chronos”와 “kairos”라는 사실에 주목하십시오. “chronos”라는 단어는 초, 분, 그리고 시로부터 날, 주, 달(월), 그리고 해(년)가 되는, 그저 시간순서에 따른 단순한 시간관념을 말합니다. 시간은 너무도 빨리 흘러갑니다. 그러나 “kairos”는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은 주로 “때가 성취되었을 때; 충만의 때에; 이러저러한 일이 일어날 때가 임박했을 때”와 같은 표현으로 번역됩니다.

저는 여기서 우리에게 영적 적용이 필수적임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여러분으로 하여금 보기를 원하는 것은, 매일 매 순간의 “지나가 버리는” 낭비된 시간을 “믿음에 의한 결단”의 신성한 순간으로, 초자연적으로 그리고 구원적으로 무언가를 방출시켜 우리 삶을 개혁할수 있는 결단의 기회로 만드는 것입니다.

이 중요한 핵심에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순간”이라는 단어가 축출된 헬라어 단어 중 하나는 “atomos”라는 단어입니다. 그러므로 “atom”과 “atomic”의 근원은 “atomos”라는 것을 쉽게 알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순간”에 무엇이 감추어져 있는지에 대한 완벽한 모습입니다. 원자의 이미지는 우리가 얼마나 쉽게 한순간을 잃어버리며, 그 잠재력과 가능성을 과소평가하는지를 상기시켜줍니다. 원자는 한 요소의 가장 작은 입자, 가장 통상적으로 불리는 최소의 단위, 완벽한 연합의 상징으로 간주되었습니다. 즉 그보다 더 작은 것은 찾기 불가능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순간을 그토록 쉽게 놓치는 이유입니다. 하나님과의 이러한 순간들은 원자와도 같이 오고 가며 우리에게 무한대로 허용되어 있지만, 너무도 미세해서 하찮게 여겨지거나 중요하지 않게 여겨질수 있습니다.

순간은 놓치거나 간과하기 쉽습니다. 그와 동시에 우리는 순간에서 원자의 모습을 찾을수 있습니다. 이 믿을수 없을 정도로 작은 원자핵에서 원자력 수용력과 엄청난 규모의 원자력 핵융합의 발산력이 발견되었습니다.

저는 그것을 이렇게 결론 짓고 싶습니다. “당신이 결단의 믿음을 갖고 기도를 통한 하나님과의 순간을 포착할 때, 당신은 영적 원자력만큼의 초자연적 능력을 발산할 수 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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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약력: 클라우드 어드(Claude Houde) 목사님은 캐나다 몬트리올에 위치한 New Life Church의 담임목사이며, 세계 전역에 걸쳐 World Challenge에 의해 주최되는 Expect Church Leadership Conferences의 주된 강사입니다. 그의 지도력으로 New Life Church는 소수 인원으로 시작해서 개신교 교회로서는 성공하기 힘든 캐나다의 보수적인 지역에서, 지금은 교인 수가 3,500명이 넘는 교회로 성장했습니다.

2014년 8월 22일 금요일

번영에 집착하다

사회는 점점 더 번영과 삶의 보장에 사로잡혀가고 있으며, 그와 함께 심판의 날도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그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하고 말할 그때에 갑작스런 파멸이 그들에게 임하나니…” (데살로니가전서 5:3) 이 구절에서 바울이 사용한 단어 “평안하다”는 그리스어(헬라어)로 “eirene”인데 그것은 “번영”이라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이 부에만 집착되어 있는 그 날에 갑작스런 파멸이 올 것입니다. 돈에 대한 열광! 탐욕! 부의 축적! 비축!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의 마음이, 지구상에서 일어나는 끔찍한 재난을 보고 두려움으로 인해 실족할 때가 있을 것이라고 경고하셨습니다. 사람들은 무언가 확실하고 안전한 것을 갈망할 것입니다. 이 구절은 평안과 안전의 때가 있을 것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단지 사람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고 말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것은 그들이 말하는 전부가 될 것입니다. 그들 대화의 주체는 돈, 소유물, 투자, 그리고 그들의 재산을 안전하게 지켜줄 보호처를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에 대해서일 것입니다!

인간이 돈을 추구하는 데에 그토록 몰두했던 때는 세계역사상 없었습니다. 번영은 아메리칸 드림입니다! 증권 시장은 한 거대한 도박장이 되었습니다. 수백만의 미국인들은 졸지에 부자가 되기를 기대하며, 복권을 산다든지 카지노에 가서 도박합니다. 왜 다들 그렇게 큰 성공을 하고 싶어 할까요? 왜냐하면, 곧 재난이 올 거라는 사실을 모두들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온 세상은, 어느날 금융 붕괴가 올 것을 초조한 마음으로 예측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끔찍할 때를 대비해서 환란을 피해가기를 희망하며, 그들 자신을 보호하려는 것입니다.

번영에 대한 집착은 심지어 교회까지 부패시켰습니다. 어느날 복음 사역자들이 그리스도의 언약을 돈의 언약으로 돌변시키는 날이 온다는 것을 바울이 알았다면 그가 얼마나 애통해했을까요? 한때 교회는 탐욕과 물질주의를 대항하고, 사물을 사랑하는 것에 대항하며, 자기애, 축적, 사리사욕 등에 맛서 세상 앞에 섰을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세상은 교회를, 좋은 삶을 지향하는 가장 큰 참예자로 봅니다. 세상은 이 세대의 풍요로움을 탐닉하기 위해, 그리스도의 고난을 거부하는 그리스도인들을 비웃으며 조롱합니다.

“그런즉 너희는 주의하여 어리석은 자가 아니라 지혜로운 자로서 조심스럽게 걸어 시간을 되찾으라. 날들이 악하니라.” (에베소서 5:15-16)

2014년 8월 21일 목요일

그 날은 갑자기 올 것입니다

“그러나 형제들아, 그 때와 그 시기에 관하여는 내가 너희에게 쓸 필요가 없나니, 주의 날이 밤의 도둑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완전히 아느니라. 그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하고 말할 그때에 아이 밴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임하는것 같이 갑작스런 파멸이 그들에게 임하나니, 그들이 피하지 못하리라.” (데살로니가전서 5:1-3)

하나님의 심판은 갑자기 임할 것이지만, 아무런 경고 없이 임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선지자들에게 무엇이 올 것인지를 미리 말씀하지 않고서는 심판을 포함한 그 무엇도 내리지 않으실 것을 약속해주셨습니다. “분명히 주 하나님은 자신의 은밀한 일을 자신의 종 대언자들에게 계시하지 아니하고는 결코 행하지 아니하느니라.” (아모스 3:7) 하나님은 그때 나팔소리가 들릴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그분은 심판하시기 전에 사자 울음과도 같은 포효로 사람들을 일깨우실 것입니다. “주께서 그들 위로 나타나 보이시고 자신의 화살을 번개같이 나아가게 하시며 주 하나님께서 나팔을 부시리로다.” (스가랴 9:14)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사신과 선지자들의 목소리를 통해 메아리처럼 크게 울려 퍼지는 경고의 나팔을 부십니다. 바울은 이렇게 경고했습니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한 가지 신비를 알리노니 우리가 다 잠자지 아니하고 마지막 나팔 소리가 날 때에 눈 깜짝할 사이에 순식간에 다 변화되리라.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일어나고 우리가 변화되리니…” (고린도전서 15:51-52) 여기서 “마지막 나팔 소리가 날 때에”라는 구절은 그 이전에 다른 나팔소리가 있을 것임을 암시합니다. 저는 그 의미가 “눈 깜짝할 사이에” 올 심판의 바로 이전을 뜻한다고 믿습니다. 성령께서는 그분의 모든 사신이 그들의 임무에 전념하며 서로 의견을 같이하고, 마지막 외침, 즉 마지막 경고에 온 힘을 쏟도록 할 것입니다!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에 이러한 메시지를 보낸 것은 당연합니다. 하나님 심판의 날이 갑자기 온다는 것이 왜 그들에게 확실하고 명백해야만 했을까요? 이 편지를 받았을 때 데살로니가 교회는 겨우 육개월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바울은 노아와 롯, 그리고 이스라엘의 급작스러운 멸망에 대해 설교했을 것이며, 그들은 우리가 가진 것과 똑같은 구약의 실례들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한밤중의 도둑처럼 갑자기 임할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믿는 성도들은 아무도 절대 놀라지 말아야 한다.” 그 날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예상치 못하게 앞질러 오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일하시는지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분의 실증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2014년 8월 20일 수요일

초자연적 일깨움

히브리서에 의하면, 예수님께서 그분의 영을 이 마지막 대에 부어주시는 유일한 이유는 하나님의 집을 일깨우기 위해서입니다. 경건치 않은 모든 것들, 부정하거나 육으로부터 태동한 모든 것들은 흔들릴 것이며 쓸려버릴 것이고 소멸될 것입니다.

우리 사역팀은 소중한 외부 성도들로부터 그들 교회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애통해하는 가슴 아픈 편지들을 받습니다. “새로운 프로그램들”에 대한 끊임없는 소동과 육적 현상들, 어리석은 시행 등 끔찍한 행사들이 날마다 도입되고 있습니다. 한 성도는, 그들의 교회에서는 매주 펑크 록 콘서트를 공연하며, 그 공연자들은 매우 세속적이고 마귀의 영감을 받은 그룹처럼 보이며 행동한다는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다른 성도들은 여전히, 그들의 교회에서 듣는 공허하고 메말랐으며 자유방임주의적 설교에 대한 편지를 보내옵니다.

그러나 진실을 말씀드리자면, 이 모든 것은 곧 바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거짓된 모든 것들을 드러내시며 강력히 말씀하실 것입니다. 이 각성과 폭로는 어떻게 일어날까요? 그것은 예수님 한 분을 통해 일어날 것입니다! 그분은 죄지으며 살고 불순종하며, 그분의 말씀에 의해 금지된 것들과 결탁하는 모든 자들에게 말씀하실 것을 선언하십니다. 그리고 그분의 음성은 확고하며 명백할 것입니다.

제일 먼저 그분은, 실족했으며 타락한 모든 자에게 이처럼 자비롭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너를 돌이키려는 내 간구를 왜 듣지 않았니? 회개하고 회복하라는 내 부름에 왜 너는 귀 기울이지 않았니? 네 인생이 뿌리까지 흔들리기 전에, 지금 내게로 나아오너라.”

더불어 예수님께서는 진리와 성결, 그리고 거룩을 추구하는 경건한 남녀들에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지금도 그분은, 그분의 일깨우는 각성의 말씀을 그들 심령 속으로 받아들인 사람들을 일으켜 세우고 계십니다. 그들은 주님과의 은밀한 교제 가운데에 있으며, 주님은 그들에게 능력을 부여하셔서 그들을 통해 말씀하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님은 당신에게 어떻게 말씀하실까요? 당신은 그분의 일깨우는 음성을 들으며, 그것으로 하여금 당신의 심령 안에서 일하도록 허용하고 계십니까? 아니면 당신은 아직도 사통, 간음, 증오, 비통함 등에 빠져서 이중적 삶을 살고 있습니까? 만일 당신이 “그리스도는 나의 주”라고 선포하면서도 여전히 숨겨진 죄를 갖고 있다면, 그분이 당신께 이렇게 말씀하실 것을 당신이 알 것입니다. “어찌하여 너는 내 은혜로 돌이키지 아니하였느냐? 왜 그것을 계속 거부했느냐? 너는 내 사랑스러운 부르심을 들었고 나의 자비로움을 맛보았지만, 여전히 네 임의대로 살고 있다. 이유가 무엇이냐?”

여기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 이 초자연적 일깨움—온 나라와 교회를 포함한 하나님의 정화작업은 확고한 기반 위에 세워질 것입니다. 그것은 남은 자들, 즉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리스도의 의안에서 걷는 성도들을 위시하며, 거룩하고 정제된 교회를 탄생시킬 것입니다.

2014년 8월 19일 화요일

하나님께서 기록하고 계십니다


수많은 그리스도인은 생명 없는 교회에 앉아 하나님으로부터 아무런 기름 부음도 받지 않은 목회자의 설교를 들으며 무력해졌습니다. 그러한 과정을 거치며 그들은 아무런 영적 권위도 없이 영적으로 굶주려 있습니다. 자녀들은 타락하며 결혼이 파산되는 등 많은 가정이 고통받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교회에서는 수많은 이스마엘이 탄생하고 있습니다. 이스마엘은 “육”을 상징하는데, 많은 그리스도인은 자기들이 의의 상속자라고 주장하면서도 육적 삶에 묶여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마음에 합한 자녀들을 정결케 하시고 치유하실 것이며, 그들을 교회에 주실 것입니다. “오 수태하지 못하는 자여, 노래할지어다. 아이를 배지 못해 산고를 치르지 못한 자여, 너는 소리 내어 노래하고 크게 외칠지어다. 황폐한 자의 아이가 결혼한 아내의 아이보다 더 많으니라. 주가 말하노라.” (이사야 54:1) 하나님께서는 단지 이스마엘의 집을 비우고 그 무리를 의로운 자들에게 주는 것에 대해서만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군중들이나 숫자, 그리고 성공보다 더 심오한 것이며, 사람이 아닌 그분이 직접 기록하실 것입니다. “내가 사악한 저울과 속이는 추를 담은 자루를 지니고 다니는 자들을 깨끗하다 하겠느냐?” (미가 6:11)

“주께서 백성들을 기록하실 때에 이 사람이 거기서 태어난 것으로 여기시리로다.” (시편 87:6) 어디서든 그리스도인들의 큰 집회를 보면, 모두 손을 높이 올리고 큰 소리로 찬양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많은 군중에 의해 감동받지 않으십니다. 록밴드는 수많은 군중을 끌어들이지만, 그곳에는 하나님께 드리는 찬양이 없습니다. 그분은 죄를 비통해하는 자들을 아시며 누가 거룩한지를 알고 계십니다.

마지막 부흥은 반드시 올 것인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분 자신의 이름을 애석하게 여기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온 세상 앞에서 그분의 이름을 성화시킬 것입니다. 저는 에스겔서에 있는 이 위대한 예언을 여러분과 함께 묵상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집이 이교도들에게로 들어가 그들 가운데서 더럽힌 내 거룩한 이름을 내가 딱하게 여겼노라.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집에게 이르기를, 주 하나님이 이같이 말하노라. 오 이스라엘의 집아, 내가 너희를 위해 이 일을 행하지 아니하고 너희가 이교도들에게로 들어가 그들 가운데서 더럽힌 내 거룩한 이름을 위해 행하느니라. 이교도들 가운데서 더럽혀진 내 큰 이름 곧 너희가 그들의 한가운데서 더럽힌 그 이름을 내가 거룩하게 하리니 내가 그들의 눈앞에서 너희 가운데서 거룩히 구별될 때에 내가 주인 줄을 이교도들이 알리라. 주 하나님이 말하노라.” (에스겔 36:21-23)

2014년 8월 18일 월요일

우리 믿음의 완성자 by Gary Wilkerson

“우리 믿음의 창시자요, 또 완성자이신 예수님…” (히브리서 12:2) 제가 간절히 바라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것들은 하나님께서 제 마음속에 심겨주신 것들이 아닙니다. 예를 들면, 저는 콜로라도 스프링에 있는 우리 교회가 몇십 년 내에 수천수만의 사람들을 구원하게 되는 것을 진심으로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그것을 약속해주지는 않으셨지만, 그래도 저는 그분께서 수많은 잃어버린 영혼들을 그분 사랑의 품 안으로 데려오시기를 소망하며 기도합니다.

우리는 모두 우리 자신의 소망을 그분의 언약으로 변경시키는 것에 대해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는 무엇이 하나님에게서 온 언약인지를 성경 말씀이나 기도, 때로는 다른 성도들을 통해 검증되었을 때에야 확신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야망이나 열망의 목소리를 듣고서 그것을 하나님의 목소리로 착각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좋은 것들을 포함한 어떤 것들을 바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야고보가 기록했듯이 하나님께서는 우리 자신의 갈급함과 육적 열망에서 태동한 요청들에 대해서는 응답해주시지 않을 것입니다.

대신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것들을 없애주심으로서 우리의 믿음을 완성시켜 주십니다. 중년기에 있는 한 사람으로서, 저는 주님이 그렇게 해주시는 것이 너무도 기쁩니다. 제 나이 삼십 대였을 때 저는 많은 것들을 원했는데, 그분이 그것들을 제게 주시지 않은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그분의 자비로우심으로 하나님께서는 무엇이 제게 진정으로 필요한지를 보셨고, 제가 원하는 것들은 허용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이 심겨주신 열망들로 우리 믿음을 완성시켜 주심으로, 우리 자신으로부터가 아닌 그분에게서 태동된 열망들은 우리 심령 속에서 부상하기 시작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히브리서 11:1) 하나님께서 우리의 믿음을 정화시킴으로써 우리의 확신이 견고해집니다. 우리는 분별력 안에서 성장하며 이렇게 말하게 됩니다. “아, 맞아. 이것이 주님의 말씀이고 저것은 아니야. 그분은 말씀과 기도, 그리고 주위 성도들의 증거를 통해 나에게 그분의 약속을 확증하고 계셔.” 믿음은 우리 안에서 정착하기 시작하고 히브리서 11장 1절의 말씀대로 우리는 “바라는 것들이 실제로 이루어질 것임을 신뢰”합니다.

이러한 유형의 믿음은 믿음의 전당에 열거된 선조들에게 완성되었습니다. (히브리서 11장 참조) 이 장에 의하면 하나님께서는 아벨의 더 나은 제사보다는 그의 믿음을 보시고 그를 칭찬하셨습니다. 노아는 의의 설교자로서 칭찬받은 것이 아니었고 그의 믿음으로 인해 칭찬받았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모세도 담대한 하나님의 사신이었기 때문에 칭찬받았던 것이 아니라 그의 믿음에 의해 칭찬받았습니다.

2014년 8월 16일 토요일

진정한 자비 by Nicky Cruz

겸손한 마음과 자비로운 심령보다 더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것은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비에 반응하시는데, 그 이유는 긍휼을 통해서만이 우리가 그분을 온전히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진정으로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을 결정짖는 자질입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용서할 때보다 더 하나님 심장 가까이 다가갈 때는 없을 것입니다. 그와 반대로 우리가 원한을 품을 때보다 더 그분과 멀어질 때도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마태복음 6:14-15) 하나님께서 믿는 자들에게서 기대하시는 것을 이보다 더 명확하게 설명해놓은 성경 말씀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만일 당신이 용서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도 당신을 용서하실 수 없습니다.

제가 여러해 전에 두 여성도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들은 잠에서 깨어나 그들 집에 들어온 강도를 발견했습니다. 그중 한 여성도는 재빨리 그곳에서 몇 분 거리 내에 있는 경찰을 불렀습니다. 즉시 경찰차 몇 대가 그들의 집 앞으로 달려왔고 경찰은 그 젊은 강도를 데려갔습니다.

한 경찰관이 아직도 그 집에 남아서 피해자들로부터 필요한 모든 정보를 받아 기록하고 있었을 때, 한 여성도는 그 젊은이가 어떻게 될지를 그 경찰관에게 물어보았습니다.

“그는 조서를 받은 후 감옥으로 보내질 것입니다.”라고 그 경찰관이 대답했습니다.

그 경찰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주님은 그녀에게 몇 달 전에 있었던 이와 비슷한 사건을 상기시켜주셨습니다. 그때 그녀의 아들도 범죄를 저질러 경찰에 붙들렸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에 피해자 가족이 그를 불쌍히 여겨 그의 범행을 용서해주었습니다. 판사의 판결을 거슬러 그들은 고소를 취소했고 그녀의 아들은 풀려났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그녀의 마음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네가 그와 똑같은 용서를 보여주기 원한다.”

인간의 논리를 뛰어넘는 일종의 긍휼과 자비가 있습니다. 세상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며, 거기에는 보상이 거의 없습니다. 우리에게 잘못한 자들을 용서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 중 가장 힘든 일입니다. 그러나 그분을 따르는 자들로부터 그분이 가장 보기 원하는 것은 바로 자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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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키 크루즈(Nicky Cruz)는 세계적으로 알려진 전도사이자 다작가입니다. 그는 1958년 뉴욕에서 데이빗 윌커슨(David Wilkerson) 목사님을 만난 후 폭력과 범죄의 삶으로부터 예수님께로 돌이켰습니다. 그의 극적 전환에 대한 이야기는 데이빗 윌커슨 목사님의 책 “The Cross and the Switchblade (십자가와 칼)”에서 처음 알려졌으며, 그 후 자신이 직접 쓴 베스트 셀러 “Run, Baby, Run (달려라 니키)”에도 실려있습니다.

2014년 8월 15일 금요일

잉태치 못하는 교회가 수많은 자녀들을 회복시킬 것입니다

“잉태치 못하며 생산치 못한 너는 노래할찌어다 구로치 못한 너는 외쳐 노래할찌어다 홀로 된 여인의 자식이 남편 있는 자의 자식 보다 많음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이사야서 54:1).

어떤 이들은 마지막 때에 교회들이 잉태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들은 대형 교회들과 수많은 사역 그리고 종교 세미나와 콘서트를 가는 사람들 그리고 종교 도서, 미디어를 사들이는 사람들을 가리키며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지명하신 영적 자녀들과 교회가 지명하는 자녀들은 아주 다릅니다. 교회가 늘어나는 교인 수, 영향력과 성공에 초점을 맞추고 있을 때 바울은 외쳤습니다.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갈라디아서 4:19). 바울은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교회에 얼마의 교인이 출석하는지 말하지 말아라. 교회에서 출판하는 서적의 수, 교회에서 나눠주는 성경의 수를 말하지 말아라. 내게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와 같이 형성되고 있는지 말해주겠니?!”

저는 하나님께서 지난 20-30년을 복음의 기근이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해충이 수년간 먹은 것 같이, 자신을 들어 올렸던 세월, 하나님의 성전에서 낯선 사람에게 영광을 돌렸던 세월, 교만한 설교자, 돈을 사랑했던 것, 자기 세력 확대와 얕은 생각을 했던 세월들…

“저희가 여호와께 정조를 지키지 아니하고 사생자를 낳았으니 그러므로 새 달이 저희와 그 기업을 함께 삼키리로다”(호세아서 5:7). “내가 너를 순전한 참 종자 곧 귀한 포도나무로 심었거늘 내게 대하여 이방 포도나무의 악한 가지가 됨은 어찜이뇨”(예례미야 2:21).

하나님께서는 잉태치 못하는 마지막 때의 교회들이 수많은 자녀들을 생명으로 다시 모으는 일을 탄생시킬 것이라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네 장막터를 넓히며 네 처소의 휘장을 아끼지 말고 널리 펴되 너의 줄을 길게 하며 너의 말뚝을 견고히 할찌어다 이는 네가 좌우로 퍼지며 네 자손은 열방을 얻으며 황폐한 성읍들로 사람 살 곳이 되게 할 것임이니라”(이사야서 54:2-3).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때의 교회의 수치심과 책망을 모두 제거하실 것입니다. “두려워 말라 네가 수치를 당치 아니하리라 놀라지 말라 네가 부끄러움을 보지 아니하리라 네가 네 청년 때의 수치를 잊겠고 과부 때의 치욕을 다시 기억함이 없으리니”(이사야서 54:4).

2014년 8월 14일 목요일

수 많은 사람이 구원을 받을 것이다

마지막 때에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들어보지도 못한 죄악된 사람들을 부르실 것입니다. 

“내가 그를 만민에게 증거로 세웠고 만민의 인도자와 명령자를 삼았었나니 네가 알지 못하는 나라를 부를 것이며 너를 알지 못하는 나라가 네게 달려올 것은 나 여호와 네 하나님 곧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인함이니라 내가 너를 영화롭게 하였느니라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악인의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이사야서 55:4-7)

위의 구절에 나온 내용은 신약시대에 이방인들이 그리스도에게 달려왔을 때 이루어 졌습니다. 이방인들이 빛을 보고 그에 응답한 것입니다. 그러나 다시 한번, 단 한번의 마지막 부흥의 때에 죄악에 빠진 사람들이 듣게 될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죄악된 삶을 버리고 하나님을 찾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찾는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은 위로, 치유와 회복을 주실 것입니다.

“내가 그 길을 보았은즉 그를 고쳐 줄 것이라 그를 인도하며 그와 그의 슬퍼하는 자에게 위로를 다시 얻게 하리라”(이사야서 57:18). 이사야 선지자가 이 말씀을 전할때에 얼마나 기뻤을까요. “나 여호와의 이름으로 타락한 아내를 용서하고 다시 부를 것이니라”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이사야서 43:25). 온 세계에 타락한 그리스도인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타임스퀘어 교회 교인의 반은 한때 믿음을 가졌으나 타락하고 다시 돌아온 사람들입니다. 약물 중독, 술, 성, 의심 그리고 두려움의 문제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돌아온 것입니다. 약물, 술중독자, 매춘부, 동성애자 그리고 타락한 모든 이들은 하나님의 부름을 받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넘치는 자비가 죄를 간과할까요? 절대 아닙니다!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은 성령님을 한 때 경험했던 사람들입니다. 한때 하나님을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령님을 보내셔서 사랑의 말씀을 전하며 다시 한번 부르실 것입니다. 그리고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어떻게 지키시고, 사랑하시고 축복하셨는지 상기시켜주실 것입니다.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거민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리니 그들이 그 찌른 바 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독자를 위하여 애통하듯 하며 그를 위하여 통곡하기를 장자를 위하여 통곡하듯 하리로다. 그날에 예루살렘에 큰 애통이 있으리니 므깃도 골짜기 하다드림몬에 있던 애통과 같을 것이라”(스가랴서 12:10-11).

2014년 8월 13일 수요일

다시 부르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믿어 자녀가 되었지만 갑작스런 시험을 맞닥뜨려 넘어진 사람들을 위하여 많은 관심과 걱정을 보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현재 괴로워하고 있는 이들에게 약속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신앙을 버리고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을 다시 한번 품으시며 사랑으로 부르실 것입니다.

“이는 너를 지으신 자는 네 남편이시라 그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시며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시라 온 세상의 하나님이라 칭함을 받으실 것이며 여호와께서 너를 부르시되 마치 버림을 입어 마음에 근심하는 아내 곧 소시에 아내 되었다가 버림을 입은 자에게 함같이 하실 것임이니라 네 하나님의 말씀이니라 내가 잠시 너를 버렸으나 큰 긍휼로 너를 모을 것이요 내가 넘치는 진노로 내 얼굴을 네게서 잠시 가리웠으나 영원한 자비로 너를 긍휼히 여기리라 네 구속자 여호와의 말이니라”(이사야서 54:5-8).

이는 마지막 때의 –하나님께서 잠시 버리셨던- 교회들을 향한 예언입니다.

여기에서 하나님께서 잠시 버리셨던 이가 누구일까요? 그리고 하나님께서 얼굴을 가리셨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이사야서 59:2). 하나님께서 현 시대의 타협하는 교회와 이혼하셨다기 보다는 하나님께서 얼굴을 가릴 수 밖에 없으셨던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교회가 하나님을 떠난 것이었습니다. “나 여호와가 이같이 이르노라 내가 너희 어미를 내어 보낸 이혼서가 어디 있느냐 내가 어느 채주에게 너희를 팔았느냐 오직 너희는 너희의 죄악을 인하여 팔렸고 너희 어미는 너희의 허물을 인하여 내어 보냄을 입었느니라”(이사야서 50:1).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내게서 떠난 것이다. 네가 나를 배신 하였다. 내가 너를 떠난 것이 아니라 네가 나를 떠난 것이다!” 교회는 바벨론으로 떠났지만 아직 이혼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리와 이혼을 증명하는 서류를 내어놓아 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은 “우리가 설사 함께 살고 있지 않더라도 이혼을 한 것은 아니다. 우리의 관계는 아직 가망 없는 상태가 아니다. 나는 너를 아직도 사랑한단다! 비록 네가 나를 떠났지만 나는 너를 부르고, 또 불렀다. 그러나 네가 내게 응답하지 않았다.” “내가 왔어도 사람이 없었으며 내가 불러도 대답하는 자가 없었음은 어찜이뇨”(이사야서 50:2).

죄악에 사로잡혀 하나님을 배신하고 방황하는 아내에게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를 다시 부를 것이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가 값없이 팔렸으니 돈 없이 속량되리라.” (이사야서 52:3). “여호와께서 너를 부르시되 마치 버림을 입어 마음에 근심하는 아내 곧 소시에 아내 되었다가 버림을 입은 자에게 함같이 하실 것임이니라”(이사야서 54:6) 지금까지도 여러분에게 하나님은 끊임없는 사랑으로 다시 한번 부르십니다. “내가 잠시 너를 버렸으나 큰 긍휼로 너를 모을 것이요”(이사야서 54:7)

2014년 8월 12일 화요일

의의 부흥이 오고 있습니다

저는 노아에게 약속되었던 것과 같은 확실한 언약에 근거한 선언을, 가장 위대한 영적 권위자와 함께 선포하기 원합니다. 마지막 부흥이 있을 것인데, 그것은 온 세상에서 일어날 마지막 때의 한밤중의 부흥이 될 것입니다. 시온은 진통할 것이며 수많은 자녀가 그녀에게 주어질 것입니다. 엄청난 찬양과 외침이 있을 것이며, 시온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이 모든 것들이 대체 어디에서 왔단말인가?” 그것은 의의 부흥이 될 것입니다.

저는 연로 목회자들이 마지막 부흥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오래전부터 들어왔습니다. 저와 절친한 한 친구는 그것에 대해 육십년도 넘게 설교해왔습니다. 지금은 젊은 목회자들이 부흥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부흥에 대해 책에서 읽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이 세대에 그것을 실현해주시기를 원합니다. 단순히 과거의 부흥에 대해 설교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습니다. 만일 성경에 그것에 대한 언약이 없다면 왜 부흥을 구하며 기도해야 합니까? 만일 성경이 우리에게 가망이 없다고 말한다면, 그저 전도만 하고 설교만 하며 그 결과에 대해서는 개의치 말아야 하겠지요. 그러나 만일 부흥이 약속된 것이라면 그리스도인들은 그것을 보고 만질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바를 행해주실 것을 확신하는 믿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자, 그렇다면 그 언약이 그분의 말씀에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그 언약은 이사야 54장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 장은 이 세대를 위한 하나님의 말씀 중 가장 중요한 장들 중 하나입니다. 이 장에서는 하나님께서 이 마지막 대에 그분의 교회와 그분의 백성을 향해 무엇을 의도하고 계시는지를 우리에게 명백히 말해줍니다. 이 장은 세상 어디든 갈급한 심령들이 있는 곳은 물론이고, 타임스 스퀘어 교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를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러시아에서, 중국에서, 바다의 모든 섬에서, 그리고 지구 북극에서부터 남극까지, 온 땅에서 일어날 것입니다.

교회는 과분하게 넘치는 사랑과 자비, 그리고 호의를 경험할 것입니다. 그것은 폭풍이 휘몰아치고 사방팔방에서 불안감이 조성되며 온 사회가 진통을 겪는 엄청난 환란의 때에 올 것입니다. 하나님은 큰 자비로 자신을 나타내주실 것을 맹세하십니다. “그러나 영존하는 친절로 너를 긍휼히 여기리라. 네 구속자 주가 말하노라… 내 친절이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내 화평의 언약도 움직이지 아니하리라. 너를 긍휼히 여기는 주가 말하노라.” (이사야 54:8-10) 하나님께서 교회에게 하시는 말씀은 각 성도 개개인에게 주시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그분은 “고난당하며 폭풍에 밀려다녀 위로를 받지 못한 자”(이사야 54:11)의 하나님이십니다.

2014년 8월 11일 월요일

믿음의 삶 by Gary Wilkerson

우리 대부분은 우리 삶 속에서 우리가 할 수 없는 일들을 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저는 단지 하기 힘든 일들에 대해 말하고 있는게 아니라, 불가능한 일들에 대해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신실하게 따르는 가장 헌신된 성도들조차도 많은 일들을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한 분을 압니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삶에서 참으로 좋은 것은, 우리가 스스로 할 수 없는 놀라운 일들에 동참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우리 스스로 할 수 없는 일들, 예를 들면 사랑하는 자들이 믿음으로 들어오는 것, 파괴된 가정이 회복되고 치유되는 것, 우리 지역사회의 구원받지 못한 자들이 절망적 영원으로부터 구원받는 것 등을 성취하시기 위해 그분과 동참하도록 우리를 부르십니다. 예수님 안에서의 우리 믿음을 통해, 우리는 그분의 능력과 존엄, 그리고 권세에 의해 그러한 일들이 성취되는 것을 보며 참여할 수 있습니다.

위대한 믿음의 행위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던 성경적 인물들을 열거해놓은 히브리서 11장은 “믿음의 전당”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아브라함으로부터 사라, 다윗, 사무엘, 기드온, 그리고 다른 많은 선조로부터, 우리는 믿음의 사람들이 그들의 재능이나 업적 때문이 아니라, 그들 능력의 한계를 넘어선 일들을 해주실 하나님을 신뢰함으로써 칭찬받았음을 봅니다. 그들은 함께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믿음의 증인들”을 구성합니다. (히브리서 12:1 참조)

여기서 강조된 구절 “믿음의 삶”은 우리에게 그렇게 살아야 함을 말해줍니다. 그리고 그러한 삶을 쟁취하기 위해서는, 믿음을 신뢰하는 것으로부터 우리를 방해하는 모든 무거운 것들을 내려놓도록 권고받았습니다. “모든 무거운 것을 벗어버리고” (12:1) 그렇다면 이 무거운 것들은 무엇이며 믿음의 장애물은 무엇일까요? 저는 불신으로 짓눌린 많은 그리스도인을 압니다. 그들은 그들이 처한 상황을 보며 이렇게 생각합니다. “나의 필요는 결코 채워지지 않을 거야. 나는 끊임없이 기도했고 교회 장로님들을 포함한 다른 성도들에게 기도요청도 했지만, 기도응답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어. 내가 시도해본 그 모든 것들은 다 실패야.”

많은 사람에게 있어서의 문제는, 그들이 모든 상황을 통제하시는 하나님보다는 자신들의 상황을 바라본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믿음은 “우리를 압박하는 무거움”(12:1)에 의해 무산되고 맙니다. 제가 여러분께 장담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은 절대 좌절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사탄은 이것을 알고 있으며,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은, 우리가 어려움 속에 묻혀버리도록 선동함으로써 하나님의 목적이 늦춰지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만일 당신의 상황이 절망적이라면, 믿음의 삶은 당신이 이렇게 믿도록 요구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젠가 지금은 내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을 성취하실 거야.”

2014년 8월 9일 토요일

우리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을 성취할 수 있습니다 by Jim Cymbala

하나님의 일은 오직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서만 진행될 수 있습니다. 교회는 영적 전투를 치르는 영적 유기체이며, 오직 영적 능력만이 하나님께서 정해놓으신 일을 가능하게 합니다.

그 비결은 돈이나 조직단체, 책략, 또는 교육이 아닙니다. 여러분과 저는 베드로가 보았던 결과를 봅니까? 베드로가 그랬듯이, 우리가 수천의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데려오고 있습니까?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그분 능력의 원천으로 돌아가야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어떤 사회나 문화, 도시나 지방을 막론하고, 그분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는 사람들을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은 절대 부족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로 신실하게 돌이킨다면, 우리는 그분의 교회가 거꾸로 후퇴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앞으로 전진하는 것을 발견할 것입니다. 우리는 절대로 우리 자신을 후퇴시켜 세상이 원하는 것이나 기대하는 것에 맞출 수 없습니다. 우리의 자세는 전투적이고 적극적이며 담대해야 합니다.

그러한 태도가 바로, 런던의 빈곤층을 석권했던 초기 구세군(Salvation Army)과 그 창설자 윌리엄 부스(William Booth) 장군을 특정 짖는 것입니다. 그것은 또한 일찍이 중국에서 선교로 헌신했던 허드슨 테일러(Hudson Taylor)의 특성이며, 그야말로 담대하게 진리를 전파했던 미국 초기 부흥사들의 특성이었습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다윗과 골리앗의 이야기에는, 거인 골리앗이 그의 어린 상대를 보고 짜증스러워했던 흥미로운 장면이 나옵니다. “네가 나를 개로 여기고 막대기를 가지고 내게 나아왔느냐?”고 그는 호통칩니다. (사무엘상 17:43) 골리앗은 너무도 모욕을 느낀 나머지 이렇게 엄포했습니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네 고기를 공중의 새들과 들짐승들에게 주리라. (17:44)

이에 다윗이 움찔했습니까? 그가 전략적으로 시간을 좀 벌겠다는 생각으로, 어떤 나무나 바위 뒤로 후퇴했습니까?

다윗은 절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블레셋 사람이 일어나 다윗에게로 마주 가까이 올 때에,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로 마주 그 항오를 향하여 빨리 달리며” (17:48)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우리에게서 보시기 원하는 모습, 즉 전투를 향해 달려가는 모습입니다!

다윗의 무기는 그야말로 터무니없는 것들이었습니다. 물매 하나와 매끄러운 돌 다섯개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왕국을 세우시기 위해, 여전히 연약한 자들의 손에 들려있는 터무니없는 도구를 사용하십니다. 기도와 그분의 능력에 힘입어, 우리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을 성취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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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약력: 짐 심발라(Jim Cymbala) 목사님은 뉴욕의 한 소외된 지역에 위치한 작고 허름한 건물에서 이십명도 채 못되는 성도들과 함께 브루클린 테버네클(Brooklyn Tabernacle)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그는 브루클린 태생이며 데이빗 윌커슨 목사님, 그리고 게리 윌커슨 목사님과 오랜 친분을 갖고 있습니다. 그는 세계 전역에 걸쳐 World Challenge에 의해 주최되는 Expect Church Leadership Conference의 주된 강사입니다.

2014년 8월 8일 금요일

영광 안에서 탄생한 교회

신약시대의 교회들은 눈부시게 빛나는 영광 안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성령님께서 불로 내려오셔서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예언을 하며 방언을 말했습니다. 그들은 뜨겁게 회개를 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들 안에 하나님에 대한 경외감으로 가득 차 그들을 보는 사람들 마저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 어떤 감옥도, 태풍도 그들을 가둬두거나 몰아칠 수 없었고, 능력의 이름으로 기사와 이적을 행했습니다. 두려움 없는 선교사들은 어느 곳이든 달려가 복음을 전하고, 그들의 소유를 모두 빼앗기더라도 끊임없이 기뻐하며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그들이 돌에 맞고, 교수형에 처하고, 불에 던지워 지거나 십자가에 못 박히더라도 하나님께 경배와 찬양을 드렸습니다. 승리의 교회였고, 사탄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우상을 멸시하고 재앙이나 박해에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피로 씻겨져 승리하며 살고 죽는 교회였습니다.

그렇다면 말세의 교회는 어떨까요? 이 마지막 때에 교회의 자세는 어때야 할까요? 살찌고 번성하여 자신을 들어 세우는 교회의 모습일까요? 아니면 교회가 위선으로 가득 차 불결한 손과 마음으로, 이상하고 웅장한 찬양과 기도모임을 하는 모습일까요?

틀림없이,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부인하고 배교할 것입니다. 다방면에서 영적인 매춘 행위가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죄에 억압되어 수 많은 사람들이 냉소적이게 될 것입니다. 사기꾼들이 마귀의 교리를 가르치며, 사람들은 무리를 지어 부드럽고 듣기 좋은 설교를 듣기 위해 떠날 것입니다. 거짓과 속임수는 악화되어 선택 받은 사람들도 극심한 시험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는 칭얼거리거나 늘어진 모습이 아니라 승리와 형언할 수 없는 기쁨과 평강의 강물을 안고 나아갈 것입니다. 사탄의 목을 발로 밟고, 모든 구속에서 자유함을 얻은 승리와 함께 말입니다. 진실된 교회의 모든 교인은 두려움 없이 살고 죽음 앞에서도 두려움은 없을 것입니다. 유혹하는 영의 힘은 무너질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거룩하고, 우상을 무너뜨릴 것입니다. 그들은 초기 그리스도인들 만큼 하나님 안에서 강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사도행전 2: 17

2014년 8월 7일 목요일

깨닫게 하시는 하나님

제게 사역을 위한 좋은 아이디어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여쭈어 보지 않고 실행에 옮겼습니다. 그 결과로 저는 제 능력으로 갚을 수 없는 5,000달러의 빚을 지게 되었습니다. 오늘날의 경제수준으로는 25,000달러의 값어치로 볼 수 있습니다.

절박한 상황에서 저는 성경 속에서 하나님께서 나의 모든 필요를 채워 주실 것이라는 구절을 모두 찾아보았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기도 중에 아름다운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데이빗, 내일 정오에 체스터 스트릿의 왼편으로 걸어 내려가보렴. 어떤 사람이 너에게 5,000달러가 들어있는 봉투를 가지고 올 것이란다. 이 사람은 나의 천사이고, 그 봉투를 너에게 줄 것이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하나님! 신실하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그리고는 다음날 정오에 저는 체스터 스트릿에서 기다렸습니다. 그곳은 1,200명의 사람들이 살고 있는 동네였고, 그 날에 체스터 스트릿에서 걷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오랫동안 저는 한 사람도 마주치지 못했습니다. 저는 한 시간 정도 길을 아래 위로 배회하며 질문하였습니다. “하나님, 그는 어디에 있습니까?”

절망에 가득찬 저는 집으로 돌아가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스스로를 기만하였습니다. 저는 이제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을 믿지 못한 저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저는 이 모든 상황과 문제를 모두 하나님의 손에 맡기겠습니다.”

며칠 후 한 교인이 제게 전화를 걸어 말했습니다. “도움이 필요하시다고 들었습니다. 다른 동네에 사는 어느 크리스천 은행가를 알고 있습니다. 그 사람이 도와줄 수 있을 것입니다. 전화를 걸어보시지요.”

저는 그 은행가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는 그 당시에는 들어보지 못한 방법으로 제 상황을 도와주었습니다. 그는 제게 무담보로 5000달러를 대출을 해주며 말했습니다. “매달 50달러씩 갚으시면 됩니다.”

하나님께서 제 상황을 해결해 주셨습니다. 그 모든 과정을 통해 제게 교훈을 주셨습니다. “데이빗, 나는 너에게 천사를 보내어 그 돈을 줄 수 도 있었단다. 그러나 나는 너를 사랑하기 때문에 네가 이 경험을 통하여 배우길 원했단다. 내가 네게 이 교훈을 깨닫게 하지 않았더라면 너는 아직도 어리석은 결정을 하여 100,000 달러의 빚을 갖고 있었을 것이다.”

저는 하나님께서 불가능을 가능케 하시는 능력의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러나 나의 무책임한 결정으로 처하게 된 어려움 속에서 천사가 나타나 나를 구원해주기를 기대한다는 것이 하나님께서 기대하시는 믿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2014년 8월 6일 수요일

단 한마디의 말씀으로

하나님은 단 한마디의 말씀으로 우리 삶 속에 죽어있는 것들을 회복시킬 수 있으십니다. 당신은 재정적 곤경에 처해있으며 생활비조차 없으십니까? 한때는 주님의 제자들도 그러한 상황에 처해있었고, 주님은 그 문제를 초자연적으로 해결해주셨습니다.

그 당시 그들은 세금을 내야만 하는 상황이었고, 그리스도와 그분의 제자들은 세금 낼 돈이 없었습니다. 그때 주님은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셨습니까? 주님은 베드로에게 물고기 한 마리를 잡으라고 하시며 그를 보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가 첫 번째로 잡는 물고기 입안에서 동전을 발견할 것이며 그것으로 세금을 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그때 베드로가 어떤 생각을 했을지 모르겠지만 아마 이렇게 생각했을 것 같습니다. “물고기 입안에 세금 낼 돈이 있다고? 이건 내가 실제로 봐야 할 것 같아. 나는 평생 어부였고 물고기 안에서 벌레, 낚싯바늘, 해초 등 별것들을 다 봤지. 그런데 속에 동전이 든 물고기는 한 번도 못 봤어.” 그러나 베드로가 파닥이는 첫 번째 물고기를 잡아올렸을 때, 그는 물고기 입안에서 반짝이는 동전을 발견했고, 그것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들의 세금을 내기에 충분한 금액이었습니다. (마태복음 17:27 참조)

왜 성령께서는 복음서 저자로 하여금 이 사건을 성경에 기록하도록 감동을 주셨을까요?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왜 이 문제를 기적적으로 해결하셨을까요? 왜 그분은 헌금을 받는다든지, 제자들로 하여금 잠깐 일을 하게 해서 세금 낼 돈을 벌지 않으셨을까요?

저는 예수님께서 이 사건을 통해 초자연적으로 일하신 이유가, 그분 자녀들을 위해 불가능한 일을 행해주실 하나님을 증명하기 원하셨기 때문이라고 믿습니다. 그분은 어떠한 제정 문제나 가족 문제, 그리고 어떤 심각한 상황도 해결하실 수 있습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까마귀가 날라다 주는 음식으로 엘리야를 먹이셨던 하나님, 기근 중 다 떨어져 가는 한 과부의 식량을 유지하셨고, 거의 바닥난 기름병에서 많은 양의 기름이 나오게 하여 그녀를 빚쟁이로부터 구해주셨던 하나님, 그리고 물고기 몇 마리와 빵 몇 덩이로 오천의 무리를 먹이셨으며, 그 후 곧 사천의 무리를 먹이셨던, 동일한 하나님이심을 우리가 알기 원하십니다. 그분은 우리 삶에서 때로는 기적 외에 다른 방도가 없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분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를 위해 불가능을 가능케 하실 수 있음을 우리가 확신하기를 원하십니다.

2014년 8월 5일 화요일

우리는 절대 포기하면 안됩니다

세계 어느 곳에서나 자녀를 가진 수많은 그리스도인은 고민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자녀들이 마귀의 권세 아래에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에서도 수감되어 있는 아들을 면회다니는 어머니들의 슬픔을 봅니다. 그들은 두꺼운 유리막 건너편에 앉아, 한때는 온유한 마음을 지녔던 아이를 바라보는 부모의 고통을 압니다. 어쩌다가 그는 마약에 중독되었고, 그 고질적 습관 때문에 절도를 범해야 했습니다. 이제 그는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고 그의 마음은 더욱 강퍅해졌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아들을 위해 수년간 기도해왔지만, 이제는 희망을 잃었습니다. 그녀는 아들이 변화되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또한 그들의 딸이 마약을 한다는 것을 단 한번도 상상해보지 않은 상심한 아버지들을 봅니다. 그들은 어린 딸이 학교에서 못된 친구와 사귀어 그렇게 타락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딸은 더욱 반항적으로 변했고, 아버지는 그런 딸이 형제자매간에 나쁜 영향을 끼칠까봐 딸에게 집을 나가라고 요구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악한 습관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거리에 나가 몸을 팔고 있습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밤잠을 못자고 침대에 누워 눈물을 강물처럼 흘리며 울고 있습니다. 그는 딸을 영영 잃어버렸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마약중독에 빠진 아들을 찾기 위해 슬럼가를 헤매던 한 아버지를 압니다. 그는 수소문해서 아들을 찾아다니다가 마침내 어떤 마약 밀매자로부터 아들이 크랙 마약 소굴에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가 그곳에 들어갔을 때, 그는 그가 알았던 아들의 어렴풋한 모습만을 보았습니다. 그 아들의 몸은 마약 중독으로 뼈만 앙상히 남아있었습니다. 그가 아들에게 집으로 가자고 애걸했을 때, 그 젊은이는 아버지를 쳐다보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단지 이렇게 말할 뿐이었습니다. “나가요. 이건 내 인생이에요.”

그 비통한 아버지는 눈물을 흘리며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는 이렇게 고뇌하며 온 소망을 잃어버렸습니다. “내 아들이 저곳에 있다. 저 아이가 죽어가고 있는데 아비가 돕지도 못하게 하는구나.”

마귀는 이러한 부모들에게 그들의 아이들은 가망이 없으며 그들의 문제는 절대 해결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마귀는 그들에게 하나님조차 그들을 도울 수 없다는 확고한 거짓말을 주입시켰습니다.

아마도 당신은 구원받지 못한 남편에 대해 아무 소망이 없으며, 그가 절대 예수님께로 나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밤이면 나가 놀기나 하는 당신 아내에 대한 희망을 포기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무엇도 하나님이 바로잡기에 너무 늦거나 너무 심각한 것은 없습니다. 저는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이 이렇게 증언하고 있음을 압니다. “저는 제 배우자를 위해 오랜 세월 동안 기도해왔습니다. 그리고는 제가 희망을 포기한 어느날, 하나님께서 돌파를 시켜주셨습니다. 그분은 제가 사랑하는 이를 구원해주셨습니다.”

우리는 단 한 사람도 절대 포기하면 안됩니다. “하나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니라.” (마태복음 19:26)

2014년 8월 4일 월요일

그저 베푸세요! by Gary Wilkerson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고린도후서 9:6)

하나님께서는 당신 삶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 해도 당신의 순종을 원하십니다. 만일 당신의 결혼생활이 곤경에 처해 있다면,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섬기기 시작하십시오. 당신의 자녀들이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으면 아동 사역에서 섬기기 시작하십시오. 당신의 재정이 거의 바닥났다면, 그리고 아무것도 당신에게로 오는 것이 보이지 않는다면, 성령께서 당신 마음을 감동시킬 때마다 베푸십시오.

친구들이여,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그분께 순종하기를 원하십니다. 당신이 그분께 순종할 때면 하늘 문이 당신을 향해 열리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손을 당신으로부터 거두지 않으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당신께 그분의 호의를 보여주기 위해 그분의 축복을 부어주기를 열망하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축복”의 메시지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축복받는 것을 보기 원합니다. 그리고 저는 당신이 많이 가졌든, 아니면 “나는 정말 가진게 없어”라고 말하든, 하나님 축복의 충만하심을 받도록 권장합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존중하십니다.

아마도 당신이 직장 일로 너무 분주하거나, 아니면 출장을 많이 다녀야 하는 이유로 하나님 왕국에서 다른 사람들을 섬길 시간이 거의 없을지도 모릅니다. 당신은 당신 교회를 위해 할애할 수 있는 약간의 시간만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적은 시간을 다른 사람들을 위해 쏟아부으세요.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것을 증가시키는 것을 볼 것입니다. 당신의 시간과 노력은 증가될 것이고 당신에게 더 많은 시간이 주어질 것이며, 하나님과 함께하는 시간도 더욱 증가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러하셨듯이 당신이 너그러운 마음으로 가장 작은 것들로부터 섬기는 자신을 발견할 때면, 성령께서는 세상의 가장 소박하고 단순한 것을 사용하셔서 당신께 축복을 돌려주실 것입니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누가복음 6:38)

2014년 8월 2일 토요일

먼저 그의 나라를 구하라 by Carter Conlon

하나님의 사람들 가운데서 영적 각성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십여년 후의 이 나라가 어떻게 될까를 생각하면 저는 너무도 두렵습니다. 바로 그 이유때문에 우리는 즐기라고 부름 받은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영혼구원을 위한 싸움을 위해 부르심 받았습니다. 우리는 무력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 안에 거하시며,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우주를 창조하신 자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아들과 딸은 그분의 자원과 능력을 전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이 있습니다.

그러나 슬프게도 우리는, 이 세대에서 그리스도 안에서의 우리의 위치보다도 훨씬 못 미치게 살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반드시 잠에서 깨어나야만 합니다. 우리는 내 필요, 내 집, 나 자신의 성취 등, 모든 자기중심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야만 합니다. 그러면 안됩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십시오. 그러면 그 모든 것이 당신께 더해질 것입니다.

성경은 사무엘의 모친 한나가, 사무엘을 낳은 후에도 아들 셋과 딸 둘을 더 낳았다고 말합니다. 그녀는 하나님의 나라를 먼저 구했고, 그분은 그녀가 항상 열망했던 그 완성의 장소로 들어갈 수 있는 권한을 그녀에게 주셨습니다. 한나가 사무엘을 성전에 남겨두고 떠났던 날, 그녀는 놀라운 기도를 드렸습니다.

“내 마음이 주를 기뻐하며 내 뿔이 주 안에서 높아졌도다. 내가 주의 구원을 기뻐하므로 내 입이 내 원수들을 향해 크게 열렸나이다. 주와 같이 거룩한 분이 없으니, 주 외에는 다른 분이 없고 우리 하나님 같은 반석도 없나이다.” (사무엘상 2:1-2)

“주께서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그분께서 가난한 자를 먼지에서 일으키시며 거지를 거름더미에서 들어 올리사 통치자들 중에 앉게 하시고 또 그들이 영광의 왕좌를 상속받게 하시나니, 이는 땅의 기둥들이 주의 것이요, 또 그분께서 그것들 위에 세상을 세우셨기 때문이라. 그분께서 자신의 성도들의 발을 지키실 터인즉 사악한 자들은 어둠 속에서 잠잠하게 되리니, 이는 아무도 힘으로 이기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로다. 주의 대적들은 산산조각 나리로다. 그분께서 하늘에서부터 천둥으로 그들을 치시리로다. 주께서 땅의 끝들을 심판하시고 자신의 왕에게 힘을 주시며 자신의 기름 부음 받은 자의 뿔을 높이시리로다.” (사무엘상 2:7-10)

달리 말하면,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다시 생명이 주어질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거기에는 힘과 공급하심과 승리가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그것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을지는 몰라도, 우리의 거룩한 갈망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을 돌려드리고자 하는 진실된 결단의 장소로 우리를 향하게 할때, 이 세대의 부르짖음의 응답이 그로부터 나오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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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약력: 카터 칸론(Carter Conlon) 목사님은 Times Square Church의 창립 목사이신 데이빗 윌커슨(David Wilkerson) 목사님의 초청으로 1994년에 Times Square Church의 부목사로 부임했으며, 그 후 2001년에 담임목사로 임명되었습니다. 강인하며 열정적인 지도자로서, 그는 세계 전역에 걸쳐 World Challenge에 의해 주최되는 Expect Church Leadership Conference의 주된 강사입니다.

2014년 8월 1일 금요일

죽음 직전의 상태

마가복음 5장에서는 절박한 회당장이 예수님께 딸을 고쳐달라고 구하는 구절이 있습니다. 이 12살 소녀는 죽음 직전에 있는 상태였고, 회당장은 예수님께 그의 집에 와서 딸에게 손을 얹어 달라고 구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그와 함께 그의 집으로 가기로 하였습니다. 가는 길에 예수님은 혈루병을 앓는 여인을 만났습니다. 이 여인은 예수님의 겉옷을 만지고 고침 받았습니다. 예수님이 서두르셨지만, 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회당장에게 사람들이 말했습니다.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어찌하여 선생을 더 괴롭게 하나이까”(마가복음 5:35).

회당장의 마음은 근심으로 가득찼습니다. 그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늦지만 않았어도 되었을 텐데… 이젠 너무 늦었구나. 딸이 죽었구나.” 그러나 예수님은 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5:36).

회당장의 집에 이르렀을 때, 사람들의 울며 통곡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회당장의 가족과 이웃들이 죽은 소녀를 인하여 비통해 하고 있었습니다. 이 상황의 대조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 육신의 모습으로 오신 하나님, 이 세상의 창조주, 상상할 수 있는 이상의 불가능을 가능케 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사람들이 소녀의 죽음으로 인하여 통곡하고 있습니다. 요컨대,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조금의 소망이 남아 있을 때만 구원해 주실 수 있구나. 생명이 모두 사라졌을때는 하나님을 더 이상 구할 필요가 없구나. 죽음 이후에는 하나님도 구원하지 못하시는 구나.”

오늘날 얼마나 많은 크리스천들이 어려움으로 절망에 빠져,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고 있습니까?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어느 지점까지만 또는 삶의 무언가의 생명이 다할 때 까지만 믿습니다. 저는 그저 사람의 목숨만을 가지고 얘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를들면 결혼생활, 가정, 꿈, 구원의 소망 등의 생명이 다하였을 때, 즉 삶에서 직면하는 해결 불가능하다고 생각되는 모든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그러한 불신을 꾸짖으셨습니다. 예수님은 회당장에서 통곡하는 무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훤화하며 우느냐 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5:39). 예수님은 우리의 상황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너희가 생각하는 정도의 상황이 아니다. 너희는 소망이 모두 사라졌다고 생각하겠지만 구원이 있을 것이다.”

“예수께서 저희를 다 내어 보내신 후에 아이의 부모와 또 자기와 함께한 자들을 데리시고 아이 있는 곳에 들어가사 그 아이의 손을 잡고 가라사대 달리다굼 하시니 번역하면 곧 소녀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심이라 소녀가 곧 일어나서 걸으니”(마가복음 5:40-42)

이세상 그 무엇도 하나님께서 고치시기에 너무 죽은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의 어려운 문제에 관하여 나에게 완전한 믿음을 가지거라. 내가 너를 구원하기에 너무 늦은 시기는 없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