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7월 11일 금요일

한계에 이르렀을 때

목회자들은 포기하고 있는 교구민들에 대한 그들의 아쉬움을 한탄하는 편지들을 제게 보냈습니다. “선하며 정직한 그리스도인들은 죄의식과 비난으로 너무도 압도당한 나머지 절망에 빠져있습니다. 그들이 자신의 기대에 합당치 못하게 살며 다시금 죄를 짓게 될 때, 결국은 포기하기로 결심합니다.”

그들의 한계에 이르러있는 그리스도인들의 숫자는 더욱 증가하고 있습니다.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감히 예수님을 향한 그들의 사랑을 포기하려는 생각까지도 합니다. 그러나 절망 속에 있는 그들은 무엇보다도 그들 자신을 포기하려고 생각합니다.
오늘날 일부 목회자들은 오직 긍정적인 메시지만을 전합니다. 그들의 말에 의하면, 모든 그리스도인은 기도의 즉각적 응답을 얻으며 기적들을 받습니다. 모든 사람은 행복하게 잘 살며, 온 세상은 밝고 낙관적입니다. 저는 그러한 설교 듣는 것을 좋아하는데, 그 이유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정말로 그렇게 좋은 모든 것들과 건강을 누리는 것을 제가 진정으로 원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너무도 정직하며 신실한 수많은 그리스도인의 삶은 실제로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젊은이들이 패배하며 포기하는 것은 놀랄만한 일이 아닙니다. 그들은 태평하고 부유하며 성공적인, 항상 긍정적 사고의 그리스도인들의 종교에 의해 만들어진 이미지에 합당하게 살 수 없습니다. 그들의 세상은 이상적이지 않습니다. 그들은 비통함, 매시간마다의 위기, 그리고 가정 문제들을 겪으며 살아갑니다.

바울은 그들의 고난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힘에 겹도록 한량없이 눌려서 심지어 생명까지도 단념하고…” (고린도후서 1:8)

긍정적 사고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며, 어떤 문제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선포”하는 것은 아무것도 변화시키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해결책일까요? 여기 두 가지 절대적 진리는 제게 큰 위안과 도움을 주었습니다.
  •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신다. 그분은 오직 우리의 연약함으로부터 우리를 구해내기를 원하신다. 
  • 그분을 가장 기쁘게 하는 것은 나의 믿음이다. 그분은 내가 그분을 신뢰하기를 원하신다. 
“오 나의 힘이 되시는 주여, 내가 주를 사랑하리이다. 주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의 구출자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내가 신뢰할 나의 힘이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높은 망대시로다. 찬양 받기에 합당하신 주를 내가 부르리니, 이로써 내가 내 원수들에게서 구원을 받으리로다.” (시편 18:1-3)