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1일 화요일

돕는 자들”의 기도를 통해 구출되다

“형제들아, 아시아에서 우리에게 닥친 고난에 대하여 너희가 모르기를 우리가 원치 아니하노라. 우리가 힘에 겹도록 한량없이 눌려서 심지어 생명까지도 단념하고…” (고린도후서 1:8) 이 구절에서 쓰인 ‘눌려서’라는 단어가 헬라어로는 “무겁게 짐 지워진, 통탄할 만큼 짓눌린”이라는 뜻입니다. 바울은 성도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당했던 고난이 너무도 극심해서 거의 눌려 죽을뻔했다. 나는 그것이 끝장이라고 생각했다.”

너무도 힘들어서 그의 생명까지 단념했다고 바울이 말했을 때는, 그가 실제로 참담한 형편에 처해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그가 다른 구절들에서는 그의 고난에 대해 그리 심각하게 다루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그가 손에 붙었던 독사를 대수롭지 않게 떨쳐버렸던 사건을 기억할 것입니다. 그는 세 번이나 파선했었으나, 그저 지나가는 말로 무엇을 설명하기 위해 언급했을 뿐입니다. 그는 매 맞았고 강탈당했으며, 돌에 맞았었고 감옥에도 갇혔었지만, 그 모든 환란을 통과하는 과정에서 절대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 구절에서만큼은 바울이 완전 탈진 상태에 있었습니다. 저는 그가 견뎌낸 이 “곤란”이 정신적 고뇌였다고 믿습니다. 바울의 고뇌가 무엇이었는지 우리가 확실히 알지는 못하지만, 고린도후서 7장 5절은 우리에게 힌트를 줍니다. “우리가 마케도니아에 이르렀을 때에 우리 육체에 안식이 없었으며, 우리가 사방에서 고난을 당하여 밖에는 싸움이 있었고 안에는 두려움이 있었노라.”

저는 바울이 그가 섬기고 있었던 양들로 인한 고통을 말하고 있었다고 믿습니다. 고린도에서는 거짓 선생들이 폭동을 일으켰고, 사람들로 하여금 그에게서 등을 돌리게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이제 바울은 그의 양들이 자신의 메시지를 거부하며, 그들을 진심으로 위하지 않는 자들을 따르게 될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러나 고린도에 있는 그의 “사랑하는 자녀들”에 대한 좋은 소식을 가지고 디도가 도착했을 때 그는 위로받았습니다. 바울은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디도를 오게 하사 우리를 위로하시되, 그를 오게 한 것뿐만 아니라 그가 너희 안에서 위로받을 때 얻은 그 안위로 위로하셨나니, 그가 너희의 간절한 소망과 애곡과 나를 향한 너희의 뜨거운 마음을 우리에게 고하였으므로 내가 더욱 기뻐하였느니라.” (6-7절)

저는 이와 비슷한 고뇌를 제 삶에서도 경험했습니다. 제가 사랑했었고 도와주었던 사람들의 말이 제 등을 찌르는 칼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습니다. 저는 다윗과 함께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의 입의 말들은 버터보다 미끄러우나 그의 마음속에는 전쟁이 있으며, 그의 말들은 기름보다 부드러우나 실상은 꺼낸 칼이었도다.” (시편 55:21) 그토록 힘들었을 때에 제게 가장 절실히 필요했던 것은 “돕는 자들의 기도”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